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전관 예우' 금지하면 공정사회 뿌리 내릴까?
판사나 검사가 옷을 벗고 변호사가 될 경우 1년 동안은 퇴임 전 1년간 근무했던 법원이나 검찰청의 사건을 맡지 못하도록 하는 개정 변호사법이 지난 17일부터 시행됐다.

'전관예우금지법'으로도 불리는 이 법의 시행으로 적어도 법조계만큼은 전관예우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될 것이라는 예상이 많다.

전관예우 문제는 최근 우리 사회의 최대 이슈로 부상했다. 전관(前官)이란 전직 관료의 줄임말이다.

판사나 검사로 일하다가 중도에 퇴직하고 개업을 한 변호사들이나,국세청 공정거래위원회 금융감독원에서 법무법인(로펌)이나 은행 등으로 옮기는 공무원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런데 이들 퇴직관료가 재판절차나 정부의 정책결정에 부당하게 개입하는 일이 잦아지면서 공정(公正)사회를 가로막는 주범으로까지 인식되고 있다.

최근 5조원대의 불법대출 및 특혜인출로 물의를 빚고 있는 부산저축은행그룹 사태가 대표적인 사례다.

이 그룹은 금감원 출신 4명을 그룹 산하 4개 저축은행의 감사로 앉혔다. 이들 중 1명은 그룹 회장의 고등학교 선배다.

그룹 측은 이렇게 영입한 감사들에게 고액의 연봉을 주는 대신 한도 초과 대출 등 자신들의 불법행위에 적극 가담시키거나 눈을 감게 만든 의혹을 받고 있다.

감독기관인 금감원 출신 전관을 방패막이와 해결사로 써온 것이다.

법조계에선 전관의 활약상(?)이 눈부실 정도다.

예컨대 회삿돈을 수십억원 횡령해 분명히 구속감인데 불구속된다든지,징역 몇 년 이상 등 실형이 선고될 중대범죄를 저질렀는데도 집행유예 처분되는 경우 뒤에 막강한 전관 변호사가 떡하니 버티고 있을 때가 허다하다.

특히 갓 개업한 전관일수록 사건 의뢰인에게 인기다.

최근까지 함께 일했던 동료 판사가 재판장으로 있으면 의뢰인들은 어김없이 이 전관 변호사를 산다.

어떤 식으로든 재판과정에서 영향력을 행사해달라는 불법권유인 셈이다.

실제 전관의 승소율도 높다.

후배나 동료 재판관들이 봐줘서이기도 하고,사건이 몰리는 까닭에 승소 확률이 높은 사건만 골라서 수임해서이기도 하다.

또 사법연수원을 수료해 곧바로 로펌 등에 취직한 변호사보다 판사와 검사 경험이 있는 전관이 문제해결 능력에서 탁월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다 보니 전관은 몸값이 비싸다.

형사사건의 경우 착수금만 2000만~3000만원이 넘는 경우가 많고 대법관 출신은 수임료가 1억원대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유전무죄,무전유죄(돈이 있으면 무죄,돈이 없으면 유죄)'라는 말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에 대해 법원과 검찰에선 전관예우는 없다고 주장한다.

"전관이라도 흑백을 뒤집지는 못한다"거나 "전관이 사건의 맥을 잘 짚기 때문에 능력에 따른 보상으로 봐야 한다"는 식이다.

"1~2% 미꾸라지 때문에 전체 법조계가 흙탕물로 매도당한다"며 억울해 하는 목소리도 있다. 하지만 이들도 "당사자 중 누구 손을 들어줘야 할지 애매한 경계선상에 있는 사건의 경우에는 아무래도 전관 쪽의 논리에 기울게 된다"고 시인한다.

고교나 대학동창,사법연수원 동기 등 인맥의 힘이 전관보다 더 강하다는 얘기도 있다.

무슨 문제만 생기면 학연이나 지연을 따지는 우리 사회 전반의 잘못된 관행 탓이다.

전관예우를 금지한 개정 변호사법의 시행에도 불구하고 전관예우 고질병이 금방 치유되길 기대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4,5면에서 전관예우의 실태와 원인을 알아보고 미국의 사례를 참고해 이를 막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살펴보자.

김병일 한국경제신문 기자 kb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