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까지 재정위기 사정권에 들면서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이 '빅뱅(대폭발)' 우려에 휩싸였다. 혼돈이 유럽을 지배하고 있다. "(독일 일간 디벨트)

"지금이야말로 유럽연합(EU)이 마땅히 나설 때다. "(엔다 케니 아일랜드 총리)

유럽의 재정위기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고 있다.

그리스부터 시작된 유럽 재정위기는 아일랜드 포르투갈을 거쳐 이탈리아 프랑스까지 번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EU 정상들은 뚜렷한 해결책을 찾지 못하면서 EU의 지도력 부재가 위기의 원인으로도 지목되고 있다.

국제신용평가업체들은 민감한 때마다 EU 국가들의 신용을 강등시켜 불에 기름을 붓고 있다.

세계 경제는 유럽 재정위기의 불길이 어디로 번질지 다양한 전망을 제시하며 유럽의 향배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 유로존 경제3위 이탈리아 위태

지난 8일 10년물(10년에 만기가 도래하는) 이탈리아 국채금리는 5.27%를 기록해 전날에 비해 0.13%포인트 상승했다.

2002년 6월 이후 가장 크게 오른 것이다.

국채 금리가 올랐다는 것은 국채의 가격이 하락했다는 뜻으로 그만큼 유로존 경제규모 3위 국가인 이탈리아의 신용도가 떨어졌다는 걸 의미한다.

유럽 재정위기가 이탈리아까지 확산될 것이란 우려가 커지면서 달러 대비 유로화 가치는 1%가량 떨어졌다.

이탈리아 증시에서 우니크레디트(-7.8%) 인테사산파올로(-4.5%) 등 금융주도 큰 폭으로 주가가 하락했다.

게다가 이탈리아 국내 정치도 불안하다.

최근 이탈리아 법원은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총리 소유 핀인베스트 그룹에 판사에게 뇌물을 제공한 혐의를 인정해 5억6000만유로(8470억원)를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미성년 성매매 혐의 등 각종 스캔들에 휘말리고 있는 베를루스코니 총리에겐 정치적 타격이다.

재정적자를 줄이기 위한 정부 긴축안에 대해서도 정치권 내 갈등이 뒤따르고 있다.

뒤늦게 2014년까지 총 400억유로의 재정지출을 줄이는 긴축안에 대해 여야 모두 합의를 도출하려고 하지만 상황은 녹록지 않아 보인다.

프랑스 금융권이 이탈리아 최대 채권단인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전 세계 24개국 은행들이 총 8673억달러 규모의 이탈리아 채권을 보유하고 있으며 그중 절반가량을 프랑스(2926억달러)가 지니고 있다.

# 구제금융 받은 아일랜드 또 휘청

이탈리아의 국채금리 상승으로 금융시장의 불안감이 증폭됐던 '검은 월요일' 다음날,국제신용평가업체 무디스는 아일랜드의 신용긍급을 '정크(투자부적격)' 수준으로 강등했다.

지난해 11월 EU와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850억유로의 구제금융을 받은 후 추가 구제금융은 필요하지 않다고 자신감을 보여 왔다.

하지만 무디스는 아일랜드가 추가적인 지원이 불가피한 것으로 판단해 신용등급을 강등한 것이다.

전날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EU는 또다시 타격을 입은 것이다.

아일랜드를 비롯해 유로존 각국은 무디스와 S&P 등 미국 신용평가회사들이 유럽 재정위기의 민감한 시점마다 유럽국가의 신용등급을 내리며 사태를 악화시키고 있다고 반발하고 있다.

실제 지난달 말 그리스 의회에서 긴축안이 통과돼 재정위기 우려가 누그러들자마자 미국 신용평가 회사들은 그리스의 디폴트(채무불이행) 가능성을 경고했고 지난 5일엔 포르투갈의 신용등급을 정크 수준으로 강등한 바 있다.

유럽 재정위기가 악화되면서 향후 유로존의 운명과 대응 방안에 대해 다양한 전망이 제기되고 있다.

첫 번째로 지난 18개월 동안 반복됐던 혼란이 계속될 것이란 예상이다.

유로존이 구제금융을 약속하는 대신 강력한 긴축안을 요구하고 이는 실업률 증가로 이어져 당분간 혼돈 상태가 지속된다는 것이다.

두 번째로 유로존재정안정기금 규모를 두 배로 확대해 구제금융을 늘리는 것이다.

사태해결의 근본적 해결은 될 수 없지만 발등의 불부터 끄고 보자는 계산이다.

이미 구제금융이 결정된 그리스와 아일랜드,포르투갈을 살리고 스페인이 부도날 경우에 대비한다는 의미에서 EU는 7500억유로 규모 재정안정기금을 마련했다.

여기에 이탈리아까지 쓰러지는 최악의 사태를 가정해 이를 1조5000억유로 규모로 확충하는 방안이 거론되고 있다.

세 번째는 그리스 디폴트다. 그리스는 의회가 긴축안을 통과시킴으로써 구제금융을 받을 수 있게 됐지만 그리스 경제는 이미 글로벌 금융시장에서는 '사실상 디폴트'로 여겨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그리스 디폴트가 선행돼야 이후 재정위기에 빠진 유럽 국가들을 상대로 과감한 채무조정 등 본격적인 재정위기 치유도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마지막으로 최악의 상황인 유로존 붕괴를 들 수 있다.

유로존 재정위기가 경제력 차이가 큰 북유럽 국가들과 남유럽 국가들이 단일통화를 쓰는 문제에서 발생한 만큼 유로존 체제가 무너질 수밖에 없을 것이란 예측도 힘을 얻고 있다.

유로존이 붕괴되면 독일 프랑스 등 유로존 전 국가가 마르크화와 프랑화 등 자국통화로 되돌아갈지,아니면 유로화가 북유럽 핵심국을 중심으로 한 '메이저리그'만의 단일통화로 남을지에 대해선 전망이 엇갈린다.

정성택 한국경제신문 기자 naive@hankyung.com

---------------------------------------------------------

복지에 길든 시민들... 밥그릇 지키기 연연

▶ 위기부른 그리스는 요즘...

[Global Issue] 이탈리아 너마저!··· 재정위기 '유로존' 기로에 서다
그리스 의회는 지난달 29일 정부의 재정 적자를 줄이기 위한 긴축안을 통과시켰다.

이로써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과 국제통화기금(IMF) 등이 지난해 제공키로 약속한 구제금융 1100억유로(165조원) 중 5차분 120억유로를 예정대로 받을 수 있게 됐다.

또 1200억유로 규모의 추가 구제금융 논의도 탄력을 받게 됐다. '국가부도'나 다름없는 디폴트(채무불이행)는 면한 셈이다.

긴축안으로 정부의 복지 지출이 줄어들게 되면 불가피하게 시민들의 희생이 뒤따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리스의 재정적자 비율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10.4%,정부 부채비율은 GDP 대비 143%로 유로존 최고 수준이다.

정부 예산 가운데 3분의 1 이상이 사회복지 예산이고,퇴직자들에게 지급하는 연금의 50% 이상을 정부가 부담한다.

그리스 양대 정당인 사회당과 신민주당이 '표'에 혈안이 된 나머지 정부 지출을 담보로 하는 선심성 정책들을 쏟아낸 결과다.

그리스 노동계는 의회 표결 하루 전부터 정부의 임금 · 연금 삭감,공기업 구조조정에 항의해 48시간 총파업에 들어갔다.

아테네를 비롯한 그리스 주요도시의 대중교통과 물류는 모두 멈춰섰다.

의회 표결을 앞두고 긴축안에 반대하는 그리스 시민들은 돌멩이 등을 들고 아테네 신타그마 광장에 운집했다.

시위를 진압하기 위해 경찰 3000여명이 배치됐다.

'내 임금과 연금을 양보할 수 없다'는 그리스 시민들의 시위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뼈를 깎는 긴축안에 대처하는 그리스 시민들의 모습은 1997년 한국의 외환위기 당시 한국 국민의 태도와 대조를 이룬다.

당시 한국은 IMF가 권고한 긴축안을 수용했다.

도산한 기업은 줄을 이었고 수많은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었다. 노동계는 반발했지만 국가를 위해 희생을 감수해야 한다는 분위기였다.

국민은 구제금융 조기상환을 위해 자발적으로 금 모으기 운동까지 벌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