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쇠락하는 HW 명가들...소프트가 하드를 지배하다
아이폰 등장과 함께 시작된 ‘모바일 혁명’은 소프트웨어(SW)가 얼마나 중요한지 여실히 보여줬다.

소프트웨어 기술력이 강한 기업이 주도권을 잡고 하드웨어(HW)에 주력해온 기업들은 줄줄이 위기에 빠졌다.

세계 최대 휴대폰 메이커인 노키아가 벼랑 끝으로 몰렸고,미국 통신업계의 자존심이라고 하는 모토로라는 구글에 팔렸다.휴렛팩커드(HP)는 PC 사업에서 손을 떼기로 했다.

한 마디로 말하면 하드웨어 시대에서 소프트웨어 시대로 넘어가고 있다.

세계 최대 PC 메이커인 휴렛팩커드(HP)가 하드웨어 사업에서 손을 떼고 소프트웨어 비즈니스에 주력하기로 한 것은 세상이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HP는 지난달 컴퓨터 하드웨어 부문을 분사하거나 매각하겠다고 밝혔다.

세계 최대 PC 메이커가 “더이상 PC 장사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셈이다.

#하드웨어 채산성 갈수록 악화

HP가 이런 결정을 내린 것은 PC 팔아봐야 돈이 남지 않기 때문이다.

마진이 박하고 갈수록 이익 내기가 어렵다는 얘기다.

PC는 마더보드에 중앙처리장치(CPU)를 꽂고 운영체제(OS) 탑재하면 누구나 쉽게 만들 수 있다.

중국 레노버,대만 에이서 등이 HP보다 못할 이유가 없다.

이에 HP는 PC 스마트폰 태블릿 등을 만드는 하드웨어 부문을 떼내거나 팔기로 했다.

HP는 2002년 컴팩을 250억 달러나 주고 인수해 세계 최대 PC 메이커 자리를 굳혔던 기업이다.

당시 통큰 결정을 내린 최고경영자(CEO) 칼리 피오리나는 “실리콘밸리 여걸”로 불렸다.

그러나 3년 후 IBM은 PC 부문을 레노버에 팔고 기업을 대상으로 하는 소프트웨어 비즈니스에 주력해 변신에 성공했다.

HP가 뒤늦게 방향을 바꿔 ‘제2의 IBM’이 되려고 하는 셈이다.

HP는 오래 전부터 소프트웨어 기업으로 변신하기 위해 준비했다.

2008년 138억 달러에 EDS를 인수한 게 결정적이었다.

작년에는 컴퓨터 네트워킹 회사 쓰리콤을 27억 달러에,모바일 운영체제(OS) 웹OS와 스마트폰을 만드는 팜을 12억 달러에 인수했다.

이번에는 하드웨어 사업을 떼낸다고 발표하면서 영국 소프트웨어 기업 오토노미를 102억 달러에 인수하겠다고 밝혔다.

모토로라가 위기에 몰려 구글에 팔린 것도 충격적이다.모토로라는 미국 통신업계가 자랑스럽게 여겼던 아이콘과 같은 기업이다.

1928년에 설립됐으니까 사람으로 치면 여든세살이나 되는 장수기업으로,무전기도 세계 최초로 만들었고,페이저(일명 “삐삐”)도 세계 최초로 개발했고,휴대폰도 세계 최초로 내놓았던 기업이다.

이런 기업이 지난달 구글에 125억 달러에 팔렸다.

#아이폰 돌풍이 IT지형 바꿔


모토로라가 이런 수모를 당한 것도 따지고 보면 아이폰 때문이다.

모토로라는 2000년대 중반 ‘레이저’란 이름의 슬림폰으로 휴대폰 시장에서 돌풍을 일으켰다.

그러나 레이저 인기를 이어갈 후속 모델을 내놓지 못해 고전했다.내놓지 못한 게 아니라 후속 모델을 내놓아도 레이저에 가려 뜨질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아이폰이 나오는 바람에 단숨에 벼랑 끝으로 내몰렸다.

세계 최대 휴대폰 메이커인 노키아도 모토로라와 마찬가지로 심각한 위기에 직면했다.

노키아는 2007년 애플이 아이폰을 내놓기 전에는 대단한 기업이었다.

세계 휴대폰 시장 점유율은 40%를 오르내렸고 영업이익률은 20%대에서 고공비행을 했다.

그러나 아이폰이 나온 후 제대로 대처하지 못해 곤두박질하고 있다.소비자들이 노키아 폰을 외면하기 시작한 것이다.

노키아는 아이폰 나오기 전에는 심비안이라는 자체 OS를 탑재한 폰으로 스마트폰 시장을 휩쓸었다.

아이폰이 나온 후 심비안폰 판매는 급감했다.그러나 노키아는 아이폰에 대적할 만한 신제품을 내놓지 못했다.

급기야 CEO가 갈렸다.작년말 CEO가 된 스티븐 엘롭은 노키아를 “불 타는 플랫폼”이라고 비유하면서 살아 남으려면 바다로 뛰어내려야 한다고 역설했다.

노키아는 결국 심비안을 버렸다.

그 대신 자사 스마트폰에는 마이크로소프트의 모바일 OS ‘윈도폰’을 탑재하기로 했다.

마이크로소프트 역시 모바일 OS 시장에서 애플(iOS)과 구글(안드로이드)에 밀리고 있는 판국인데 노키아는 하필 마이크로소프트를 파트너로 택했다.

이제 노키아의 미래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소프트웨어 기술력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주도권 잡은 애플·구글

삼성전자와 LG전자도 위기에 빠졌다.

삼성은 아이폰이 나오자 재빨리 구글 안드로이드를 탑재한 안드로이드폰 갤럭시S를 내놓아 위기를 모면했다.

지금은 안드로이드 진영의 최강자로 부상해 애플과 정면대결을 벌이고 있다.

LG는 안드로이드폰이 아니라 윈도폰에 주력하는 바람에 위기에 몰려 CEO가 갈리는 수모를 당했다.아직도 스마트폰 시장에서 좀체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다.

소프트 파워로 주도권을 잡은 기업은 애플과 구글이다.

애플은 아이폰(스마트폰),아이패드(태블릿),맥북(노트북) 등 하드웨어를 만드는 기업이지만 생산은 직접 하지 않고 대만 팍스콘 등에 맡긴다.

대신 하드웨어에 들어가는 OS(모바일용은 iOS,컴퓨터용은 라이언)와 프로세서 등을 개발해 많은 이익을 내고 있다.구글 역시 안드로이드를 기반으로 모바일 시장의 강자로 부상했다.

김광현 IT전문기자 khk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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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W기술력 뒤지고 인력 턱없이 모자라


<우리나라 IT 현주소는...>

[Cover Story] 쇠락하는 HW 명가들...소프트가 하드를 지배하다
한때 ‘정보기술(IT) 강국’이라고 자부했던 우리나라의 소프트웨어 경쟁력은 어느 정도일까.아이폰 등장 후 소프트웨어 기술력이 형편없다는 사실이 명백히 드러났다.


소프트웨어 기술력에서 뒤지고 인력은 턱없이 모자라고….


여기저기서 “소프트웨어가 문제”라는 얘기가 나왔다.

이건희 삼성 회장도 “소프트웨어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며 “다양한 방법을 강구하라”고 말했다.

소프트웨어 경쟁력이 약해진 것은 소프트웨어를 배워 봐야 돈을 벌 수 없기 때문이다.


90년대까지만 해도 대학교 컴퓨터공학과나 전산학과에는 우수한 인재들이 몰렸다.


그 결과 90년대 후반 IT 붐 때는 한국이 ‘세계 최고’라고 자부할 정도로 앞서갔다.


우리 기업이 내놓은 제품이나 서비스에는 늘 ‘세계 최초’란 단어가 붙었다.


네이버 ‘지식인’도 그랬고 싸이월드도 그랬다.

그러나 IT 붐이 꺼지면서 소프트웨어 인력은 칼바람을 맞았다.

많은 개발자들이 잘려나갔다.


남은 사람들도 적은 월급을 받으면서 힘든 일을 감내해야 했다.

휴일도 없이 일하다 보니 “월화수목금금금”이란 말까지 나왔다.


참다 못해 사표를 내는 개발자들이 속출했다.

아이폰이 나온 후 소프트웨어 인력 수요가 급증했으나 한 번 떠난 개발자들은 돌아오지 않았다.

삼성 삼성 LG 등은 다급한 나머지 인터넷 기업이나 중소기업에서 소프트웨어 인력을 대거 뽑아갔다.

소프트웨어 인력난은 극에 달했다.

그 결과 혁신적인 제품이나 서비스를 내놓지 못하고 미국 기업 따라하기에 급급한 실정이다.

뒤늦게 “소프트웨어 인력을 대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지만 생태계가 바뀌려면 시간이 걸릴 것 같다.

/김광현 한국경제신문 IT전문기자 kh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