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노조도 사회적 책임 크다"… 노동시장 유연해야 경제가 발전


⊙ 한국의 노사관계 꼴찌 수준

우리나라 노동시장 경쟁력은 어느 수준일까.

경제 규모 세계 12위라는 위상에 걸맞지 않게 노동분야 경쟁력은 거의 꼴찌다.

매년 세계 각국의 경쟁력 순위를 발표하는 세계경제포럼(WEF)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는 노사협조 분야에서 조사대상인 139개국 가운데 138위에 그친 것을 비롯해 △고용 경직성(90위) △고용 및 해고 관행(115위) △임금결정의 유연성(38위) 등 대부분의 항목에서 낙제점이었다.

노동자 한 명이 얼마만큼의 부가가치를 생산하는가를 나타내는 노동생산성도 생산성본부의 조사 결과 세계 33위 수준에 불과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노동시장 유연성 종합 평가에서도 한국은 131위(2007년 기준)에 머물렀다.

노동시장 유연성은 기업들이 얼마나 자유롭게 고용하고 해고할 수 있는가를 나타내는 것으로 고용과 해고가 까다로우면 일자리가 줄어든다.

예를 들어 정부가 노동자를 해고할 수 있는 기업 권한에 제약을 둘 경우 노동공급곡선은 오른쪽으로,노동수요곡선은 왼쪽으로 이동해 실업이 늘어난다.

반면에 임금은 생산성을 훨씬 상회하는 고임금 구조다.

미국 독일 일본 영국 등 선진 11개국은 1인당 국민소득이 1만달러에서 2만달러로 뛸 때 생산성은 연평균 3% 높아진 데 비해 물가를 감안한 실질임금은 1% 늘어나는 데 그쳤다.

반대로 한국은 생산성 증가율이 연평균 3%였으나 실질임금은 4.4% 늘어 임금이 생산성을 앞질렀다. 덜 일하고 더 받은 셈이다.

⊙ 퇴조하고 있는 노동운동

이처럼 노동경쟁력이 낮은 것은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투쟁적 노조 문화가 큰 요인으로 꼽힌다.

노동조합은 자본의 힘에 비해 상대적으로 약한 노동자가 단결해 근로조건의 개선 등 경제적,사회적 지위의 향상을 위해 조직하는 단체다.

자본주의 역사에서 노조와 노동운동은 노동자의 권익을 향상시키고 생활수준을 높이는 데 상당한 기여를 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최근들어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노조와 노동운동은 퇴조하고 있다.

노조 조직률이 급격히 떨어지는 등 노조에 가입하는 노동자 숫자가 줄고 있는 게 그 반증이다.

노조가 이처럼 힘을 잃고 있는 것은 사회는 급속히 발전하는데 구태의연한 정치투쟁에만 치중해 노동자들이 염증을 느끼고 있는 게 가장 큰 이유다.

정치적 · 전투적 노조주의는 2009년 쌍용자동차 노조가 공장을 점거하고 벌인 극한 파업 사례에서 보듯 사용자(기업)와 노동자 간 노사(勞使)관계를 노동조합과 정부 간 노정(勞政)관계로 변질시켰다.

노조는 기업이 아닌 정부를 상대로 실생활 향상과는 별 관련이 없는 요구조건을 내걸고 관철시키려 했다.

또 비민주적 운영과 노조 집행부의 부패,현대차 노조처럼 노조원 자녀를 우선 고용하도록 사측에 압박하는 노조 귀족주의적 행태도 많은 노동자들을 실망시켰다.

⊙ 노조 변해야 한국경제 '희망'

이처럼 노조의 정치투쟁과 귀족주의에 대한 비판이 거세지자 최근 노조 내부에서도 노동조합운동이 이미 우리 사회의 중요한 한 축을 형성하고 있는 데도 그에 걸맞은 행동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반성이 나타나면서 노조의 사회적 책임(USR · Union Social Responsibility)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기업이 다양한 봉사 활동을 통해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것(기업의 사회적 책임 · CSR)처럼 노조도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것이다.

USR의 이론적 근거를 처음 제시한 학자는 미국 칼 폴리 포모나대의 도킨스(Cedric E.Dawkins) 교수다.

그는 "한 조직체의 행위는 규범적 척도 내에서만 이뤄져야 정당성을 갖는다"며 "노조도 다른 사회제도와 마찬가지로 사회적 승인을 얻는 방식으로 행동해야 한다"고 USR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남성일 서강대 교수(경제학)는 노동생산성을 높이고 선진적 노사관계를 이룩하려면 유연안전성(Flexicurity)을 높이는 게 급선무라고 지적한다.

유연안전성은 노동시장의 유연성(flexibility)과 안전성(security)을 결합한 개념으로 고용과 해고를 좀 더 자유롭게 만들되,사회적 안정망을 제공함으로써 유연화에 따른 근로자의 불안을 최소화하는 것을 뜻한다.

덴마크 네덜란드 등이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미래학자인 앨빈 토플러는 '부의 미래'에서 기업은 시속 100마일로 달리는데 노조는 시속 30마일로 달림으로써 속도의 충돌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빛의 속도로 사회가 바뀌는 지금 노조도 변신해야 한다.

그래야 한국 경제에 희망이 있다.

강현철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hck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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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Story] "노조도 사회적 책임 크다"… 노동시장 유연해야 경제가 발전
영국병 치유한 '鐵의여인' 마거릿대처


노동시장을 개혁해 경제를 발전시킨 대표적 사례로는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가 꼽힌다.

대처는 1979년 5월부터 1990년 11월까지 총리직을 세 차례 역임하면서 영국병에 찌든 조국을 살려냈다.

영국병(British disease)은 고복지 · 고비용 · 저효율 등 영국의 경제가 몰락한 원인이 됐던 1960년대와 1970년대 영국의 사회현상을 가리키는 용어다.

1970년대의 영국은 그야말로 노조천국이었다. 노조는 멋대로 정권을 갈아치웠을 만큼 막강한 파워를 행사했다. 1979년 초에 실시된 총선에서 마거릿 대처는 보수당 당수로서 '불법적인 노조파업을 법과 원칙으로 다스리겠다'는 공약을 내세웠다.

대처의 노동시장 개혁은 석탄노조와의 전쟁으로 대표된다.

그는 길고 긴 싸움 끝에 '제왕(帝王)' 같던 노조위원장 스카길을 항복시켰다.

1984년 3월 석탄노조는 파업에 들어갔다. 국영석탄공사가 2만명의 직원을 감원키로 한 게 발단이었다.

스카길은 전국적 파업 전술을 채택했다.

12만명의 노조원이 참여한 이 파업은 363일 만인 1985년 3월 정부 측의 승리로 끝났다.

대처 총리는 그후 집권 11년여 동안 다섯 차례에 걸쳐 고용법과 노동관계법을 제 · 개정해 투쟁적 노조를 무력화시키고 영국병을 치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