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전관예우가 먼대?…미국은 투명한 로비시스템 정착
미국에선 한국과 같은 '전관예우'라는 개념은 찾아보기 어렵다.

판사나 검사를 임용하는 절차나 이들의 정치 · 사회적인 지향점이 한국과 달라 전관예우 풍토가 조성될 여지가 거의 없다.

미 정부의 퇴직 공직자와 의원 출신 인사도 전관예우 관행이 아니라 합법적이고 공개적인 로비활동을 통로로 정책 입안과 입법 과정에 영향력을 행사한다.

그만큼 엄격한 책임과 규제도 따른다.


# 한국과 다른 법조 시스템

한국은 사법연수원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면 판사와 검사로 직행할 수 있다.

미국은 로스쿨을 졸업한 뒤 변호사 경력을 쌓은 이후에야 판사와 검사가 될 수 있다.

자녀 4~5명을 둔 캘니포니아주 연방 지방법원 판사가 연봉만으로는 교육비를 댈 수 없어 법무법인(로펌)으로 이직했다는 게 뉴스가 되긴 했지만 전관예우를 바라고 갔다는 얘기는 한 줄도 없었다.

연방 지방법원 판사의 연봉은 지난해 평균 17만4200달러,연방 고법판사 18만4500달러,연방 대법판사는 21만3900달러였다.

로스쿨 졸업 후 로펌에 들어간 1년차 변호사의 평균 연봉(18만달러)과 비슷한 수준이다. 주법원 판사의 경우엔 정치인과 비슷하게 선거로 뽑아 근무하는 임기제다.

법원의 최고위직인 연방 대법관은 대통령이 임명하고 종신제로 운영된다.

나이 65세 이상,근무기간 15년이 넘은 대법관이 은퇴하면 '시니어 신분(senior status)'을 얻어 원로대우를 받는다.

대법관 때와 비슷한 보수가 지급되고 하급심인 항소법원과 지방법원에서 '시니어 판사'로 근무할 수 있는 특권이 주어진다.

굳이 변호사로 개업해 후배 판사들로부터 전관예우를 바랄 이유가 없는 시스템이다.

워싱턴에 있는 한 로펌 변호사는 "뉴욕 본사에 법관 출신이 영입됐다고 떠들썩한 적이 있는데 그 사람의 소송 전문성에 기대를 건 것뿐이지 전관예우와 같은 혜택을 기대하는 동료는 찾아보지 못했다"고 전했다.

검사직은 정치적인 야망이 많은 사람들이 선호한다.

검사직을 발판으로 주지사와 의회 의원 도전을 목표로 하는 것이다.

검사 희망자 가운데는 판사를 보조하는 법원 서기(law clerk)로 간 뒤 판사직으로 방향을 바꾸거나,금융 중심지인 뉴욕 월가의 로펌으로 옮기는 경우도 많다.

업무가 과중하고 연봉이 많지 않은 탓에 몇 년간 검사생활을 하다가 로펌을 선택하면 높은 연봉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10~20년 이상 장기간 검사로 근무하지 않다 보니 전관이라는 꼬리표를 붙이기 어렵다.


# '투명한 로비'로 이해관계 조정

최근 한국에서 드러난 금융감독원 출신들의 금융사 감사 낙하산 인사나 이들의 비리와 같은 행위가 미국에서도 없진 않다.

은행감독기관인 통화감독청(OCC)에서 릭스은행을 담당하던 주임검사역 애쉴리 리는 34년간의 검사역에서 퇴직해 2002년 릭스은행 여신심사 매니저로 전직했다.

그런데 그는 OCC에서 근무하면서 릭스은행이 칠레의 전 독재자 피노체트의 불법자금을 돈세탁한 자료를 삭제하도록 지시한 것으로 2004년 드러났다.

발칵 뒤집힌 연방 은행감독당국은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와 OCC를 포함한 감독당국 고위 검사역들의 전직 제한을 규정하는 규제를 2005년 도입해 지금까지 시행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은 이러한 전관예우보다 '로비(lobby) 천국'으로 더 잘 대변된다.

미국의 수정헌법 제1조는 '미국 연방의회는 언론 · 출판의 자유나 국민이 평화롭게 집회할 수 있는 권리 및 불만사항을 시정하기 위해 정부에 청원할 수 있는 권리를 제한하는 법률을 제정할 수 없다'고 규정했다.

로비활동을 국민 기본권의 하나로 헌법이 보장한 것이다.

이를 근거로 정책이나 법을 바꾸기 위한 로비는 누구나 할 수 있다.

은행을 규제하는 입법에 반대하는 은행업계가 로비스트를 고용,자신들의 이익을 반영하는 활동을 할 수 있는 반면 금융소비자 피해를 우려하는 소비자단체는 은행 규제 입법을 찬성하는 쪽으로 로비를 벌여 맞불을 놓을 수도 있다.

로비를 매개로 견제와 균형을 갖춘 시스템이다.

이렇다 보니 미국에서 정책을 입안하고 집행하는 행정부와 법을 만드는 입법부는 로비스트(lobbist)들의 집중 공략 대상이다.

행정부 및 입법부 출신 공직자와 의원,의원 보좌관들은 로비업체나 로펌 등 로비활동을 하는 주체들의 제1 영입 대상이다.

금융감독기관 인사들은 금융사들이 영입을 노린다.

전직 관료나 의원이 로비스트로 전직해 옛 동료,상사나 부하를 상대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을 '회전문(Revolving Door)' 현상이라고 한다.

다만 로비 활동은 철저하게 감시받고 법적 테두리 내에서 투명하게 이뤄지도록 돼 있다.

로비스트는 반드시 연방의회에 등록해야 한다. 모든 로비활동과 로비자금 내역 등이 공개되고 시민단체들의 감시까지 받는다.

지난해 기준으로 1만3000명의 로비스트가 등록해 활동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2000년 15억달러이던 로비자금은 지난해 35억달러로 급증했다.

과도한 정책 및 입법 로비에 따른 부작용을 우려해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2009년 취임하자마자 회전문 현상을 규제하겠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김홍열 한국경제신문 워싱턴 특파원 come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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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마위에 오른 엘리트집단 직업 윤리

최근 금융감독원 출신 낙하산 감사들이 저축은행 대주주 경영진의 불법을 방조한 정황이 속속 드러나면서 전문가들의 직업윤리가 또다시 도마에 오르고 있다.

변호사나 회계사,감사 등 전문가들의 직업윤리는 시장의 신뢰를 높여 시장경제가 제대로 작동할 수 있게 하는 기초 역할을 한다.

그런데 금감원 출신 감사나 전직 판검사 출신 변호사,고위 관료를 지낸 로펌 임원 등이 불법을 저지르거나 방조한다면 시장경제의 기초가 흔들리게 된다.

시장경제는 생산자와 소비자가 시장에서 자유롭게 거래하면 희소자원이 효율적으로 분배된다는 게 기본원리다. 시장에서 자유롭게 거래돼도 효율적 자원 배분이 되지 않는 경우가 있는데 이를 '시장실패'라고 한다.

시장실패의 원인 중 하나가 정보의 비대칭이다.

예를 들어 중고차 정보를 중고차 매매상은 잘 알지만 고객은 그만큼 모를 때 매매상과 손님 사이에 정보의 비대칭성이 발생한다고 말한다.

이때 매매상은 손님의 무지를 악용,품질이 낮은 중고차를 비싸게 판매할 수도 있다.

정보의 비대칭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 중 하나가 변호사,회계사,교사와 같은 자격증 제도다. 이들이 보다 정확하고 믿을 수 있는 정보를 소비자에게 전달토록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들 전문가와 소비자 사이에도 여전히 정보의 비대칭성이 있다.

전문가들은 소비자가 자기만큼 잘 알지 못한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회계사가 검은 돈을 받고 회계감사 결과를 조작하는 일이 일어날 수 있다.

손정식 한양대 명예교수(경제학)는 "우리 사회의 엘리트 집단으로 특별 대우를 받고 있는 전문가의 윤리의식 결여는 시장경제의 기초를 흔든다"며 "직업윤리를 배반한 전문가들이 더 이상 발 붙일 수 없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강현철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hc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