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公約의 딜레마··· 무조건 지켜야 한다?
민주주의는 오늘날 가장 합리적이고 바람직한 정치제도로 자리매김해 있다.

국민 개개인이 자신의 의사에 따라 선거권을 행사해 국가의 최고지도자와 국회의원,지방자치단체장을 뽑는다.

투표를 통해 국가의 운명을 좌우할 중대한 결정에 참여하기도 한다. 대부분의 민주주의 국가들은 입법-행정-사법의 3권 분립으로 최고 권력에 대한 견제 기능도 갖추고 있다.

그러나 민주주의가 완벽한 제도인 건 아니다. 고대 그리스의 직접 민주주의는 중우정치로 몰락했다.

중우정치는 다수의 어리석은 대중(衆愚)이 이끄는 정치를 가리키는 말이다.

당시 아테네에서 지배계층인 시민들은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행동했으며,군중을 사로잡는 화술이 판쳤다.

플라톤은 이런 민주주의의 타락에 실망해 '국가론'에서 현명한 철학자가 통치해야 한다는 '철인(哲人)정치'를 주장했다.

아리스토텔레스도 타락한 아테네의 민주정치에 한계를 느껴 '중산정치'를 내세웠다.

가난하지도 부유하지도 않은 중산층을 중심으로 해서 적어도 생계를 떠나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는 계층이 정치를 주도해야 한다고 봤다.

한편에선 후진적인 체제로 간주되는 왕정 또는 황제정치가 한때 효율적인 정치제도 역할을 하기도 한다.

고대 로마에서는 귀족들 간에 권력이 적절히 분산된 공화제가 한계에 다다르자 황제가 통치하는 제정으로 바뀌었다. 로마의 최전성기인 '5현제(賢帝) 시대'는 제정 체제였을 때다.

최근 대중 민주주의의 위기를 지적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정치인들이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 대중에 영합하면서 합리적인 의사결정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비판이다.

정치인들은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서라면 종종 현실적으로 무리한 요구를 공약으로 내세우기도 한다.

최근 동남권 신공항 건설을 둘러싼 사회적 갈등은 대통령 선거 당시 이명박 대통령 후보 진영이 신공항이 별로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으면서도 대통령 선거 공약에 포함시켜 야기된 것이다.

남유럽 재정위기에서 보듯 과다한 복지는 경제에 부담이 되고 장기적으로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정치인들이 무상복지를 앞다퉈 내놓는 것도 선거를 의식한 탓이다.

경제학에서는 사람이 항상 합리적인 선택을 하는 것으로 가정하지만 현실에서는 사람이 꼭 합리적인 것만은 아니다.

경제학자 케네스 애로는 민주적 투표로는 합리적 선택이 불가능하다는 걸 이론적으로 증명했다.

다수결 투표로 합리적인 사회적 선호를 도출하기 어렵다는 콩도르세의 역설도 있다. 공약은 합리적이든 비합리적이든 무조건 지켜야 하는 걸까.

민주주의에서 사회적 의사결정의 어려움에 대해 4,5면에서 자세히 살펴보자.

동남권 신공항 건설을 둘러싼 생글 기자들의 찬반 견해도 18면에서 알아본다.

정재형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j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