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술을 위한 인문학 필독서 10
[Cover Story] 논술과 인문의 만남…고전속에 답이 있다
1900년대 초까지 시카고대는 삼류대학에 불과했다.

1929년 취임한 로버트 허친스 시카고대 총장은 “인류의 위대한 유산인 인문고전 100권을 달달 외울 정도로 읽지 않은 학생은 졸업 시키지 않는다”는 시카고 플랜을 도입했다.

이후 시카고대는 하버드대보다 더 많은 노벨상 수상자(73명)를 배출하는 세계적 명문대로 발돋움했다.

오늘날에도 미국 내 160개 대학은 인문고전 100권 읽기 프로그램을 활발히 전개하고 있다.

이처럼 성장의 자양분인 인문고전은 논술에도 큰 도움을 준다. 논술시험에 출제되는 다양한 제시문들은 큰 맥락의 줄기를 따르고 있다. 이는 인류 사상의 큰 흐름을 형성한 고전 읽기를 통해 잡을 수 있다.

큰 줄기를 이해하면 이곳에서 뻗어나온 곁가지들은 쉽게 파악할 수 있다. 고교생들이 꼭 읽어야 할 인문학 책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삶의 지혜가 담긴 철학

서양철학을 논할 때 플라톤의 《국가론》을 빠뜨릴 수 없다. 철학자 화이트헤드는 “모든 서양철학의 전통은 플라톤에 대한 각주에 불과하다”고 했다.

플라톤은 자신이 존경한 스승 소크라테스의 입을 빌려 자신의 철학을 전한다. 그는 현상(감각)의 세계는 선이 아니라고 보았다.

오직 눈에 보이지 않는 사물의 본성인 ‘이데아’를 바탕으로 한 이성적 인간이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플라톤은 이데아를 중심으로 인격을 완성한 철학자들이 국가를 통치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는 인간 세계의 혼란상을 지켜보며 강하고 정의로운 권력을 꿈꿨다.

이와 반대로 이상보다 현실을 중요하게 여긴 니콜로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은 뉴스위크나 타임이 선정한 세계 명저에 늘 우선순위로 거론된다.

권력이 복잡하게 얽힌 혼란의 시대를 살았던 마키아벨리는 강력한 군주가 중심이 된 근대국가를 꿈꿨고 그 과정에서 속임수나 폭력도 정당화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악행도 서슴지 말라는 그의 주장은 지금도 논쟁거리지만 그가 근대 정치사상의 주춧돌을 놓았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장 자크 루소와 새뮤얼 애덤스는 마키아벨리의 사상을 참고하여 자신의 정치사상을 풀어냈고, 이는 프랑스대혁명과 미국 독립혁명에 영향을 주었다.

동양철학 중에는 《장자》를 꼽을 수 있다.

《장자》는 《노자》와 함께 중국 노장사상의 핵심을 이루는 저서로 지금까지 논술시험에서 가장 많이 인용된 고전이다.

장자는 ‘소요유’ ‘제물론’ 등을 통해 까다로운 예절이나 형식을 초월해 인간의 자유스러운 본성과 다양성을 역설했다.

그는 천지만물의 기본원리가 ‘도(道)’라고 생각했다.

여기서 도는 어떤 대상을 욕망하거나 소유하지 않는 무위(無爲)하고 자연스러운 것을 의미한다.

장자의 스승 격인 《노자》 역시 인간의 절대자유와 무위의 삶을 간략하면서도 은유적으로 표현한 책이다.

인생의 향기가 담긴 문학

철학이 어렵다면 문학으로 눈을 돌려보자.

《동물농장》은 《1984》로 유명한 정치 작가 조지 오웰의 또 다른 대표작이다.

인간에게 착취당하던 동물들이 인간을 내쫓고 자신들만의 세계를 세운다는 큰 줄거리 아래 독재자와 사회주의 사회의 문제를 신랄하게 비판한 장편소설이다.

볼셰비키공산혁명 이후 스탈린 시대까지 옛 소련의 정치상황을 소재로 했다.

이 책은 스탈린 독재를 우화적으로 차용했지만 본질적으로는 파시즘과 나치즘을 비롯한 모든 전체주의를 겨냥하고 있다.

오웰은 의인화된 동물들의 정치적 투쟁과 간계를 통해 독재 정권의 잔혹함과 기만성을 고발한다.

20세기가 끝날 무렵 세계 언론들은 이 책을 만장일치로 20세기 최고 문학작품 중 하나로 꼽았다.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은 어느날 아침 눈을 뜨니 거대한 벌레로 변해버린 남성과 그를 둘러싼 가족들의 전말을 묘사한 중편소설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 버는 기계로 살아가던 한 남자가 그 역할을 거부하자 가족이나 사회라는 이름의 공동체에서 불편한 존재가 되어버리는 이야기다.

스스로 생계를 꾸릴 수 있게 되자 점점 냉담해지는 가족의 모습이 공포스럽다.

주인공은 벌레로서 방 안에 갇혀 살다가 썩은 사과에 등을 얻어맞고 죽어간다.

이 책은 고독과 불안이라는 현대인의 실존적 상황을 잘 표현했다. 20세기 초에 나온 소설이지만 카프카가 천착했던 문제들은 21세기인 지금도 여전히 사회적 문제로 남아있다.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는 20세기에 쓰인 미래소설 중 가장 우수한 작품으로 꼽힌다.

소설은 야만인 청년 존을 통해 유토피아 세계와 원시적 세계의 모습을 제시한다.

문명 비판적 풍자와 도덕적 교훈이 어우러지며 현대 문명사회를 희화적으로 묘사한다. 과학기술 문명의 발전 속에서 지켜나가야 할 인간다움의 가치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공생의 의미가 담긴 사회학

사회가 지닌 여러 문제점을 지적하는 책도 권할 만하다. 2007년 타계한 프랑스 철학자 장 보드리야르의 《소비의 사회》는 현대인들의 과시소비를 다룬 책으로 연세대와 이화여대 논술에 출제된 바 있다.

현대는 소비의 꿈과 욕망이 사회 전반을 지배한다. 그는 현대인들이 생산된 물건의 기능을 따지지 않고 상품이 상징하는 위세와 권위,즉 기호를 소비한다고 주장했다.

미셸 푸코의 《광기의 역사》도 현대 사회학의 명저로 꼽힌다. 그는 이 책을 통해 이성에 대한 근본적 반성의 메시지를 전한다.

푸코는 ‘정상’이라고 불리는 이성적 집단이 자신들과 다른 집단을 어떻게 배제했고 타자로 만들었는지 분석했다.

그는 “광기란 역사의 문제이며 이성은 우리를 조용히 혹사시켰다”고 주장했다.

푸코의 사상은 20세기에 나타난 후기구조주의나 페미니즘에 절대적 영향을 끼쳤다.

역사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영국의 사학자 E H 카의 저서 《역사란 무엇인가》를 읽어야 한다.

역사는 과거의 사실을 기록하는 것이라고 간단히 정의하기 어렵다. 기록하는 사람과 상황에 따라 관점을 달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카는 이에 대해 “역사란 역사학자와 역사적 사실 사이의 부단한 상호작용이며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명언을 남겼다. 그의 이론으로 닭과 달걀처럼 끊임없이 이어지던 역사학계의 논쟁은 종지부를 찍었다.

조지프 나이 하버드대 석좌교수의 《소프트 파워》는 국제 정세에 큰 영향력을 발휘한 책이다.

그는 “군사적·경제적 힘을 기반으로 한 하드 파워는 냉전 종식과 함께 더 이상 세계를 지배하는 기능을 잃어버렸고 대신 문화와 가치, 국제교류 등을 통한 소프트 파워의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의 이론은 버락 오바마 행정부에서 외교정책의 기본 방향으로 받아들여졌고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은 대표적인 신봉자로 알려져 있다.

나이 교수는 세계를 지배하는 ‘슈퍼 파워’로서 미국의 위상이 계속될 것이란 신념을 갖고 있다.

그는 소프트 파워 이론을 개척해 ‘팍스 아메리카나’의 주요한 이론적 틀을 제공하고 있다.

최만수 한국경제신문 기자 bebo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