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기능 회복을 위해서도 물가단속은 필요"

"가격규제는 시장 왜곡하고 풍선효과만 낳아"



물가상승세가 예사롭지 않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올들어 6월까지 6개월 연속 4%를 넘어서는 등 그야말로 물가비상이 걸린 상태다.

각종 경제현상 중 인플레이션 만큼 경제에 치명적 영향을 주는 것도 드물다.

지나친 인플레는 경제 전체의 성장동력을 갉아먹고 특히 저소득층의 삶을 더 힘들게 만드다는 점에서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정부가 가장 체감도 높은 외식비에 직접 손을 대겠다고 한 것도 아마 이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실제 칼국수 한 그룻에 들어가는 밀가루 값은 50원 가량 올랐지만 칼국수 가격은 1000원 오르는 등 음식값이 터무니 없게 오르는 사례가 최근 적지 않은 게 사실이다. 칼

국수 이외에도 삼겹살 등 고기류 가격과 자장면 등의 가격도 하루가 멀다 하고 상승 곡선을 긋고 있다.

올해 하반기 최우선 경제과제를 물가안정에 둔 정부는 이에따라 지나친 가격 인상을 억제하기 위한 다양한 방안을 마련중이다.

특히 공정거래위원회는 삼겹살 냉면 칼국수 김치찌개 자장면 설렁탕 등 6개 외식품목 가격과 이 · 미용 요금에 대한 조사를 실시해 매달 가격을 공개하기로 했다.

직장인들이 주로 찾는 외식지역을 대상으로 품목별 평균가격과 저렴한 업소 등을 공개해 가격 인하를 유도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부가 이처럼 직 · 간접 가격규제에 나서는 것에 대해서는 찬반 논란이 팽팽하다.

물가를 잡기위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 있는 반면 가격구조를 왜곡하고 가격 인하효과도 없다는 반대론도 있다. 정부의 가격규제를 둘러싼 찬반 논란을 알아본다.


⊙ 찬성


모든 제품 가격이 시장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현실적으로 이렇게 되지 않을 경우에는 정부의 개입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무엇보다 물가안정이 우선이고 특히 서민들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정부의 가격 규제가 필요하다고 하는 주장도 같은 맥락이다.

찬성론자들은 물가 상승기에 일부 업체들이 이를 핑계로 실제 원가상승폭보다 훨씬 큰 폭으로 제품 가격을 올려 폭리를 취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지적한다.

최근 공정거래위원회가 과징금을 부과한 농심의 '신라면 블랙'과 같은 케이스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실제 공정거래위원회는 과장광고나 담합 등 불공정거래행위를 통한 가격인상은 단순한 물가 잡기 차원을 넘어서 거래질서 확립을 위해서도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공정위는 이에따라 소비자단체들과 긴밀하게 정보를 교환해 서민생활밀접품목에 대한 가격 모니터링을 하고 있으며 이같은 활동은 궁극적으로 시장기능이 제대로 작동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공정위의 불공정거래 행위 단속이 결과적으로 사업자간 가격경쟁을 유도해 상품 가격 인하를 가져오는 것은 물론 시장경제 원리가 작동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소비자운동 차원에서 정부의 가격 규제를 지지하는 사람들도 있다.

요즘처럼 대기업들이 외식업이나 식품사업까지 장악해가는 상황에서 소비자들은 상대적으로 약자이고 정보에 어두울 수 밖에 없는데 이런 상황에서 거대 기업의 가격결정을 아무런 감시 없이 두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 반대

정부에 의한 가격규제는 잠깐 반짝 효과만 있을 뿐 근본적인 가격 안정을 가져오기 어렵다는 주장이다.

과거 정부가 품목별로 가격규제를 하던 시절에도 정부에 의한 규제가 큰 효과가 없었는데 지금처럼 개별 가격규제를 할 수 없는 상황에서는 풍선효과만 나타난다는 것이다.

다시말해 자장면 가격을 억누르면 쟁반자장 볶음자장 등 온갖 형태의 새로운 자장면이 등장하는 것처럼 직접적인 가격 통제는 결국 편법적인 가격인상으로 나타날 뿐 당초 의도한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더욱이 음식의 제조원가는 식당의 위치나 재료의 종류, 종업원 수 등에 따라 천차만별인데 칼국수 가격은 6000원을 넘으면 안된다는 식의 가격통제는 가능하지도 않고 타당하지도 않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생활물가와 외식비를 잡는다는 이런 정부의 단속이 결과적으로 골목상권 동네상권을 죽일 수도 있다는 주장도 있다.

정부가 SSM(슈퍼슈퍼마켓)을 규제할 때는 골목상권 동네상권을 보호해야 한다는 것을 기치로 내세웠는데 지금같은 물가단속은 동네음식점 등에는 치명타가 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실제 외식물가 등을 철저하게 단속할 경우 대형 음식점에 비해 식자재 구매 등에 있어서 가격협상력이 떨어져 원가부담이 상대적으로 높을 수 밖에 없는 동네음식점 등은 더 불리한 상황에 놓이게 될 가능성이 크다.

물가비상이 걸린 건 사실이지만 정부가 개별 가격에 관여하기 시작하면 점점 더 규제가 늘어날 수밖에 없고 결국 과거 권위주의 시대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가격규제는 조심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 생각하기

인플레이션이 무서운 것은 파급효과가 때문이다.

물가가 더 오를 것이라고 예상하면 각 경제주체들은 자신이 손해를 보지 않는 방향으로 의사결정을 하게 마련이다.

다시말해 물가상승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실질적인 소득 또는 구매력을 떨어뜨리지 않기 위해 비록 현재 물가상승으로 손실을 보지 않고 있더라도 그런 손실이 현실화될 것에 대비한 행동을 하게된다.

아직 원재료 가격이 오르지 않았는데 제품 가격을 미리 올리는 것이 대표적인 케이스다.

이런 경제주체들의 행동이 전 경제에 걸쳐 빠르게 확산될 경우 물가상승세는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된다.

소위 인플레이션 기대심리가 인플레이션을 가속화 시키는 전형적인 경우다.

정부가 6개 외식품목까지 지정해가며 가격인상에 제동을 걸려는 이유도 바로 이런 인플레 기대심리 확산을 차단하기 위한 것이다.

해당 품목에 대한 가격통제가 장기적으로 효과가 없다하더라도 최소한 무분별한 가격인상은 정부가 용인하지 않겠다는 사인을 시장에 보내려는 의도다.

하지만 그 어떤 가격통제도 성공하는 경우를 찾기는 쉽지 않다.

가깝게는 기름값 100원 인하를 둘러싼 소동만 봐도 그렇다.

어떤 식당이 맛도 없는데 지나치게 음식값이 비싸다면 정부가 개입하지 않더라도 결국 손님들이 외면하게 될 것이고 그 식당은 값을 내리든지 문을 닫을 것이다.

어느 정도의 정부 개입이 시장 왜곡을 막으면서 인플레 기대심리도 차단할 수 있는 지는 판단하기 쉽지 않다.

다만 정부는 담합이나 과장광고 등 불공정거래행위에 대한 단속에 집중하고 특정 품목에 대한 직접적 가격 규제는 가급적 자제하는 것이 그나마 차선의 방향이 될 가능성이 크다.

김선태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ks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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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경제신문 7월 7일자 A6면

서민 생활과 밀접한 외식 및 서비스 요금의 부당한 가격 인상을 막기 위해 삼겹살 냉면 칼국수 김치찌개 자장면 설렁탕 등 6개 외식품목 가격과 이 · 미용 요금에 대한 조사가 매달 이뤄진다.

대기업들의 지식재산권 남용에 대한 조사도 대대적으로 진행된다.

김동수 공정거래위원장은 6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전국경제인연합회 경제정책위원회 초청 강연에서 '하반기 공정거래정책 방향'에 대해 소개하며 이같이 밝혔다.

김 위원장은 "가공식품 등 민생 품목을 중심으로 담합 등 불공정 행위에 대한 조사를 강화해 가격안정을 유도했지만 물가상승세가 꺾이지 않고 있다"며 "하반기에도 민생 관련 분야의 변칙적 가격 인상에 대한 감시를 지속적으로 강화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김치 컵커피 등 담합 혐의가 포착된 가공식품에 대한 제재를 이달 안에 마무리하고,휴대폰 단말기 출고가 부풀리기와 의약품 리베이트 등 서민 부담을 초래하는 분야에 대해서도 면밀히 조사해 위법 사실이 드러나면 엄중히 제재할 것"이라고 말했다.

소비자단체와 연계한 시장 감시도 강화할 방침이다. 공정위는 프리미엄 소금,우유 · 발효유,프리미엄 주스 등 9개 프리미엄 상품의 성분 및 가격 정보 조사를 5개 소비자단체에 위탁할 예정이다.

최근 과징금 제재를 받은 농심의 '신라면 블랙'처럼 이들 프리미엄 제품이 과장 광고로 소비자를 현혹하지 않는지 들여다볼 계획이다.

또 10개 소비자단체와 공동으로 외식업 이 · 미용업 결혼준비대행업 등 20여개 업종에 대해 광역도시 내 주요 상권별 가격 실태조사를 벌일 예정이다.

이정호 한국경제신문 기자 dolp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