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위세 꺾인 달러…기축통화 논쟁 뜨거워진다
3년 전 국제통화기금(IMF)의 준비통화인 특별인출권(SDR)을 슈퍼 통화로 도입하자고 중국이 국제사회에 제안한 후 간헐적으로 논의돼 왔던 기축통화 논쟁이 다시 거세지고 있다.

특히 신용평가회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가 미국의 국가신용등급을 한 단계 떨어뜨린 것을 계기로 논란이 가열되는 양상이다.

# 주목 끄는 세계단일통화 논의

중국의 주장대로 새로운 기축통화를 도입할 필요가 있는지를 검토하려면 크게 두 가지 문제가 전제돼야 한다.

하나는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하는 기축통화가 도입될 만큼 세계가 하나의 시장이 되었는가다.

다른 하나는 그동안 기축통화 역할을 담당해 왔던 미국 달러화가 과연 새로운 기축통화에 그 역할을 넘겨줄 수 있는 것인가를 점검해 봐야 한다.

벌써 뉴밀레니엄 시대를 맞은 지 햇수로 10년이 넘었다.

지금까지 나타난 모습을 본다면 미국을 중심으로 한 미주경제권,독일과 프랑스를 중심으로 한 유럽경제권,그리고 일본과 중국을 중심으로 한 동아시아경제권 간의 견제와 균형을 통해 21세기 세계경제질서가 형성되고 있다.

국제통화질서도 달러화와 유로화,아시아 단일통화를 축으로 하는 3극 통화체제가 가시화돼 왔다.

최근 들어서는 전 세계를 하나의 화폐로 통용시키자는 세계단일통화 도입 논의가 일고 있어 주목된다.

라틴어로 '지구'라는 의미를 갖고 있는 테라(Terra)와 달러화의 사용 범위를 넓히는 달러라이제이션,유로화 도입을 모델로 한 글로벌 유로화 등이 그것이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하는 단일통화를 도입해야 하는 여건은 어느 정도 성숙돼 가고 있고 이미 많은 방안이 논의됐다.

# 흔들리는 달러화 위상

그렇다면 2차 대전 이후 기축통화 역할을 담당해 왔던 미국 달러화가 새로운 기축통화로 주도권을 넘겨줄 여건이 성숙돼 있는가 하는 점이다.

최근 국제금융시장에서는 모기지 사태와 국가신용등급 강등 조치를 계기로 달러 가치가 흔들리면서 1970년대 이후 미국과 아시아 국가 간에 묵시적으로 유지돼온 '제2 브레턴우즈체제'가 붕괴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브레턴우즈체제란 1944년 국제통화기금(IMF) 창립 이후 미국의 달러화를 기축통화로 하는 금환본위 제도를 말한다.

같은 맥락에서 제2의 브레턴우즈체제란 1971년 닉슨의 금태환 정지선언 이후 '강한 달러-약한 아시아 통화'를 근간으로 미국과 아시아 국가 간의 묵시적인 합의하에 유지해온 환율제도를 의미한다.

미국이 이를 유지해온 것은 아시아 국가들의 경제 발전을 도모하고 공산주의의 세력 확산을 방지하고자 했던 의도가 깔려 있었다.

시각차가 있으나 제2 브레턴우즈체제는 이런 미국의 의도를 충분히 달성한 것으로 평가된다.

제2 브레턴우즈체제에 균열을 보이기 시작한 때는 1980년대 초다.

일본의 대규모 무역수지 흑자로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는 더 이상 용인할 수 없는 위험 수준에 달했다.

당시 미 행정부는 여러 방안을 동원했으나 결국 선진국 간 미 달러화 약세를 유도하기 위한 플라자합의로 이 문제를 어느 정도 극복할 수 있었다.

플라자합의란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당시 미국에 큰 무역수지 흑자를 보이고 있는 일본의 엔화 가치를 크게 끌어 올리기로 미국 플라자호텔에서 합의한 것을 말한다.

제2 브레턴우즈체제가 또 한 차례 균열을 보이게 된 계기는 1995년 4월 달러화 가치를 부양하기 위한 역(逆)플라자합의와 아시아 외환위기다.

역플라자합의에 따라 미 달러화 가치가 올라가는 과정에서 아시아 국가들은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강한 달러-약한 아시아 통화'간의 구도가 다시 나타난 것이다.

그 결과 2000년대 들어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가 다시 불거지면서 1980년대 초 상황이 재연되고 있다.

# 새통화체제 명시적 합의 어려워

그렇다면 제2 브레턴우즈체제가 붕괴되고 새로운 기축통화를 동시에 인정하는 통화체제가 올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결론부터 말한다면 앞으로 새로운 통화체제가 다시 온다 하더라도 명시적인 합의 형태가 되기는 어려워 보인다.

1980년대와 달리 각국 간 경기 회복세 차이로 다른 국가들이 더 이상의 달러화 약세를 용인하기는 힘든 상황이기 때문이다.

결국 미국의 신용등급 강등 조치를 계기로 새로운 통화체제가 다시 올 경우 명시적이기보다는 묵시적으로,달러화 약세를 유도하는 중심 통화도 중국의 위안화에 초점이 맞춰지는 '수정된 형태'가 될 가능성이 높다.

오바마 정부가 줄곧 위안화 절상을 주장해 왔던 것도 이 같은 현실을 인식한 불가피한 조치로 풀이된다.

제2 브레턴우즈체제가 붕괴되고 수정된 형태의 통화체제가 올 경우 우리 입장에서는 두 가지를 주목해야 한다.

하나는 원화 가치의 안전판이 무너진다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중국과의 높은 무역의존도를 감안할 때 2005년 7월에 단행된 고정환율제 포기 이후 위안화와 원화 간의 동조화 현상이 심해질 가능성이다.

한상춘 한국경제신문 객원논설위원 sch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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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러 약세는 추세적으로 지속될 듯

▶ 향후 달러 향방은…

미국의 신용등급 강등조치 이후 달러 가치는 어떻게 움직일까.

달러 가치를 결정하는 요인은 수없이 많지만 추세적으로 보면 국제통화질서 변화와 대체관계인 금값의 움직임에 가장 큰 영향을 받아왔다.

2차대전 이후 국제통화질서는 세 단계로 구분된다. 첫 단계는 국제통화기금(IMF)이 출범된 이후 1971년 당시 미국 대통령인 리처드 닉슨이 금태환 정지를 선언했던 이른바 '브레턴우즈체제'다.

이때는 중심 통화로 달러 위상이 확고하고 달러 가치도 금에 의해 완전히 보장됐던 시기다.

그후 국제통화질서는 과도기인 '스미스소니언 체제'에 접어들었다.

이 시기에는 달러 가치가 금에 의해 완전히 보장되지 않음에 따라 달러 가치와 금값 간에 괴리가 서서히 발생했다.

현 국제통화질서인 자유변동환율제가 정착된 것은 1976년 킹스턴회담 이후다.

이 시기에 각국의 통화가치는 원칙적으로 자국 내 외환 수급 여건에 맡겨 결정토록 했다.

물론 달러 가치도 금에서 완전히 자유로워졌다.

국제 금값과 달러 가치 간에 괴리가 벌어진 결정적인 계기가 된 것은 2008년 발생했던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사태였다.

특히 미국의 국가신용등급 강등 조치 이후 달러 약세가 더 뚜렷해지고 있다.

더 주목되는 것은 그동안 달러를 대체할 수 있는 중심통화로 거론돼온 유로화,위안화,엔화에 대해서도 약세현상이 뚜렷하다는 점이다.

미국의 신용등급 강등 조치 이후 달러 약세가 뚜렷해지는 것은 크게 보면 두 가지 요인이다.

무엇보다 당사국 요인으로 미국이 재정적자와 국가채무 등과 같은 구조적 문제점으로 달러에 대한 신뢰가 예전만 못하기 때문이다.

미국 이외 다른 국가들의 탈(脫)달러 조짐도 가세되고 있다.

이 때문에 최근과 같은 국제 금값의 고공행진은 지속되고 달러 가치는 추세적으로 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