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학벌 지상주의' 무너지나
산업은행이 하반기 신입사원 채용 정원 중 3분의 1을 고교졸업자로 뽑기로 했다.

산은이 고졸자를 행원으로 채용하기는 1997년 이후 15년만에 처음이라고 한다.

고졸자 채용안이 발표되자 큰 반향이 일었다.

한결같이 “잘했다”는 것이다.

산은이 칭찬받은 이유는 뭘까.바로 우리 사회의 불편한 진실인 학벌 지상주의를 일부나마 깼기 때문이다.

학벌 지상주의는 대졸,고졸 등 오로지 학력에 따라 경제적,사회적,인격적 대우와 평가를 차별하는 집단적 편견이다.

학벌 지상주의 사회에선 전문지식이나 양식,실력,창의력,개성보다 대학졸업장 유무에 따라 채용기회가 달라지고 임금수준이 결정된다.

임금의 경우 고졸자를 100으로 했을 때 대졸자의 임금이 154.4에 달할 정도로 우리나라에선 차이가 많다.

이런 학력차별은 너도 나도 대학으로 몰려가는‘학력 인플레이션’을 일으키는 원인이 된다.

우리나라 고졸자의 대학진학률은 82%(4년제 79%)에 이른다.

고졸자 10명 중 8명이 대학에 가는 셈이다.세계에서 가장 높은 비율이다.독일 스웨덴 네덜란드 등 선진국의 대학진학률은 40~50%에 불과하다.

더 큰 문제는 이렇게 많은 사람이 대학에 가도 졸업후 취업이 제대로 보장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지난해 4년제 대졸자의 취업률은 46.0%에 불과했다.

같은 해 15세 이상 인구 전체의 고용률인 58.7%보다 밑돈다.1년에 1000만원 안팎의 등록금을 내고 대학에 가봐야 밑지는 장사라는 얘기다.

학벌 지상주의는 이미 한계에 이르렀다.개인과 국가적으로 고비용·저효율의 극치다.

전문가들은 기업과 정부가 나서야 학벌 지상주의의 폐해를 점차적으로 없앨 수 있다고 지적한다.

산업은행 뿐 아니라 미래테크라는 중소기업과 기업은행,KT의 학력파괴 노력은 좋은 사례다.

경남 함안에 위치한 미래테크는 고졸자 초봉을 2400만원으로 대기업 못지 않게 책정했고 대졸자와의 승진차별도 없앴다.

기업은행은 15년만에 고졸 행원 60명을,KT는 고객과 직접 접촉하는 서비스 직군에 고졸자 300명을 연내에 채용하기로 했다.

기업들이 필요 인력을 마이스터고나 특성화고교에서 가능한 많이 채용하면 무턱대고 대학에 가고 보자는 식의 학벌 지상주의가 개선되고 궁극적으로 대졸자 대량실업 시대도 끝낼 수 있다는 분석이다.

정부도 학력차별 금지법 제정 논의에 나설 필요가 있다.

대학학력이 필요한 업종이 있어 일률적으로 적용하긴 어렵겠지만 학력을 기준으로 승진과 임금을 차별하지 않도록 여건을 조성해야 한다.

[Cover Story] '학벌 지상주의' 무너지나
[Cover Story] '학벌 지상주의' 무너지나
마이스터고에서 실력을 갖춘 졸업생에 대해서는 대졸자와의 호봉차이를 없애는 것도 방법이다.

물론 첨단기술이 갈수록 진화하고 글로벌 경쟁이 심화되고 있는 시대에 대학진학을 오로지 학벌 지상주의로 매도해선 안된다.

문제는 정도다.

우리나라에 유독 심하게 나타나고 있는 학벌 지상주의와 대학진학률 80% 시대의 문제점 등을 4,5면에서 알아보자.

고기완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dad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