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美·유럽 ‘휘청’ … 세계경제 성장엔진 멈추나
세계경제가 한마디로 위기다.

그리스 등 남유럽 국가들의 재정위기로 촉발된 유럽의 경제위기는 갈수록 꼬여가면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세계경제의 엔진인 미국도 불황의 그림자가 짙어지기는 마찬가지다.

그리스가 디폴트의 문턱으로 한 발짝씩 다가서면서 글로벌 금융시장 역시 요동을 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도 “세계경제가 위험한 국면(dangerous phase)에 진입했다고 경고한 상태다.

세계의 지도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해법을 찾으려 애쓰고는 있지만 탈출구는 여전히 어둡기만 하다.

# 그리스 디폴트로 가나

이번 글로벌 경제위기의 진앙지는 그리스다.

그리스는 재정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면서 급기야 디폴트(국가채무 불이행)가 초읽기에 들어간 형국이다.

그리스를 껴안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 국가들도 인내와 대책에 한계를 느끼는 모습이다.

그리스의 국채수익률이 최근 70%까지 치솟은 것은 사실상 국가 부도를 의미한다.

실업률은 20%선에 육박하고, 청년 10명 중 4명은 일자리가 없어 거리를 방황한다.

스페인 이탈리아 포르투갈 아일랜드 등 소위 재정 위기로 몸살을 앓고 있는 PIGS 국가들도 경제상황이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

헤지펀드의 대부로 불리는 조지 소로스는 유럽연합(EU) 2∼3개 국가가 디폴트에 빠질 것으로 내다봤다.

IMF는 올해 유로존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6월의 2%에서 1.6%로 크게 낮췄다.

내년 성장률도 1.7%에서 1.1%로 대폭 하향 조정했다.

세계 최대 채권 투자펀드인 핌코의 모하메드 엘 에리안 최고경영자(CEO)는 내년 유럽 경제가 침체(리세션)에 빠질 것으로 전망했다.

그는 최근 블룸버그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내년에 유럽 경제가 1~2% 성장률이 감소하고 미국 경제는 정체돼 세계 경제는 2.5% 성장에 그칠 것으로 내다봤다.

내년 세계성장률은 IMF 전망치(4%)를 크게 밑도는 수치다.

그리스가 독일 등 주변국들의 도움으로 공식적인 디폴트를 면한다 해도 재정긴축을 펼 수밖에 없는 상황이고 스페인 이탈리아 포르투갈도 같은 처지여서 유럽의 경제회복이 탄력을 받기까지는 오랜 기간이 걸릴 전망이다.

글로벌 금융시장이 상당기간 유럽의 사태 추이에 따라 출렁거리는 건 불가피한 상황이다.

# 식어가는 미국의 성장엔진

미국경제는 국내총생산(GDP) 기준으로 전 세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5% 정도에 달한다.

기축통화의 위상이 흔들린다는 뉴스가 많지만 달러는 여전히 확고한 세계 금융시장의 기축통화다.

세계경제에 암운이 짙어질수록 달러를 사려고 아우성을 치는 사람들이 크게 늘어나는 것이 이를 입증한다.

투자자들은 대표적 안전자산인 금이나 은까지 팔아 달러를 확보하려고 안달이다.

세계경제의 엔진인 미국경제가 이미 더블딥(짧은 경기회복 후 재침체)에 빠졌다는 분석까지 나온다.

조지 소로스는 최근 CNBC와의 인터뷰에서 “미국경제는 이미 더블딥에 빠졌다”고 진단했다.

월가의 비관론자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는 미국경제가 더블딥을 넘어 트리플딥(삼중침체)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고 경고했다.

그는 그리스에 대해서도 “디폴트를 선언하고 유로존을 탈퇴하라”고 주장했다.

로이터통신 집계에 따르면 전문가들은 미국이 내년 경기 침체에 빠질 가능성을 30% 정도로 보고 있다.

미국의 경기지표들을 보면 미국의 성장엔진이 급속히 식어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지난달 미국의 신규 일자리 창출 규모가 ‘제로(0)’를 기록하면서 실업대란 공포가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실업률도 9%를 넘는다. 고용시장 한파는 미국의 제조업이 활력을 잃고 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미 국채금리 하락도 2008년 리먼사태를 연상시키는 불길한 징후다.

미국의 10년 만기 국채 금리는 대공황 때보다도 낮은 2%를 밑돈다.

수익률 하락은 투자자들이 불확실한 미래에 대비해 안전자산인 미 국채를 대거 사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수출로 돌파구를 찾으려는 미국의 입장에선 최근의 달러 강세가 부담이 될 수도 있다. 천문학적인 재정 적자도 일본과 닮은꼴이다.

이에 따라 미국경제도 저성장 늪에 빠졌던 1990년대 일본경제처럼 ‘잃어버린 10년’을 맞을 수 있다는 경고가 잇따르고 있다.

미국의 경제엔진이 식으면 글로벌 경제에도 찬바람이 불 수밖에 없다. 상대적으로 호조세를 보였던 중국 인도 등 신흥국 경제도 타격이 불가피하다.

# 헛바퀴도는 글로벌 공조

글로벌 경제위기가 일촉즉발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는데도 국제사회의 공조는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구체적 액션은 없고 말만 무성한 형국이다.

무엇보다 유럽위기의 구세주로 여겼던 중국이 돌연 입장을 바꿨다.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중국 국부펀드인 중국투자공사의 가오시칭 대표는 지난달 말 워싱턴에서 열린 IMF 패널토론에서 “우리는 누구를 구원해줄 처지가 못 된다. 우리는 구세주가 아니며 우리 스스로를 구하기에도 바쁘다”고 주장했다.

현재 4400억유로 규모인 유럽재정안정기금(EFSF)을 2조유로로 확충해 그리스 등 고위험 국가의 국채를 사들이는 방안도 검토되고 있지만 실질적인 실행 여부는 여전히 미지수다.

주요 20개국(G20)과 EU 내부에서는 그리스를 디폴트시키되 세계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는 이른바 ‘질서 있는 디폴트’ 방안도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세계경제의 운명이 걸린 그리스 해법에 지구촌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신동열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shin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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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제도 ‘비상’… 부활한 ‘벙커 회의’

글로벌 경제위기로 한국경제도 비상이 걸렸다.

주식시장은 연일 급등락을 거듭하며 지수가 낮아지고 있고 원화가치도 동반하락하고 있다.

특히 원­­·­달러 환율 급등(원화가치 급락)은 그렇지 않아도 고공행진을 하고 있는 물가에 부담을 줄 가능성이 크다.

지난달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이 4%에 그칠 것으로 내다봤다.

지난 6월 전망치를 0.5%포인트 하향한 것이다. 반면 소비자물가상승률은 4.5%로 0.25%포인트 상향 조정했다.

글로벌 경제상황이 악화되면서 우리 정부도 지난 6월 말 4.5%로 예상했던 성장률 전망치의 조정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나라 경제는 수출의존형이고 증권시장에 외국인 투자비중이 높아 대외변수에 취약하고 대응책도 마땅치 않은 상황이다.

한국은행의 외환보유액이 3000억달러를 넘어 여유가 있다고는 하지만 외환시장에 무리하게 개입에 달러를 소진하면 외환위기에 처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우리나라 수출대상 국가들의 경기가 침체에 빠지면 한국경제의 버팀목 역할을 한 수출마저 위축될 가능성이 크다.

정부가 비상경제대책회의를 1년 만에 부활시키기로 한 것도 이런 위기의식 때문이다.

청와대는 이번주부터 목요일마다 개최하는 국민경제대책회의를 비상경제대책회의로 명칭을 바꿔 운영할 것으로 알려졌다.

벙커회의를 1년 만에 부활시키는 것이다.

비상경제대책회의는 2008년 가을 리먼브러더스 파산사태로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진 직후 청와대 지하벙커 비상경제상황실(워룸)에서 시작된 비상회의체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주 열린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주가 등 경제지표는 심리적인 요인도 크게 작용한다”며 “위기감을 갖고 철저히 대비하되 국민에게 충분히 설명해 지나친 불안감을 갖지 않도록 하라”고 지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