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사태 점입가경…세계경제,유가상승·스태그플레이션 그림자

[Global Issue] '카다피의 반격'…리비아 시민혁명 좌초되나
중동 사태가 점입가경이다.

리비아 시민혁명은 좌초위기에 몰렸으며 바레인 시위 사태는 중동 수니파와 시아파 국가 간 갈등을 증폭시키고 있다.

반군의 근거지 벵가지 인근까지 진격한 리비아의 무아마르 카다피 친위부대는 승리 임박을 확신하고 나섰다.

카다피의 아들 세이프 알 이슬람은 지난 16일 범유럽 뉴스채널인 유로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군사작전이 끝나간다"며 "앞으로 48시간 내 모든 상황이 종료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리비아 2인자격인 알 이슬람은 리비아 상공 비행금지구역 설정에 대해 "서방이 어떤 결정을 내리든 너무 늦었다"고 말했다.

튀니지,알제리,이집트 등을 휩쓴 중동과 북아프리카 지역의 민주화 시위는 리비아에서 그칠 가능성이 크지만 세계에 미치는 영향은 무시할 수 없다.



⊙ 수난의 아프리카 역사

아랍어로 '해가 지는 곳'이란 뜻의 마그레브(Maghreb)는 모로코,알제리,튀니지,리비아,모리타니 등 북서아프리카 지역을 지칭하는 개념이다.

마그레브와 이집트를 합친 북아프리카 지역에선 이슬람 세력의 진출과 서구 제국주의 열강의 침입을 거치면서 복잡 · 다양한 민족,종교,정치 지형이 만들어졌다.

자로 잰 듯 단순한 국경선과 달리 갈등은 매우 다면적이다.

마그레브 지역에 아랍 민족이 진출한 것은 우마이야 왕조(661~750) 시대다.

이후 파티마 왕조부터 오스만튀르크 제국까지 시대별로 아랍 제국에 의해 '느슨하게' 통치됐다.

이 지역에 먼저 정착했던 베르베르족은 시아파나 이바디 등 독자적인 이슬람교 분파를 믿으며 민족 · 정치 지형을 복잡하게 만들었다.

북아프리카를 본격적인 '갈등의 무대'로 만든 것은 유럽 제국주의 열강의 침탈이었다. 마그레브 지역은 제국주의 침략의 첫 희생양이었고 뒤늦게 독립을 얻은 지역이기도 하다. 아랍 제국에 큰 충격을 준 것은 1798년 나폴레옹의 이집트 점령이었다.

19세기 들어선 북아프리카 지역을 시작으로 아랍 이슬람권이 서구제국에 의해 도미노처럼 쓰러졌다.

프랑스는 1830년부터 알제리를 점령했고 튀니지(1881년)를 보호령으로 장악했다.

1912년엔 모로코까지 세력 범위를 확대했다. 영국은 1882년 이집트를 보호령으로 삼고,1889년 수단을 식민지로 삼았다. 후발 주자인 이탈리아는 1912년 리비아를 지배했다.

⊙ 힘의 충돌

20세기 초부터 아랍세계에서 민족주의가 일면서 아랍 민족국가 설립 움직임이 대두됐다.

2차 세계대전 이후엔 북아프리카 지역에서 격렬한 반제국주의 움직임이 일었고,인근 중동보다 뒤늦은 1950년대 본격적인 독립이 이뤄졌다.

1954년 모로코,튀니지에서 대규모 반프랑스 운동이 일어나 결국 프랑스는 독립을 허용했다.

프랑스의 무력 개입을 극복한 알제리도 1962년 독립에 성공했다. 영국의 반식민 상태였던 이집트에선 나세르가 1952년 집권 이후 수에즈 운하를 국유화하며 영국 · 프랑스와 대립각을 세웠다.

그러나 과거 오스만 제국과 영국 · 프랑스가 장악했던 힘의 공백은 각종 혼란을 야기했다.

새로운 독립국가를 운영할 준비가 덜된 상태에서 부족 간,민족 간 대립과 이념 · 계급 갈등이 불거진 것이다.

여기에 "통치권은 신에게 있지 인간에게 있지 않다"는 이슬람 교리는 북아프리카 지역에 현대 서구식 민주주의가 정착하는 데 장애물이 됐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선 종교지도자들이 세속 왕조를 지지하는 타협안으로 1932년 왕정이 들어섰지만 북아프리카에선 이런 점진적 타협안이 자리할 여유조차 없었다.

결국 이 같은 혼란상을 자양분으로 북아프리카 지역에선 쿠데타가 끊이지 않았고,지역 간 갈등과 금권정치에 기반한 철권 독재정치가 오랜 기간 유지됐다.

⊙ 경제 파장

중동의 민주화 시위 확산에 따른 국제유가 상승으로 스태그플레이션(경기침체 속 물가상승) 그림자가 세계경제를 짓눌렀다.

증시의 공포지수로 불리는 시카고옵션거래소(CBOE)의 변동성 지수(VIX)는 급등하고 뉴욕 증시에서 S&P500 지수는 2% 이상 급락했다.

국채 시장에서는 안전자산 선호 현상이 빚어지면서 10년 만기 미 국채 수익률이 0.13%포인트 하락한 연 3.46%를 기록했다.

세계 석유수출 12위 국가인 리비아에서 석유 생산에 차질을 빚자 투자자들은 국제유가 상승으로 1970년대 스태그플레이션이 재연될 것을 우려했다.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국가원수가 퇴진을 거부하고 강경진압을 경고하자 지정학적 리스크가 한층 증폭됐다. 유가 상승은 기업에는 생산비 증가로,소비자에게는 구매력 감소로 이어진다.

특히 미국은 가계 소비의 9%를 에너지 비용으로 지출한다.

유가 상승으로 에너지 지출이 늘어날수록 다른 제품 구매를 줄일 수밖에 없다.

제품 수요가 줄면 기업들은 투자와 고용을 꺼리면서 전체 경제가 저성장 늪에 빠져들 수 있다.

세계 최대 채권운용회사인 핌코의 모하마드 엘 에리언 최고경영자(CEO)는 "중동의 민주화 시위로 인한 유가 급등이 세계 경제에 스태그플레이션 바람을 몰고 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블룸버그TV에 나와 "경기 회복 국면에서 예전처럼 탄력적인 성장을 하지 못하는 서구 국가들이 고유가 폭탄을 맞으면 경제가 다시 어려움에 빠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엘 에리언 CEO는 스태그플레이션 우려가 커지면 재고를 확충하려는 가수요까지 가세해 국제유가가 과도하게 오를 수 있다고 전망했다.

그는 특히 "튀니지와 이집트의 반정부 시위와 달리 리비아와 바레인 사태는 글로벌 경제 시스템 리스크를 높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시스템 리스크가 부각돼도 금융위기 때처럼 미 달러 자산에 돈이 몰리는 현상이 지속될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미 재정적자에 대한 우려가 워낙 큰 탓에 미 달러 수요가 제한적일 것이란 설명이다.

재정 감축에 따른 성장률 둔화로 스태그플레이션 우려가 제기돼 온 유럽 국가들도 비상이 걸렸다.

⊙ 공포지수 급등

블룸버그에 따르면 CBOE에서 거래되는 VIX는 최근 지난해 대비 27% 급등한 20.80을 기록했다.

작년 12월1일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며 9개월 만에 최대 상승폭이다.

VIX가 치솟는다는 것은 투자자들이 향후 증시 변동성이 커질 것으로,다시 말해 주가지수가 하락할 것으로 보고 있다는 뜻이다.

유럽 증시 투자자들의 공포감을 측정하는 VDAX-NEW 변동성지수는 장중 한때 6.6% 급등하며 6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세계 석유생산량의 36%를 차지하는 중동 북아프리카 지역에서 석유 공급에 차질을 빚게 되면 석유 파동이 올 수 있다는 우려를 반영한 것이다.

그룹원트레이딩의 도미닉 살비노 연구원은 "중동 사태로 국제 원유시장의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공포지수가 급격히 상승했다"고 설명했다.

월가 전문가들은 리비아 소요사태 등이 장기화돼 원유 공급에 차질이 발생할 경우 주가가 5~10% 정도 하락할 것으로 전망했다.

특히 중동발 민주화 시위의 배경이 된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기 위해 중국 등 일부 신흥국들이 과도한 긴축으로 대응하게 되면 글로벌 경기회복은 급격히 모멘텀을 잃을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신흥국은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글로벌 경기회복의 성장동력 역할을 해왔으며 최근 들어서는 인플레이션 억제를 위해 금리인상 등 잇단 긴축조치도 취해왔다.

하지만 리비아 사태가 전 세계적으로 인플레이션 압력을 높이고,이에 따른 정치 불안까지 증폭시킴에 따라 신흥국의 정책 선택의 폭은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

장성호 한국경제신문 기자 ja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