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과 경제의 만남] 예수 그리스도의 분노와 과점시장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역대 가장 많은 판매 부수를 기록하고 있는 책은 무엇일까?

바로 그리스도의 정전(正典)인 성경(Bible)이다. 한 조사에 따르면 성경은 지금까지 약 25~60억권가량의 판매 부수를 기록하고 있다.

성경은 구약과 신약으로 구분되는데,구약은 '옛 언약'이라는 뜻으로 그리스도의 탄생 이전에 기록되었고,'새 언약'이라는 뜻의 신약은 그리스도의 탄생 이후에 기록된 것이다.

신약성서는 4권의 복음서와 사도행전,그리고 여러 사도들의 편지글인 서간서와 예언서 등 총 27서(書)로 구성되어 있다.

이중에서 4권의 복음서 중 하나인 '요한의 복음서'(요한복음) 제2장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실려 있다.

유다인들의 파스카 축제가 가까워지자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에 올라가셨다.

그리고 성전에 소와 양과 비둘기를 파는 자들과 환전꾼들이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끈으로 채찍을 만드시어 양과 소와 함께 그들을 모두 성전에서 쫓아내셨다. 또 환전상들의 돈을 쏟아 버리시고 탁자들을 엎어 버리셨다.

비둘기를 파는 자들에게는 "이것들을 여기에서 치워라.내 아버지의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마라"하고 이르셨다.

역대 최고 베스트셀러 '성경'

선뜻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원죄로 고통받는 인류를 구제하기 위해 태어난 구세주인 예수가 끈으로 채찍을 만들어 사람들을 내쫓고 탁자를 엎어 버렸으니 말이다.

과연 예수는 왜 그토록 분노한 것일까?이에 대한 해답은 과점시장의 특징에서 찾아볼 수 있다.

과점(oligopoly)시장은 완전경쟁시장과 독점시장의 중간적인 위치로,소수의 생산자가 특정 상품의 시장 공급을 전담하는 시장이다.

과점시장은 몇 안 되는 생산자가 경쟁하는 시장인 만큼 다른 공급자의 가격이나 산출량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왜냐하면 과점시장의 상품은 서로 비슷하거나 완전한 대체관계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한 상품의 시장을 갑과 을,두 명의 공급자가 양분하고 있다고 가정하자. 만약 갑이 상품의 가격을 인하하면 갑의 상품에 대한 시장 수요가 늘어날 것은 분명하다. 따라서 현재의 이윤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을도 상품가격을 인하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시장 수요를 늘리기 위해서 갑과 을이 무턱대고 가격 인하 경쟁을 펼치는 경우는 그리 흔하지 않다. 가격 경쟁이 촉발되면 갑과 을,모두의 이윤이 감소하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가격 경쟁을 하지 않는 것이 상호 이익에 부합된다는 측면에서 갑과 을이 협조적인 행동을 취할 수도 있다. 다시 말해 갑과 을이 협의해 서로가 얻을 수 있는 이윤을 극대화하는 가격과 수량을 결정하는 제휴를 체결하는 것이다.

경제학에서는 이를 '담합'(collusion)이라고 한다.

과점시장 불공정 행위 '담합'

성경의 구절로 돌아가보자.파스카는 하느님의 도움으로 유대인들이 이집트 왕국의 억압으로부터 벗어난 것을 기념하는 축제 또는 제사로,그리스도의 거룩한 축하행사 중 하나다.

문제는 이처럼 중요한 행사이다 보니 그 준비 과정이 간단하지 않다는 점이었다.

우선 유대교의 모든 성인 남성들은 파스카 축제를 각자의 거주지에 위치한 성전이 아닌 예루살렘의 성전에서 지내야만 했다.

또한 그 해에 태어난 흠이 없는 양을 제물로 잡아 그 피를 문설주와 출입구나 창의 위에 위치한 인방(引枋)에 발라야 했다.

예루살렘에 있는 사람들이야 별 문제가 없었겠지만,멀리 떨어진 곳에서 오는 사람들은 예루살렘까지 오는 것도 힘들었을 것이고,제물의 기준에 맞는 양을 데려오는 것은 더더욱 어려웠을 것이다.

이로 인해 성전 근처에는 기준에 맞는 제물을 파는 상인들이 하나둘씩 생겨났던 모양이다.

또한 파스카에 참석하는 유대인들은 성전에 헌금을 내야만 했다.

하지만 외부에서 온 사람들은 예루살렘 화폐를 보유하지 못한 경우가 많았고,이들은 자신들의 화폐를 예루살렘 것으로 환전해야만 했다.

성경에 환전꾼이 언급된 것도 바로 이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만약 그 당시 제물의 공급과 환전을 소수의 상인들이 전담해 과점시장을 형성하고,여기에 더해 상인들이 자신들의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 담합을 하여 카르텔(cartel)을 형성했다면 어땠을까?

실제로 담합이 이루어졌다면 아마도 상인들은 제물에 높은 가격을 책정하고,터무니없는 환전 수수료를 받았을 것이다.

그리고 파스카에 참석해야 하는 의무를 수행해야 했던 유대인들은 억울하지만 어쩔 수 없이 담합의 희생양이 됐을 것이다.

혹시 이런 담합 때문에 고통 받는 유대인들을 보고 예수가 끈으로 채찍을 만들어 상인들을 내쫓고 탁자를 엎어 버린 것은 아니었을까?


예수가 분노한 이유는?

현재에도 여러 산업이 과점시장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자동차,이동통신,전자,조선 등이 대표적인 예다.

이중 하나인 이동통신업계가 지금 큰 충격에 휩싸여 있다. 얼마 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WWDC(개발자 컨퍼런스) 2011'에서 스티브 잡스 애플사 CEO가 자사 기기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무료로 문자메시지를 주고받을 수 있는 '아이메시지 서비스 방안'을 발표했기 때문이다.

이 서비스가 현실화되면 이동통신회사들은 엄청난 규모의 매출 감소를 감수해야만 할지도 모른다.

물론 일부에서는 이미 다양한 형태의 메신저 서비스가 제공되고 있어 그 파괴력이 크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KT가 얼마 전 무료 메시지를 주고받을 수 있는 메신저 서비스를 내놓았고,삼성전자도 자체 메시지 서비스 앱을 자사의 휴대전화에 탑재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한다.

이미 업계는 애플사의 방안에 대응할 수 있는 조치를 취하고 있는 것이다.

경쟁사의 전략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과점시장인 이동통신업계가 앞으로 어떠한 행보를 보일지 귀추가 주목된다.

정원식 KDI 전문연구원 kyonggi96@kdi.re.kr


경제용어 풀이

완전경쟁시장

시장 참가자 수가 많고 시장 진입이 자유로우며 시장 참가자가 정보를 완전하게 공유하고 있어 시장 가격이 완전경쟁에 의해 결정되는 시장을 말한다. 완전경쟁시장에서는 생산자와 소비자가 시장 가격의 결정에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한다.

독점시장

오직 하나의 기업이 해당 산업의 상품이나 서비스를 제공하는 시장으로,독점시장에는 독점기업의 상품이나 서비스에 대한 대체재가 존재하지 않는다. 완전경쟁시장은 시장진입이 자유로운 반면,독점시장에는 완벽한 진입 장벽이 존재한다.

카르텔(cartel)

시장 통제를 위해 담합에 참여한 기업들을 일컫는 말로,국가에 의해 형성된 ‘강제 카르텔’을 제외하고는 각국의 법률에 의하여 일반적으로 금지·규제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