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만족 모르는 금융 탐욕에 성난 美젊은이들
“우리는 99%다.”

지난달 17일부터 뉴욕 맨해튼 월스트리트 인근 주코티 공원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는 ‘월스트리트 점령(Occupy Wall Street)’ 시위대가 자신들에게 부여한 정체성이다.

이들은 “돈 많고 탐욕스러운 1% 때문에 자신들의 삶이 고단해졌다”며 1%를 상징하는 금융산업의 중심지 월스트리트로 몰려 들었다.

이 시위는 미국 전역으로 확산됐고 급기야 서울 여의도까지 모방 시위가 상륙했다는 소식이다.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라던 미국의 젊은이들은 무엇에 화가 나서 거리로 뛰쳐나온 걸까?

답은 일자리다.

미국의 대표적인 경제학자 중 한명인 글렌 허버드 콜럼비아대 경영대학원장은 최근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월스트리트 자체에 화가 난 것도 있겠지만 경제가 회복되지 않고 이에 따라 일자리도 생기지 않는 것에 젊은이들이 분노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민주당)도 “가족을 부양할 수 없고 미래를 알 수 없는 것만큼 당신을 화나게 하는 일은 없다”며 “그들이 화가 난 건 일자리가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 청년실업률 18.1%의 비극

“대학을 졸업하고 일년동안 100개가 넘는 회사에 이력서를 제출했는데 면접조차 본 적이 없어요.

학자금 대출로 15만달러의 빚이 있는데 말이죠.아버지도 지난주에 20년이나 다닌 회사에서 해고를 당하셨어요.경제를 망친 월스트리트의 고위 임원들은 수백만달러씩 연봉을 받아간다는데….

저한테도 미래가 있을까요?”

시위 현장에서 만난 한 참가자의 말이다.지난달 현재 미국의 실업률은 9.1%다.

어림잡아 미국인 열명 중 한명은 직장이 없다는 얘기다.청년실업률은 더 심각하다.18.1%에 달한다.

16살부터 24살까지의 미국인 다섯명 중 한명이 실업자다.더 심각한 건 기자가 만난 참가자처럼 대부분의 젊은이들이 빚을 진 채 대학을 졸업한다는 점이다.

대학생의 3분의 2가 평균 2만4000달러의 빚을 안고 학교를 마친다.매달 대출 이자를 갚아야 하는데 일자리를 잡는 건 하늘에 별따기다.

그러니 울며 겨자먹기로 식당 웨이터 같은 파트타임 일자리를 잡는다.이들에게 월가시위는 생존투쟁인 셈이다.

# 사라진 아메리칸 드림

‘재능과 열정만 있으면 누구나 성공할 수 있다’는 ‘아메리칸 드림’의 땅 미국에 이토록 일자리가 없어진 이유는 뭘까? 바로 성장이 저하됐기 때문이다.

지난 2분기 미국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연율(전분기 대비 증가율을 연간상승률로 환산해 계산한 수치)기준으로 1.3%.1분기의 0.4%에 비해서는 다소 높아졌지만 9.1%에 달하는 실업률을 낮추기에는 턱없이 낮은 성장률이다.

리먼 브라더스가 파산한 2008년부터 2009년 3분기까지 마이너스 성장률을 기록하던 미국은 정부의 경기부양으로 2009년 4분기부터 3~4%대로 성장률을 반짝 끌어올렸다.하지만 올해 들어 성장률은 다시 곤두박질쳤다.

경제의 펀더멘털이 훼손된 상태에서 정부의 인위적인 경기부양책은 말라붙은 사막에 물을 붓는 것과 같았다.

미국의 경제성장률이 이렇게 낮아진 건 2001년 이른바 ‘닷컴버블’ 붕괴 이후 이렇다 할 성장전략이 없었기 때문이다.

2007년 금융위기가 터지기 전까지 유일하게 경제를 지탱해온 건 부채였다.

소비자들은 빌린 돈으로 소비하고 부동산에 투자했다.정부도 국채를 발행한 돈으로 정부지출을 늘려 경제에 이끌어왔다.

조만간 오스탄 굴스비 백악관 경제자문위원장은 “부채에 의존한 소비 지출과 부동산 버블이 이끌어온 지난 10년간의 국가 비즈니스모델로는 절대 돌아가면 안된다”고 말했다.

그는 “기업들의 투자와 수출 증대,혁신을 통해서만 제대로 된 경기회복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 제조업 깔본 경제정책 실패

굴스비 위원장의 발언은 어느 업종보다 고용창출효과가 큰 제조업을 경시해온 지난 10년간의 정책 실패와 무관치 않다.2000년부터 2007년까지 미국의 제조업 일자리는 320만개 줄었다.

기업들이 인건비가 저렴한 중국 등 해외로 아웃소싱을 늘리고 투자를 집중하면서다.

미국의 산업구조가 변하면서 생산직과 사무직 일자리가 급감했지만 미국은 이들을 재교육하고 첨단인력으로 키우는데 게을렀다.

최근 미 노동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320만개의 일자리가 기업이 원하는 인력과 구직자들이 보유한 기술 사이의 ‘미스매치’ 때문에 채워지지 않고 있다.

9.1%의 실업률 중 약 25%가 이같은 고용 미스매치에 기인한다는 분석이다.금융업의 팽창으로 제조업의 빈자리를 메울 수 있다는 환상이 일자리를 늘리는 성장전략을 마련하는데 장애가 됐다.

월스트리트저널의 경제담당 논설위원 데이빗 위셀은 “월가에서 받는 엄청난 연봉이 아니었다면 과학 소프트웨어 공학 등 의미있는 직종에서 활약했을 고급 두뇌들이 미국 경제에 냉전시대 공산주의국가들이 가했던 것보다 더 큰 해를 입혔다”고 말했다.

위셀 위원은 “미국의 미래 번영은 점점 더 치열해지는 글로벌 경쟁환경 속에서 경쟁력을 가지고 있는 분야에 인재와 자본이 흘러들어가록 하는 성장 전략을 어떻게 마련하는가에 달려있다”고 말했다.

뉴욕=유창재 한국경제신문 특파원 yoocoo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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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금융의 심장...금융위기 초래하기도

월가는 어떤 곳?

경제난에 지친 젊은이들이 뉴욕 맨해튼의 월스트리트를 시위 장소로 정한 건 무슨 이유에서일까?

월스트리트는 미국 금융회사들이 밀집해 있는 지역이다.

뉴욕증권거래소(NYSE)가 있고 골드만삭스와 같은 투자은행(IB)들의 본사가 자리잡고 있다.

시위대가 월가를 ‘점령’하자고 나선 건 2008년에 발생한 금융위기의 진앙지가 바로 이곳이기 때문이다.

금융위기의 후유증으로 심각한 경기침체를 겪고 있는데 금융회사 직원들은 여전히 고연봉을 받고 있는 현실에 대해 시위대들은 분노를 표출하고 있다.

금융위기는 미국 부동산 거품 붕괴와 월스트리트가 개발해낸 금융공학의 합작품이다.

집값이 하늘 높은줄 모르고 뛰던 2000년대 중반 은행들은 빚을 갚을 능력이 없는 사람들에게 저금리로 돈을 빌려줘 집을 사게 했다. 유명한 서브프라임 모기지다.

그리고 은행들은 이 서브프라임 모기지를 담보로 채권(MBS)를 발행했다.

월가의 IB들은 이 채권을 사들여 금융공학을 동원해 부채담보부증권(CDO),신용부도스와프(CDS) 등으로 불리는 파생상품을 만들어 냈다.

이를 통해 채권의 부도위험을 잘게 쪼개 분산할 수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착각이었다.

미국 부동산 거품이 붕괴되면서 전 세계에 팔려나간 파생상품들의 가치가 크게 하락했고 금융회사들은 엄청난 손실을 봤다.

세계 최고의 IB로 불리던 리먼 브라더스가 파산한 것도 이런 과정을 통해서다.

하지만 IB들이 이런 위험천만한 일들만 벌이는 건 아니다.

기업들의 채권발행이나 기업공개(IPO) 등 자금조달 활동을 도와 경제에 돈이 돌게 하는 기능도 한다.

고객들의 자산을 대신 운용해주기도 하고 주식을 사고 팔 때 창구 역할도 한다.

월스트리트 종사자들은 “금융산업이 고용이나 납세 등을 통해 미국 경제에 기여하는 측면은 무시한 채 무조건 돈을 잘 번다고 몰아붙이는 것은 미국의 근본 철학인 자본주의를 부정하는 것”이라고 항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