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빚더미에 눌린 미국…저무는 ‘팍스 아메리카나’
세계 3대 신용평가회사 중 하나인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가 지난 5일 미국의 국가신용등급(미국 국채의 신용등급)을 최고 등급인 AAA에서 한 단계 아래인 AA+로 강등했다.

1941년 AAA 등급을 부여한 지 70년 만이다.

이로써 세계를 호령해온 초강대국 미국의 자존심은 상처를 받게 됐다.

특히 신용등급 하락으로 미국 뉴욕 증시뿐 아니라 한국 증시 등 전 세계 금융시장이 요동치면서 미국은 재정 위기를 겪고 있는 유럽과 함께 세계 경제의 천덕꾸러기 신세를 면치 못하게 됐다.

세계의 안전자산 역할을 해온 미 국채와 달러에 대한 인식이 바뀌면서 세계 금융 및 통화 질서가 재편되는 게 아니냐는 분석까지 나오고 있다.

# 방만한 살림살이가 화 키워

S&P가 미국의 신용등급을 강등한 것은 최근 미국 정부와 의회가 부채 한도 증액 협상을 타결지으면서 확정한 재정적자 감축 규모(향후 10년간 2조4170억달러)가 미국의 재정 건전성을 담보하기에는 크게 못 미친다고 판단한 데 따른 것이다.

재정적자란 세금 등으로 거둬들이는 수입에 비해 공무원 월급이나 사회보장비 등으로 사용하는 지출이 더 많아 생기는 적자를 말한다.

이를 메우기 위해 정부는 채권을 발행하게 되는데 S&P는 미국 연방정부의 부채가 늘어나는 속도를 추정해본 결과 미국이 빚을 갚지 못하게 될 확률이 과거보다 더 높아졌다고 본 것이다.

S&P는 당초 "적어도 10년간 재정적자를 4조달러는 줄여야 현재 신용등급을 유지할 수 있다"고 경고했었다.

미국의 재정적자는 올해 1조4000억달러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지난해에는 1조2900억달러였다.

3년 연속 재정적자가 1조달러는 넘어선데다 적자 규모도 계속해서 커지고 있다.

게다가 누적 국가부채는 14조달러를 돌파하면서 이자부담도 커졌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는 미국 정부 부채가 2008년 GDP(국내총생산) 대비 71%에서 올해 101%로 급증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는 미국이 만성 부채국에서 벗어날 가능성이 희박해질 것이란 뜻이다.

신용등급이 하락할 정도로 미국의 재정적자와 부채가 늘어난 이유는 2008년에 발생한 금융위기와 관련이 깊다.

금융위기로 경기가 침체되자 정부가 돈을 풀어 경제를 지탱해왔기 때문이다.

반면 각종 세금혜택으로 세수는 줄어들면서 적자 규모가 커졌다.

이를 충당하기 위한 부채도 자연히 늘어날 수밖에 없었다.

전문가들이 최근 미국 경제위기를 '금융위기가 재정위기로 전이된 것'이라고 표현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결국 눈앞에 보이는 문제(경기침체)를 막기 위한 단기적인 처방(재정지출과 부채 확대)이 정부 살림살이의 건전성을 훼손했다는 얘기다.

# 비효율적 정치 시스템도 한 몫

S&P가 미국의 신용등급을 강등한 또 한 가지 이유는 정치권의 의사결정 시스템에 대한 불신이다.

재정적자가 이슈가 된 것은 공화당이 지난 5월 의회가 부채한도 증액을 승인해 주는 조건으로 재정적자를 줄여야 한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법적으로 정해진 국가 부채가 한도에 이르면 더이상 빚을 낼 수 없다.

그렇게 되면 정부가 발행한 채권,즉 국채에 대한 이자 지급이 중단될 수 있다.

미국 정부가 이자를 갚지 못하는 초유의 디폴트(채무불이행) 사태가 발생할 위기에 처한 것이다.

이 때부터 양당은 재정적자 축소라는 큰 방향에는 동의하고 얼마나,그리고 어떻게 줄일 것인지에 대한 협상에 돌입했다.

이 과정에서 정치권은 극도의 비효율성을 드러냈다.

재정적자를 줄이기 위해서는 세금을 늘리고 지출을 줄여야 한다.

그러나 공화당은 세금을 늘리지 않고 지출을 줄여야 한다고 주장한 반면 민주당은 세금을 늘리고 지출은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각자의 지지 기반을 잃지 않기 위한 '치킨게임'이었다.

다행히 디폴트 시한인 지난 2일 협상은 극적으로 타결됐지만 백악관과 의회는 2조4170억달러라는 재정적자 감축 규모만 정하고 구체적인 감축 방안은 결정짓지 못했다.
[Cover Story] 빚더미에 눌린 미국…저무는 ‘팍스 아메리카나’
# 세계 경제 질서 재편되나

사실 미국 국채의 신용등급이 강등됐다고 해서 미국이 빚을 갚지 못할 정도라는 뜻은 아니다.

AAA보다는 한 단계 밑이지만 AA+도 여전히 높은 신용등급이다.

AAA는 채권의 원리금을 상환할 가능성이 '극도로 높다(extremely high)'는 뜻이고 AA+는 '아주 높다(very high)'는 뜻이다.

특별한 차이가 없다.

또 미국은 언제든지 세계의 기축통화인 달러를 찍어낼 수 있는 권한이 있기 때문에 디폴트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미국 신용등급 하락은 미국 경제의 더블딥(경기회복 후 재침체) 우려와 함께 투자자들의 불안 심리를 부추기면서 세계 증시의 대폭락으로 이어졌다.

이 과정에서 발언권이 세진 것은 미국 국채를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는 중국이다.

중국의 고위관료들은 미국 신용등급 하락 후 "미국은 국방비를 낮춰서라도 재정지출을 줄여야 한다"고 미국을 압박했다.

또 "위안화의 국제화를 앞당겨야 한다"며 달러 중심의 국제 통화 시스템에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

이번 기회를 세계 경제 패권으로 한걸음 더 나아가는 기회로 여기고 있는 셈이다.

뉴욕=유창재 한국경제신문 특파원 yoocoo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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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평가사가 금융시장의 뇌관?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의 미국 신용등급 강등 여파로 전 세계 주식시장이 연일 하락세를 이어가면서 신용평가사에 대한 원망의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하필 미국 경제의 더블딥 우려와 유럽의 재정위기 확산 우려가 심화되고 있는 시점에 신용등급을 강등해 투자자들에게 막대한 손실을 입혔다는 주장이다.

미국 재무부도 "S&P의 신용등급 강등은 근거 없는 결정"이라며 비판하고 있다.

미국 상원은 S&P의 신용등급 강등 과정에 대해 조사까지 벌일 태세다.

하지만 S&P는 억울하다고 하소연한다.

이 회사의 국가신용등급 평가 책임자인 데이브드 비어스는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미국 신용등급 강등 조치를 후회하지 않는다"면서 "신용등급 강등 때문에 금융시장이 불안감에 휩싸였다는 주장은 심한 과장"이라고 말했다.

"이미 전부터 시장은 요동치고 있었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S&P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는 잦아들지 않고 있다.

일각에서는 특히 S&P가 금융위기 발생의 한 원인을 제공했다는 점에서 이번 신용등급 강등이 역설적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S&P는 금융위기 당시 위험 자산으로 드러난 부채담보부증권(CDO) 등 구조화 상품에 최고등급(AAA)을 유지했다가 투자자들에게 막대한 손실을 입혔다는 비난을 받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