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철 정주영 박태준 등 한국 경제 일군 '일등공신'

[Cover Story] 기업가 정신은 세상을 발전시키는 힘
'20세기가 케인스의 시대였다면 21세기는 슘페터의 시대다. '

많은 경제학자들은 21세기에도 명성을 이어갈 경제학자로 조지프 슘페터를 꼽는다.

그가 100여년 전 제시한 '기업가정신(Entrepreneurship)'과 '창조적 파괴''혁신' 등의 가치가 오늘날에도 여전히 큰 의미를 가지기 때문이다.

슘페터가 1912년 '경제발전의 이론'에서 제시한 "발전 없이 기업가 이윤은 없고,기업가 이윤 없이는 발전이 없다"라는 표현은 기업가정신이 왜 중요한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위험과 불확실성을 무릅쓰고 이윤을 추구하고자 하는 기업가의 모험적이고 창의적인 정신을 뜻하는 기업가정신이야말로 경제를 발전시키고 기술을 진보시키는 원동력이며,세상을 움직이는 힘이다.

한국의 경제발전에도 많은 기업가들의 활약이 있었다. 맨손으로 세계적인 기업의 초석을 만들어낸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을 비롯해 고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 기업가가 있어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투철한 기업가정신을 가진 곳'이라는 평가가 나오기도 한다.

# 정주영의 "이봐, 해봤어?"

정주영 명예회장의 어록 가운데 하나인 "이봐,해봤어?"는 그의 기업가정신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다.

요즘 인기 TV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달인'이 하는 말처럼 들리지만 스스로의 능력에 한계를 짓지 않았던 그의 신념은 아무것도 가진 게 없던 가출 소년을 세계적인 기업의 총수가 되도록 한 원동력이 됐다.

1970년 겨울,아직 공사도 시작하지 않은 조선소 부지를 찍은 항공사진과 거북선이 그려진 500원짜리 지폐 한 장으로 선박을 수주한 그의 배짱과 뚝심은 한국형 기업가정신의 정수로 꼽힌다.

당시 수주를 디딤돌로 건설을 시작한 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는 오늘날 세계 1위 조선강국을 만드는 초석이 됐다.

폐유조선을 가라앉혀 물을 막아 서산 간척지를 만들고,멀리 중동에서 해외 유명 업체들을 제치고 각종 공사를 따내는 등 정 명예회장의 '해봤어' 정신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일들을 현실로 만들었다.

한국전쟁 뒤 30년이 지나지 않은 때 도전한 88 서울올림픽 유치도 그가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평가가 많다.

정 명예회장의 신념 아래 성장한 범 현대가는 1946년 자동차 수리공장인 현대자동차공업사에서 시작한 현대 · 기아자동차가 세계 '톱 5'의 자동차 기업으로 성장하고,현대중공업이 조선업계에서 세계 최고 자리를 지키는 등 국가경제 발전의 밑거름이 됐다.


# 이병철의 선견지명

정 명예회장과 평생 라이벌로 꼽혔던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의 기업가정신이 빛난 사례는 1980년대 초반의 반도체 투자 결정이다.

이미 일본 업체들이 세계시장을 장악하고 있던 당시 계란으로 바위치기라는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대규모 투자를 결정해 오늘날 세계 최고 IT(정보기술)업체인 삼성전자의 성장 발판을 만들었다.

초기의 난관을 이겨낸 삼성의 반도체 사업은 이제 세계 1위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으며,스마트폰과 3D(3차원) TV 등 삼성전자의 다른 사업에도 큰 뒷받침이 되고 있다.

또 이 회장은 1950년대 말 삼성이 의료 제지 전자 부동산개발 유통 문화사업 금융업 등에 진출하도록 결단을 내림으로써 각 분야에서 한국 경제를 발전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의료가 오늘날 신수종 사업 가운데 하나인 바이오산업의 밑바탕이 되고,반도체를 비롯한 전자 부문이 태양광산업 진출을 이끌고 있는 것처럼 이 회장의 신성장동력 육성 전략은 앞으로도 삼성이 글로벌 기업으로 자리를 굳건히 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란 전망이다.


# 중국에는 박태준이 없다

1980년대 초 일본을 방문한 중국의 지도자 덩샤오핑이 일본 1위 철강업체인 신일본제철을 방문했을 때 일이다.

덩샤오핑이 "포항제철(현 포스코) 같은 철강회사를 갖고 싶은데 도와 달라"고 요청하자 이나야마 신일본제철 회장은 "불가능하다"고 거절했다. "중국에는 박태준(포스코 창업자)이 없지 않느냐"는 게 그의 답이었다.

1968년 박 명예회장이 포항 영일만 허허벌판에 포항제철을 세운 지 어느덧 40여년이 흐른 지금 자산 규모 16억원에 불과했던 포스코는 세계 1,2위를 다투는 초대형 철강회사로 성장했다.

포스코는 무(無)에서 유(有)를 만들어낸 창업정신을 바탕으로 50주년이 되는 2018년에 매출 100조원을 달성한다는 전략을 가지고 있다.

정주영 이병철 박태준 등으로 대표되는 한국의 기업가들은 이제 안철수 안철수연구소 이사회의장,이해진 NHN 이사회의장 등 여러 벤처기업인으로 이어지고 있다.

의사를 그만두고 컴퓨터바이러스 백신 개발에 매달려 세계적인 보안업체로 키워낸 안철수 의장은 도덕성과 차분하고 지적인 이미지로 인해 젊은이들의 대표적인 멘토로 자리잡고 있다.

안정적인 대기업을 나와 동료들과 함께 밤을 새우며 기업을 키우고,그 결실을 함께 나눈 이해진 의장의 사례도 21세기의 기업가가 어떤 모습을 가져야 할지를 보여준다.

조재희 한국경제신문 기자 joyja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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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지배구조는 기업 스스로 결정할 일··· 오너경영도 장점 많아

한국만큼 기업지배구조를 둘러싼 논란이 오랫동안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는 나라도 흔치 않다. 기업지배구조는 경영의사를 어떻게 결정하느냐,다시 말해 기업을 다스리는 구조가 어떻게 돼 있는가를 뜻하는 용어다. 정치권은 최근 대기업의 총수 경영체제에 대한 비판을 쏟아내고 있다. 총수가 불투명한 경영을 통해 사적 이익만 꾀하며 회사 발전과 동반성장을 가로막는다는 주장이다.

기업지배구조 문제는 경영학의 중요한 연구 테마다. 하지만 학계에서도 오너경영 체제와 전문경영인 체제 가운데 어떤 쪽이 좋으냐에 대해 '정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좋다고 말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일부 정치권과 시민단체는 오너경영 체제를 백안시하지만 스웨덴 발렌베리 가문처럼 오너경영을 통해 성공 가도를 질주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발렌베리는 통신업체 에릭슨과 발전설비업체 ABB,가전업체 일렉트로룩스,제약업체 아스트라 등을 소유하고 있다. 오너경영 체제인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도 신속하고 일사불란한 의사결정을 바탕으로 글로벌 일류기업으로 도약했다.

우리 정부는 한때 미국식 전문경영인 체제가 선진적 기업지배구조라며 국내 기업들에 강요했다. 그러나 2000대 이후 미국 에너지기업 엔론의 대규모 회계부정 사건이 터지고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계기로 미국 대형 투자은행 경영진의 무능과 비리가 속속 드러나면서 전문경영인 체제의 한계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