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쿠크(Sukuk)’로 불리는 이슬람 채권이 정치권은 물론 청와대와 정부,종교계에 뜨거운 논쟁거리가 되고 있다.

개신교계의 거센반대로 이번 임시국회에서 수쿠크에 대해 세금을 물리지 않는다는 내용을 골자로한 법안은 통과 되기가 사실상 힘들어 졌다.

수쿠크 법안을 추진해 온 정부는 사태가 이렇게 커진 것이 무척 당혹스럽다는 반응이다.

‘해외 자금조달 물꼬를 터주자’는 순수한 경제적 목적에서 시작한 것이 종교 문제로 비화되면서 ‘대통령 퇴진운동을 하겠다’는 극단적인 반응까지 불러왔기 때문이다.

세금과 국가예산문제를 전담하고 있는 기획재정부 관계자는“우리나라에서 가장 무서운 곳이 바로 종교계라는것을 알게 됐다”며 “종교쪽에서 걸고 넘어지니까 여야할것없이 정치권이 입을 닫아버리더라”고 말하기도 했다.

“해외 자금조달 물꼬 터주자” v s“이슬람교에 면세 특혜 안될 말”

⊙ 수쿠크가 뭐길래

[Cover Story] ‘수쿠크’법, 무슨 문제 있길래 종교계까지 난리야?
수쿠크 비과세 법안에 반대하는 이혜훈 한나라당 의원 등은 "수쿠크에 대해서만 특혜를 줄 수는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재정부는 특혜가 아니라 오히려 형평성을 맞춰주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왜 이런 시각차가 생긴 것일까.

수쿠크는 다른 나라의 일반 채권과 달리 발행 구조가 독특하다.

채권은 거액의 자금을 정해진 이자를 주고 빌리기로 하는 표준화된 자금거래증서다.

보통의 채권은 이자를 주고받는다.

하지만 이슬람 지역에서는 종교 율법에 이자를 주고받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돈은 무생물인데 자식(이자)을 낳을 수 없고 가난한 이웃에게 돈을 빌려주면서 이자를 받는 것은 부도덕한 일이라는 것이다.

이런 사고는 전근대 유럽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 등에서도 이자에 대한 일반적인 적개심을 볼 수 있고 이자를 많이 받아서는 안 된다는 주장은 지금 우리나라에도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어떻든 이자를 금지하는 이슬람 율법 때문에 이슬람 사람들은 결국 편법을 만들어 냈다.

내용적으로는 이자를 주고받는 것이지만 형식적으로는 이자가 아닌 것처럼 적절한 다른 중개수단을 만들어 돈을 빌려주고받는 것이다.

이 편법의 종류는 무려 10가지나 된다고 하는데 우리 정부가 면세를 추진하고 있는 것은 '이자라'와 '무라바하' 두 가지 형태다.

이 가운데 '이자라'는 부동산을 매매하거나 임대차한 것으로 꾸며 임대료 수익을 지급하는 형식을 빌리는 방식을 말하고 '무라바하'는 부동산 대신 일반 상품을 사고 파는 것처럼 조작해 그 차액을 지급하는 방식이다. 이 중 부동산을 매매하는 방식을 보자.

우선 자금이 필요한 회사는 중간에 부동산을 관리하는 명분으로 특수 회사(SPV)를 내세운 후 이 회사에 부동산을 매도한다.

동시에 이 부동산을 다시 빌려 사용하면서 임대료를 지급하게 된다. 여기까지는 돈을 빌리는 사람 쪽의 계산이다.

그 다음 이 부동산 회사는 임대료 명목으로 받은 이자를 부동산을 매입할 때 돈을 투자한 사람에게 배당금 형식으로 지급한다.

이때 중간에 부동산을 관리하는 특수회사와 돈을 투자한 사람이 증서를 주고받는데 이 증서가 바로 수쿠크인 것이다.

그리고 수쿠크의 만기가 되면 다시 반대 매매를 통해 거래를 청산하는 것이다.

문제는 부동산을 사고파는 형식을 빌리기 때문에 한국법에 따르면 부동산 가액에 따라 △취득세와 등록세 △양도소득세 △부가가치세 등 각종 세금이 부과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세금을 다 내고 나면 수쿠크의 이자보다 실제 이자가 크게 낮아져 결국 투자할 사람도 없어진다.

이런 이유 때문에 중동의 엄청난 오일머니를 조달하려는 국내 기업들 중에 아직 수쿠크를 발행해 자금을 조달한 사례는 없다고 한다.

수쿠크에 포함된 부동산 거래에 대해서는 외형과 달리 그 실질 내용이 이자의 수취일 뿐이므로 취득세 등을 면제해주자는 것이 바로 문제의 수쿠크 법안이다.
[Cover Story] ‘수쿠크’법, 무슨 문제 있길래 종교계까지 난리야?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 이슬람 테러 자금줄 가능성?

그 다음 문제가 수쿠크에 지급하는 이자가 알카에다 등 테러단체로 흘러들어갈 수 있다는 주장이다.

수쿠크 발행과 운용을 감독하는 '샤리아(이슬람법) 위원회'가 배당금의 형식을 띤 이자 수입의 2.5%를 '자카트'란 이름으로 징수해 자선활동에 쓰게 되는데 그 내역이 드러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말만 자선일 뿐 실제로는 알카에다 등의 테러 활동에 들어간다는 의혹이 있다는 것이 수쿠크 반대론자들의 주장이다.

이에 대해 정부는 이슬람교 신자들이 관리한다는 이유만으로 테러 자금이라고 의심한다면 앞으로 이슬람 국가와 어떤 교류도 할 수 없을 것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또 자카트는 이슬람교인의 5대 의무 중 하나로 다른 수입에도 똑같이 적용되는 '교회 헌금'과 같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말레이시아 중앙은행의 다우드 바커(Mohd.Daud Bakar) 샤리아 자문위원장은 최근 "수쿠크는 자본 조달을 위해 발행하는 금융상품이지 종교 상품이 아니다"며 테러단체에 악용될 수 있다는 국내 개신교계 등의 우려를 부인했다.

야당 일각에서는 또 "정부가 아랍에미리트(UAE) 원전을 수주하는 대가로 공사비를 대출해 주기로 했는데,이에 쓰일 막대한 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정부가 특정 종교에 편의를 제공하면서 서둘러 법을 처리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한다.

이에 대해서도 정부는 억측이라는 반응이다. 재정부 관계자는 "수쿠크 비과세 혜택이 주어지면 이슬람 자금 유치가 쉬워지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중동 원전 수주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며 "2009년 법안을 제출할 당시만 해도 원전 수주 같은 상황이 전혀 없었다"고 반박했다.

이혜훈 의원은 수쿠크에 대해 법으로 면세 혜택을 주는 나라는 영국 아일랜드 싱가포르 등 단 3곳뿐이라고 주장했다.

또 이들 나라도 현재 정부가 추진하는 것처럼 광범위한 면세가 아니라 취득세나 법인세 정도를 면제해주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 역시 정부의 설명은 다르다.

영국 등 3개 나라 외에 프랑스도 시행령을 통해 면세 조치를 했고,일본 역시 올해 세법 개정 방향을 발표하면서 면세 방침을 밝혔다고 설명했다. 이슬람 자금 유치의 필요성이 커지면서 면세 혜택을 주는 나라들이 계속 늘어날 것으로도 예상했다.

면세 범위가 너무 넓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영국 등은 원래 부가세를 매기지 않기 때문에 면세를 해줄 이유가 없었을 뿐이라고 일축했다.

⊙ 종교계의 과도한 개입 논란

수쿠크 면세가 특혜인지 아닌지 여부를 떠나 경제 현안에 대한 종교계의 지나친 개입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지적도 많다.

수쿠크 법안과 관련해 이명박 대통령의 '하야 운동'까지 언급해 큰 논란을 빚었던 기독교계는 최근 한발 물러서긴 했다.

그러나 정치권은 수쿠크 법안 처리에 이미 종교계의 눈치를 보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기본적으로 표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정치권에서 종교계의 반발을 거슬리기는 사실상 힘들다"며 "자신들의 종교만 생각하며 경제 정책의 발목을 잡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수쿠크 발행을 추진했던 한 증권회사 관계자는 "우리 종교의 배타성은 국제 사회에서 큰 웃음거리가 될 수 있다"고 꼬집었다.

종교가 세속의 일에 간여하는 일이 최근 들어 빈번해지고 있다.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의 4대강 사업 반대,템플스테이 예산을 둘러싼 불교계와 정부의 갈등 등이 대표적 사례다.

전문가들은 "역사적으로 세속과 거리를 두고 마음의 평화를 추구해야 하는 종교가 세상 일에 너무 간여함으로써 많은 문제를 야기한 사례가 많다"며 "'성(聖)의 속(俗) 개입' 현상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서욱진 한국경제신문 기자 ventur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