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산·소비 줄어 실질성장률떨어져

대규모복구사업으로 V자회복가능성도
[Cover Story] 자연 재해는 경제에 '재앙'을 부르나
대지진이나 위력적인 태풍 같은 자연현상은 인간 삶에 엄청난 재앙을 초래한다.

자연재해는 한순간에 삶의 터전을 파괴시키고 사람들의 목숨도 앗아간다.

대지진과 쓰나미(지진해일)로 고통받고 있는 일본 국민들의 안타까운 모습은 자연재해의 참혹함을 여실히 보여준다.

이처럼 자연재해는 사람들에게 극심한 고통과 슬픔을 안기는 동시에 경제적으로도 큰 파장을 몰고 온다.

산업설비와 도로 항만 공항 등 사회간접자본(SOC)을 파괴시켜 경제성장률을 둔화시키는 것이다.

그동안 발생한 주요 대재해는 무엇인지,그리고 경제와는 어떤 관계가 있는지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자.



⊙ 도호쿠 대지진 피해액 한신 대지진의 2배 이상 전망

지진이 빈번하게 발생하는 일본은 1995년 1월17일에도 한신 대지진으로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2000년대 들어선 △동남아를 할퀸 초대형 쓰나미(2004년 12월26일) △미국 뉴올리언스 일대를 휩쓴 허리케인 카트리나(2005년 8월25일) △중국 쓰촨성을 강타한 대지진(2008년 5월12일) 등이 대표적인 자연재해로 꼽힌다.

미국의 재난 평가회사인 에어월드와이드에 따르면 이 가운데 한신 대지진의 피해 규모가 1400억달러로 가장 컸다.

카트리나는 700억달러,쓰촨 대지진은 200억달러,동남아 쓰나미는 150억달러로 추산됐다.

한신 대지진과 카트리나가 큰 피해를 초래한 것은 그 지역에 산업시설이 많이 몰려 있었기 때문이다.

카트리나가 덮친 지역은 미국 석유 총생산의 약 30%,천연가스 총생산의 약 20%,정유시설의 약 50%가 밀집된 곳이었다.

에어월드와이드는 이번 도호쿠 지역 대지진의 피해액은 한신 대지진의 두 배가 훨씬 넘는 3240억달러(약 364조원)에 달할 것으로 분석했다.

한신 대지진 때는 정전 사태가 엿새 만에 복구됐지만,이번엔 원자력발전소 폭발로 전력공급 부족이 장기화될 가능성이 높아 피해 규모가 클 것이란 분석이다.

⊙ 자연재해→총공급과 총수요 감소→GDP 감소
[Cover Story] 자연 재해는 경제에 '재앙'을 부르나

일반적으로 대형 자연재해가 발생하면 경제는 단기적으로 후퇴한다.

재해를 겪은 사람들은 소비를 줄일 수밖에 없고,생산시설이 파괴돼 제품을 만들 수도 없기 때문이다.

그 결과 GDP(국내 총생산)가 줄어든다.

2005년 8월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뉴올리언스 일대를 초토화시키자 미 의회예산처(CBO)는 "카트리나로 인해 2005년 하반기 실질 경제 성장률이 0.5~1%포인트 하락할 것이다.

에너지와 항만 관련 기반시설이 붕괴돼 생산이 감소(①)하고,사람들의 소비도 줄어들기 때문(②)이다"라는 내용을 담은 보고서를 내놨다.

경제학에선 ①을 '총공급 감소',②를 '총수요 감소'라고 표현한다.

총공급과 총수요는 물가수준을 세로축,산출량(GDP)을 가로축으로 하는 좌표평면 위에 (그림)과 같이 나타낼 수 있다.

총공급곡선은 각 물가수준에서 기업들이 생산 · 판매하려는 재화와 서비스량을 나타낸다. 총수요곡선은 각 물가수준에서 가계 · 기업 · 정부가 구입하려는 재화와 서비스량을 보여준다.

두 곡선이 만나는 점에서 균형산출량과 물가수준이 결정된다.

자연재해로 생산시설이 파괴되면 총공급곡선은 왼쪽으로 이동한다.

이것이 총공급 감소다.

또 자연재해로 소비가 줄어들면 총수요곡선이 왼쪽으로 이동해 총수요 감소가 일어난다.

총공급과 총수요의 감소 폭에 따라 균형 물가는 상승하거나 하락한다.

하지만 균형산출량은 반드시 감소(Y1→Y2)한다. 다시 말해 대형 자연재해가 발생하면 단기적으로 GDP 성장률이 하락하는 것이다.

실제로 한신 대지진과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발생한 분기의 경제성장률은 떨어졌다.

⊙ 대규모 정부지출로 'V자형 경제 회복'이 일반적

자연재해가 경제성장률을 둔화시키지만,대규모 복구자금이 투입되는 등 복구작업이 본격화되면 경제는 빠르게 반등한다.

한신 대지진과 허리케인 카트리나 때 이런 'V자형 경제 회복'이 나타났다.

이것을 GDP(Y)는 소비(C),투자(I),정부지출(G),순수출(NX)의 합이라는 식(Y=C+I+G+NX)을 통해 알아보자.

자연재해가 발생하면 소비(C)가 줄어들고,기업들의 투자(I)도 급감해 GDP(Y)가 감소한다.

이렇게 민간의 경제활동이 위축되면 정부의 역할이 중요해진다.

정부는 파괴된 사회간접자본을 복구하고 피해 주민들을 지원하는 일에 막대한 자금을 투입한다.

이 같은 정부지출(G)의 증가는 GDP(Y)를 증가시키게 되고,따라서 경제는 'V자형' 회복을 보인다.

여기서 중요하게 고려할 문제가 있다. 바로 정부의 재정적자다. 정부지출의 증가는 나라살림에 큰 부담을 준다.

미국 정부는 2005년 카트리나 피해지역 지원을 위해 600억달러가 넘는 자금을 쏟아부었다.

그같은 대규모 정부지출은 전년도에 4121억달러(GDP 대비 3.6%)에 달했던 재정적자를 더욱 증가시켰다.

일본도 재정적자에 큰 부담을 느끼는 것은 마찬가지다.

일본의 GDP 대비 정부 부채비율은 1995년 한신 대지진 이후 크게 높아져 사상 최대 수준을 나타내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번 도호쿠 대지진 복구에 막대한 정부지출이 불가피하기 때문에 일본의 재정 건전성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 원전 폭발 등으로 'V자형 경제 회복' 낙관하기 어려워

지금까지 자연재해에서 일반적으로 나타난 V자형 경제 회복이 이번 도호쿠 대지진에서도 재연될 수 있을까.

세계 3위 경제대국 일본의 저력이 경제를 회복시킬 것이란 희망적인 전망이 적지 않다.

일본이 지난해 4분기에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한 데다 이번에 대지진의 피해까지 입었지만,정부가 대규모 자금을 투입하면 장기 부진의 늪에 빠진 일본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는 데 도움이 될 것이란 분석이다.

하지만 이번엔 경제 회복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반론도 만만찮다. 원전 폭발 등으로 지진 피해가 갈수록 확대되고 있고,자동차 전자 등 핵심 산업이 큰 타격을 받은 것이 경제 회복에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란 얘기다.

또 일본 정부가 투입하는 대규모 복구자금이 인플레이션이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오고,복구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세금을 올리면 소비여력이 위축돼 경제 침체가 장기화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처럼 일본은 도호쿠 대지진으로 오랜 디플레 늪에서 벗어나는 계기를 찾을지,아니면 그 속으로 더 깊이 빠져들지 갈림길에 서 있다.

일본 경제의 향방은 우리 경제에도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자연재해가 국지적 전쟁과 비슷한 효과를 발생시킨다는 점에선 우리에게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일부 지역에서의 전쟁이 다른 지역의 성장 동력이 됐던 사례는 역사적으로 많다.

6 · 25 전쟁은 일본이 2차 세계대전 패전의 잿더미에서 벗어나는 힘이 됐고,베트남전은 한국의 성장에 도움이 됐다.

하지만 긍정적 효과만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전 세계 GDP의 6% 정도를 차지하는 일본 경제가 주저앉으면 한국도 악영향을 피할 수 없다.

여기에 일본 정부가 쏟아내는 막대한 복구자금이 가뜩이나 세계 경제의 부담으로 부상한 인플레를 장기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장경영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longr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