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1720년대 급부상하던 ‘남해(South Sea)’라는 회사에 투자해 현재의 가치로 20여억원에 달하는 손실을 입었다.
“천체의 움직임은 계산할 수 있지만 인간의 광기는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는 그의 말은 인간의 탐욕을 잘 설명한다.
# 튤립 한송이에 집 한 채
17세기 네덜란드에서는 튤립 한 뿌리의 가격이 1억5000만원까지 치솟았다.
거품이 터지면서 네덜란드 경제는 파국을 맞았다.
무분별한 투기가 거품을 만들고 그것이 꺼지면서 경제위기가 찾아오는 패턴은 1929년 미국의 대공황과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에서 다시 반복됐다.
17세기 네덜란드는 경제적으로 황금기를 맞았다.
사람들은 일확천금을 꿈꿨다.암스테르담의 복권 판매소는 성황을 이뤘고 온갖 종류의 노름과 투기가 유행했다.
튤립 버블은 이러한 배경에서 탄생했다. 튤립 값이 오르자 많은 사람들이 튤립 재배에 달려들었고 곧 투기 광풍이 불었다.
사람들은 아직 땅 속에 묻혀있는 튤립 구근까지 선매매했고 급기야 구근 하나의 값이 집 한 채와 맞먹게 됐다. 그러나 거품은 한순간에 무너졌고 튤립 가격은 수천분의 1로 폭락했다.
‘거품(bubble)’이라는 용어는 1721년 영국에서 탄생했다.
주역은 스페인과의 무역을 중개했던 남해주식회사다.
이 회사는 발행주식을 국채와 바꿔주는 신종 금융기법 ‘인그래프트먼트(engraftment)’를 도입해 주목받기 시작했다.
회사가 망해도 국채수익률은 보장된다는 믿음은 개미투자자들을 끌어들였고 주가는 폭등했다.
9년간 주당 100파운드대에 머물던 주가는 1721년 6월초 890파운드까지 치솟았다.
금광을 발견했다는 정보까지 나돌면서 주가는 8월 초 1000파운드를 찍었다.
하지만 정보가 루머로 드러나자 거품은 꺼졌다.
쪽박을 찬 개미 중에는 ‘로빈슨 크루소’의 저자 대니얼 디포와 뉴턴도 끼어 있었다.
# 경제위기에도 패턴있다
17, 18세기의 경제위기는 20세기와 21세기 들어서도 이어졌다.
1929년 10월24일 뉴욕 증시의 폭락은 세계적인 대공황(Great Depression)을 초래했다.
10여년간 세계는 기업 파산과 대량 실업,디플레이션이라는 홍역을 앓았다.
불황은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값비싼 대가를 치르고서야 끝났다.
영국을 밀어내고 세계경제의 중심으로 떠오른 미국은 1920년대 황금기를 누렸다.
하지만 호황을 이끈 과잉자본은 점점 투기로 흘러 들어갔다.
1920년대 말에는 이미 과도신용과 과잉투자가 누적된 상태였다.
미증유의 주식 대폭락을 시작으로 거품이 꺼지면서 대공황이 엄습했다.
세계 각국은 국가에 의한 유효수요의 창출이라는 경제학자 케인스의 처방으로 겨우 위기에서 벗어났다.
20세기 후반에도 크고 작은 위기가 끊이지 않았다.
1980년대 중남미 위기, 1980년대 후반에서 1990년대 초반에 걸친 미국 저축대부(S&L)조합의 대거 파산과 스웨덴 핀란드 등 북유럽 유기, 1990년대 중반 멕시코 페소화 위기, 1997년 태국 바트화 가치 급락에서 시작된 아시아 위기, 1998년 러시아 모라토리엄 선언, 2001년 아르헨티나 위기 등이 그것이다.
위기는 여전히 진행형으로 지금은 미국발 금융위기와 유럽발 재정위기의 와중이라고 할 수 있다.
경제위기엔 일정한 패턴이 있다.
1단계는 투기에 눈이 멀어 너도나도 레버리지(차입)를 통해 신용을 확대하는 단계다.
이렇게 되면 거품이 형성된다.
사람들은 ‘이번만은 과거 거품과 다르다(This time is different)’며 투기의 광풍에 몸을 던진다.
이어 찾아오는 게 거품 붕괴 및 금융시스템 위기다. 그리고 마지막엔 실물경제가 급속히 냉각된다.
2008년 경제위기를 예측해 ‘닥터 둠(Doctor Doom)’이라는 별명을 얻은 루비니 뉴욕대 교수는 “경제위기란 우연의 산물이 아니라 역사를 통해 수없이 반복돼온 현상”이라고 설명한다.
# 위기의 공통분모는 탐욕
이처럼 위기가 반복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적지 않은 경제학자들은 인간의 탐욕을 든다. 대박을 좇는 인간의 무모한 이기심과 군중심리가 원인이라는 설명이다.
하지만 인간의 탐욕이 아니라 탐욕을 부추기는 정부의 정책이 위기를 초래한 주범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많다. 정부의 실패가 더 문제라는 얘기다.
칼 멩거, 미제스 같은 오스트리아 학파는 정부의 인위적인 저금리 정책이 붐(거품)과 버스트(파멸)를 야기한다고 말한다.
금융사로부터 돈을 빌려도 이자 부담이 거의 없으니 사람들이 너도나도 투기에 나서고 거품이 형성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사실 최근 미국의 금융위기는 그린스펀 전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ed) 의장의 오랜 저금리 정책으로 부실 주택담보대출이 급증했던 영향이 크다.
시카고학파의 태두 밀튼 프리드먼도 “정부의 긴축정책이 1930년대 대공황을 야기했다”며 통화정책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경제위기에 대한 탁월한 분석으로 유명한 경제학자 하이먼 민스키는 경기순환에 동조하는 신용 공급의 확대와 축소, 그러니까 호황기 때는 늘어나고 불황기 때는 갑자기 줄어드는 신용공급이 금융질서의 취약성을 초래하고 금융위기의 가능성을 증폭시킨다고 지적했다.
결론적으로 경제위기는 정부의 통화정책과 금융시장감독 실패가 인간의 탐욕과 ‘한탕’을 좇는 군중심리에 불을 붙이면서 발생한다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