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나눔의 새바람 '재능기부'··· 세상 밝혀주는 '행복한 소통'
정재승 KAIST 교수는 수년째 지방 청소년들을 위해 과학강연을 하고 있다.

자신의 과학지식을 상대적으로 소외된 청소년들에게 아낌없이 주고 싶은 마음에서다.

하지만 혼자서는 벅찼다. 정 교수는 얼마 전 트위터를 통해 '강연기부를 해주실 분을 찾는다'는 글을 올렸다.

반응은 놀라웠다. 글이 올라간 뒤 불과 10시간 만에 300여명의 지식인들이 강연기부를 하겠다는 뜻을 전해왔다.

"허드렛일이라도 시켜달라"며 참여를 호소한 비과학도만도 100여명에 달했다.

재능이 부족하니 돈으로라도 기부하고 싶다는 사람도 많았다.

우리 사회에 '나눔의 DNA'가 강해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재능기부란 말은 미국 변호사들의 무료 봉사가 출발점이지만 최근엔 그 영역이 급속도로 확대되고 있다.

노래를 부르는 가수들은 자신의 노래로 아픈 마음을 달래주고,의사들은 자신의 의술로 소외된 사람들을 치료해준다.

지식이 있는 사람들은 강연으로, 운동을 잘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운동특기로 이웃과 사회에 힘을 보탠다.

음악 미술 교육 미용 의료 체육 등 재능기부의 영역은 무한하다.

재능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따스한 마음만 있으면 얼마든지 그들을 필요로 하는 곳이 도처에 있음을 알게 된다.

재능엔 높낮이가 없고,다만 지구상 인구의 숫자만큼 다양함이 있을 뿐이다.

얼마 전 악보를 볼 수 없는 시각장애(2급)자인 박경태 씨(39)가 울산에서 열린 거리음악회에서 오카리나 무료공연으로 감동을 줬다.

도움을 받아야 할 처지에 오히려 자신의 재능을 아낌없이 기부한 것이다.

'국민 엄마' 김혜자 씨는 시청자들을 울리고 웃기는 스타 배우다.

몇년 전부터 인터넷에서 '김혜자'를 검색하면 연기보다 봉사라는 단어가 떠 많이 떠오른다.

월드비전의 친선대사로 아프리카의 오지를 돌며 그의 재능을 베풀고 있다.

그가 기부하는 재능은 연기가 아닌 따스한 마음이다. 사회가 다양해지면서 기부가 물질로만 한정되지 않는다.

오히려 물질보다 재능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우리 모두가 재능기부에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다.

물질적 기부와 재능기부의 공통분모는 '나눔'이다.

상하위 개념도 성립되지 않는다.

다만 나눔의 방법이 다를 뿐이다.

기부는 기부자와 수혜자 모두를 행복하는 만드는 선순환 사이클을 확대시킨다.

기부로 물질은 줄어들지만 재능은 오히려 업그레이드된다.

어느 교수가 수년간 지식을 기부하면 그의 지식이 없어지기보다 오히려 풍부해지고 깊어지는 원리다.

재능기부는 좁게는 수혜자를 변화시키고 크게는 사회,국가를 변화시킨다.

"남에게 도움을 받는 것은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다.

미국에서 공부하면서 장학금에 많이 의지했는데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한데 그런 자존심을 살리려면 내가 받은 만큼,아니 그 이상으로 누군가에게 돌려주면 된다.

내가 나눔에 관심이 많은 것도 그런 이유다. " 나눔국민운동 손봉호 대표의 말은 기부의 선순환을 잘 설명해준다.

재능을 받은 자가 나중에 그 재능을 다시 누군가에게 기부하면 선순환의 사이클이 커지고 세상은 그만큼 행복해진다.

쌍방향 기부도 늘어나고 있다.

미국의 전설적인 석유투자자 분 피켄스는 기부의 목표가 달성돼야만 재투자를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미국 텍사스 사우스웨스턴 의과대학에 우리나라 돈으로 500억원을 기부했다.

한데 '기부한 돈을 10배로 불릴 때까지는 쓸 수 없다'는 조건을 붙였다.

25년 안에 이 목표가 달성되면 대학이 기부금을 사용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이 돈은 오클라마호주에 귀속된다.

기부를 하면서 동시에 받는 자의 변화와 노력을 요구한 것이다.

재능기부도 마찬가지다. 재능을 수동적으로 받지 않고 그 재능을 몇배로 키워 제3자에게 돌려 주는 것이 재능기부의 진정한 의미다.

미국의 위상이 흔들린다는 지적이 많다.

경제 회복세가 둔화되면서 달러가치는 수년째 하락세다.

가까스로 한 고비를 넘겼지만 최근엔 정부의 부채한도 증액을 놓고 갈등이 심해지면서 디폴트가 우려된다는 분석까지 나왔다.

이런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미국의 위상이 있다.

바로 기부문화다.

미국을 비난하는 사람들도 기부문화엔 후한 점수를 준다.

기부문화가 추락하는 미국의 이미지에 브레이크를 걸어주는 셈이다.

재능을 나누든, 물질을 나누든 기부는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힘이 있다.

이는 개인 단체 기업 국가 모두 마찬가지다.

의도된 재능기부가 아니라도 기업들은 기부를 통해 회사의 이미지를 끌어올린다.

기업들이 앞다퉈 재능기부 활동에 나서는 이유이기도 하다.

글로벌시대에 기부문화는 그 나라의 이미지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기부를 넘어 국가와 국가로 재능기부를 넓히면 그만큼 국제사회에서 '코리아 브랜드'가 업그레이드 된다.

또한 재능기부는 혼탁한 사회를 정화시키는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우리나라도 기부문화의 뿌리를 깊게 만들어 국가브랜드를 한 단계 끌어올려야 한다.

탤런트 김혜자 씨의 재능기부 의미를 한번쯤 되새겨 볼 때다.

신동열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shin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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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기술로 봉사하는 '프로보노'··· 공익을 위하여!


재능기부가 확산되면서 우리 귀에 익숙해진 말이다.

프로보노는 라틴어 pro bono publico의 줄임말로 '공익을 위하여'라는 뜻을 지녔다.

일종의 재능기부다.

유래는 미국 변호사들의 무료 봉사다.

미국 변호사들은 연간 50시간 이상 공익활동을 해야 한다. 미국 변호사협회가 1993년 정한 규정 때문이다.

로펌은 개인 변호사와 달리 고객의 대부분이 기업이어서 사회 · 경제적으로 약자들을 접할 기회가 적다는 게 이유다.

미국 변호사협회는 매년 로펌의 공익활동에 순위를 매겨 발표한다.

50대 로펌의 순위는 상당수 봉사활동 순위와 겹친다. 봉사를 많이 할수록 사회적 인식이 좋아져 더 많은 사건을 수임하는 선순환이 이뤄지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도 변호사법에서 연 20시간의 공익활동을 의무화했다.

무료로 변론을 하거나 주로 팀을 이뤄 사회적 기업(공익을 목적으로 운영되는 기업) 설립방법과 세금 회계 등을 컨설팅해 준다.

기업들도 프로보노 활동에 적극적이다.

SK그룹은 법률 재무 인사 마케팅 담당 임직원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SK 프로보노'를 발족시켰고,LG전자도 '라이프스굿(life'good) 자원봉사단'을 만들어 전국 사업장에서 재능 나눔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삼성증권 ING생명 현대카드 등 금융사들도 다양한 재능기부 프로그램을 만들어 봉사활동에 참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