[Cover Story] 괴담의 진앙지 인터넷..."자유엔 책임 따른다"
“인터넷 상에서 근거 없는 비방이 떠돌았지만 그는 오로지 진실 하나로 싸웠다.”

가수 타블로의 모교인 미국 스탠퍼드대의 공식 월간지 ‘스탠퍼드 매거진’은 최근 ‘다니엘리(타블로 미국 이름)에 대한 괴롭힘(The Persecution of Daniel Lee)’이란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신문은 타블로의 학력이 네티즌들의 공격 표적이 된 전말을 상세히 설명하면서 “가족들에게까지 피해가 확산될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 됐다”고 전했다.

‘스탠퍼드대 출신임을 확인했다’는 경찰의 발표에도 일부 네티즌은 ‘믿을 수 없다’며 계속해서 의혹을 제기했다.

경찰이 성적증명서를 확인했고 타블로의 스탠퍼드대 지도교수와 미국인 졸업생들도 사실을 증명해줬지만 인터넷 카페 ‘타진요(타블로에게 진실을 요구합니다)’의 일부 회원들은 매수 조작설까지 제기했다.

수사 결과나 진실은 애초부터 이들의 관심이 아니었다.

스탠퍼드대 관계자는 “그들이 좇고 있는 것은 진실이 아니다”며 “단지 타블로의 인생을 망치고 싶었을 뿐”이라고 말했다.

개인에 대한 괴담은 한 개인을 파멸로 내몰지만, 사회에 관한 괴담은 사회 전체를 혼란과 분열로 이끌어 엄청난 사회적 손실을 가져올 수 있다.

‘미국산 쇠고기를 먹으면 광우병에 걸려 죽는다’는 근거 없는 괴담이 촉발한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가 대표적이다.

한국경제연구원(KERI)이 2008년 9월25일 발표한 ‘촛불시위의 사회적 비용’이란 보고서에 따르면 첫 촛불집회가 열렸던 2008년 5월2일부터 100번째 집회가 열린 같은 해 8월15일까지 100회의 촛불집회가 유발한 사회적 비용은 3조7513억원으로 추산됐다.

이는 2007년 기준 국내총생산(GDP)의 0.4%에 달하는 액수다.

지난해 천안함 침몰과 연평도 사태 때의 괴담은 국가의 정체성마저 흔들었다.

미국 영국 호주 스웨덴 등이 포함된 국제합동조사단의 조사 결과 천안함이 외부 공격에 의해 침몰됐음이 과학적으로 증명됐고 한반도와 직접적 이해관계가 없는 국가들의 공감대까지 이끌어냈지만 좌초설, 우리 해군 기뢰 폭발설, 심지어 우리 해군이나 미군의 오폭설 같은 괴담들이 퍼졌다.

이런 근거 없는 주장은 모두 북한의 소행이 아니라는 전제를 깔고 있는 것이 공통점이다.

괴담들의 진앙은 대부분 인터넷 공간이다. 인터넷은 누구나 자유롭게 의견을 내놓을 수 있고, 쉽게 다른 곳으로 실어 나를 수 있다.

하지만 내용이 사실인지 검증할 수단이 없는 약점이 있다.

이 때문에 사실이 아닌 내용이 마치 사실인양 포장되어 퍼지면 그 피해가 매우 크다.

더구나 대체로 내용이 자극적이거나 선동적인 경우가 많아 내용을 잘 모르는 일반 시민들 사이에 빠르게 확산되는 특징이 있다.

사실을 검증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다 보니 한 번 퍼진 괴담은 우리 사회에 분열과 혼란을 가져 오게 되는 것이다.

물론 우리 사회에는 생각과 가치관이 다른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살다 보니 상대방의 의견을 존중해 주어야함은 당연하다. 그래서 표현의 자유에는 루머까지 이야기할 자유를 포함하는 게 일반적이다.

그러나 사회를 혼란으로 몰고 갈 수 있는 중요한 이슈에 대한 허위의 내용을 인터넷에 무한대로 표현할 수 있는가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공동체가 존립하려면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한도 내에서만 나의 자유가 인정된다.

헌법 21조도 국민의 언론 자유를 보장하면서도 타인의 명예와 권리 또는 공중도덕이나 사회윤리를 침해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는 인터넷 공간에서도 그대로 적용되어야 한다.

만일 표현의 자유를 지나치게 강조하여 책임감이 결여된 표현이 마구 확산돼 사회에 혼란을 가져올 경우 표현의 자유는 제한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사실과 합리성을 거역하는 유언비어가 창궐할 때 민주주의는 위기에 빠진다.

사실과 합리성이야말로 성숙한 사회를 가능케 하는 토대이기 때문이다.

최근 법조계는 표현의 자유를 어디까지 인정해야 하느냐를 놓고 고민하고 있다.

표현의 자유는 반드시 보장돼야 할 헌법적 가치이지만 의도된 거짓이나 음모론 확산으로 사회 발전의 토대인 ‘신뢰’를 해쳤다면 엄한 처벌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많다.

인터넷의 속성 자체가 괴담을 만들어낸다는 주장도 있다.

컴퓨터와 인터넷이 보편화되면서 사람들은 검색 몇 번이면 손쉽게 정보를 습득할 수 있다.

스마트폰, 태블릿 PC까지 상용화되면서 마음만 먹으면 언제 어디서든 자신이 원하는 정보를 찾아내거나 올릴 수 있게 됐다. 그러다 보니 지식의 깊이보다는 효율성에 더 관심을 가진다.

정보기술(IT) 미래학자인 니컬러스 카는 그의 저서《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에서 인터넷과 디지털 기기가 우리의 사고방식을 ‘얕고 가볍게’ 만든다고 비판했다.

지난 5월 방한한 그는 “인터넷이 정보를 빨리 전달해주고 사람들을 연결해주지만 주의를 분산시켜 판단력을 흐리게 한다”고 지적했다.

벳시 스패로 미국 컬럼비아대 심리학과 교수팀은 ‘인간 기억에 미치는 구글 이펙트’란 논문에서 검색서비스가 인간의 두뇌를 바꿔놓고 있다고 주장한다.

검색서비스 의존도가 높아지면서 두뇌가 무엇을 기억하고 어떻게 기억할지를 선택하는 절차가 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전 세계적으로 연결된 전산망을 통해 쉽게 협력할 수 있게 됐지만 동시에 얄팍하고 편협하며 급하고 산만한 사고에 빠르게 젖어들고 있다는 진단이다.

최만수 한국경제신문 기자 bebo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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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실명제' 뜨거운 존폐논쟁

인터넷 실명제(제한적 본인확인제)는 하루 방문자 10만명 이상의 사이트에 게시글 또는 댓글을 남기려면 주민등록번호를 확인해 실명 인증을 하도록 한 제도다.

2007년 7월 일일평균 이용자수 30만명 이상의 사이트에만 적용됐으나 미국산 광우병 사태 및 유명 연예인 자살 사건 등에 인터넷 댓글 등이 영향을 끼쳤다는 논란이 일면서 2009년 1월부터 10만명 이상 사이트로 확대됐다.

표현의 자유가 익명으로 숨어 마구잡이식 인신공격을 해댈 때의 폐단을 막겠다는 의지에서다.

그러나 사이버 범죄를 방지하기 위해 도입된 인터넷 실명제가 오히려 개인정보 유출의 주범이라는 지적도 제기돼 왔다.

인터넷 실명제 대상이 아닌 군소 웹사이트들도 관행적으로 회원가입을 받을 때 주민등록번호 등 개인정보를 요구하고 있는 등 논란이 계속된 바 있다.

인터넷 실명제가 ‘온라인상 표현의 자유’를 제약한다는 주장도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반대로 해킹이 두렵다고 실명제 포기를 거론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맞지 않다는 의견도 있다.

그나마 자리를 잡아가던 실명제를 폐지할 경우 사이버공간은 걷잡을 수 없는 혼란에 빠질 수도 있으며 따라서 정보 유출이 걱정된다면 실명제 폐지로 해법을 찾을 게 아니라 개인정보 유출 가능성을 차단하는 게 우선이라는 입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