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정책 등에 관한 허위사실 유포도 처벌해야 하나' 엇갈린 논쟁

[Focus] 미네르바法 위헌결정 났지만 식지않은 ‘표현의 자유’ 논란
한 사람의 인터넷 필명으로 불리는 법이 있다.

바로 전기통신기본법.

이 법은 '미네르바'라는 필명으로 인터넷 포털사이트 토론게시판에 정부의 외환정책 등에 대한 글을 올려 유명세를 탄 박대성씨를 검찰이 기소할 때 적용되면서,원래 명칭 대신 '미네르바법'으로 더 널리 알려져 있다.

미네르바법은 인터넷상 표현의 자유 문제와 연결되며 우리 사회에 엄청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재판을 받은 박씨가 2009년 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으면서 논란은 더욱 뜨거워졌다.

결국 박씨는 같은 해 헌법재판소에 "미네르바법은 헌법에 어긋난다(위헌)"는 취지로 위헌 여부를 가려달라며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

헌법재판소는 지난해 12월 미네르바법에 대해 재판관 7(위헌) 대 2(합헌)의 의견으로 "처벌 조항이 명확하지 않아 위헌"이라는 취지의 결정을 내렸다.

헌법재판소가 해당 법률이 위헌이라는 결정을 내리면서 인터넷상 허위 사실을 유포하는 자를 처벌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사라졌다는 불만도 검찰 등에서 나왔다.

위헌 결정이 나면 해당 법률은 즉시 효력을 잃게 된다.

이에 따라 같은 법을 어긴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무죄 판결을 받게 됐고,검찰 또한 해당 법을 적용해 기소할 수 없게 됐다.

이에 국회의원들은 미네르바법을 대신할 개정안을 낸 상태다.

그런데 무엇에 대해 허위사실을 인터넷상에 퍼뜨렸을 때 처벌할지 여부에 대해 합의해 새 법을 확정할 때까지 표현의 자유 논란 '제2라운드'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 미네르바법은 무엇

미네르바법으로 불리는 전기통신기본법에서 헌법재판소가 위헌이라고 결정한 부분은 제47조 제1항이다.

이 조항은 '공익을 해할 목적으로 전기통신설비에 의하여 공연히 허위의 통신을 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헌법재판소가 미네르바법을 위헌이라고 결정한 이유는 해당 법 조항에서 '공익을 해할 목적'이 분명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위헌을 결정할 당시 헌법재판소는 그 이유를 "법에서 '공익'의 의미가 불명확하고 추상적"이라고 밝혔다.

또한 "어떤 표현이 공익을 해치는 것인지 아닌지에 대한 판단은 사람마다의 가치관과 윤리관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고 덧붙였다.

그런데 미네르바법을 대신할 처벌조항 신설은 쉽지 않아 보인다.

왜냐하면 헌법재판소가 "법전문가도,법집행자도 공익을 해칠 목적이 무엇인지 객관적으로 확정할 수 있다고 보기 어렵다"면서 "현재의 다원적이고 가치상대적인 사회 구조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행동이 문제되었을 때 공익은 하나가 아닐 수도 있다"고 함께 밝혔기 때문이다.

표현의 자유를 넓게 인정하면서 동시에 우리 사회에서 '공익'이 무엇인지 확정하기 어렵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결정이다.

이를 두고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을 환영하는 측에서는 "일본 식민지 시대에 독립운동가들의 행동은 당시 일본의 '공익'에는 어긋났겠지만,당시 우리 민족과 역사에는 '공익'에 부합하는 행동이었던 것과 같은 이치"라고 해석하기도 했다.

반면 검찰 등은 부정적인 입장이었다. 대표적인 주장이 천안함 사태나 북한의 연평도 도발 등 국가의 안보를 위협하는 사안에 대해 인터넷상에 허위 사실을 유포할 경우 엄청난 사회적 파장이 일어날 수 있는데도,미네르바법 위헌 결정에 따라 이들을 법으로 처벌할 수 없어졌다는 것이었다.

또한 국가의 경제정책에 대한 허위사실 등도 국민에게 큰 혼란을 초래할 수 있으니 역시 처벌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논란의 중심에 섰던 '미네르바' 박대성씨는 2008년 인터넷 포털사이트 토론게시판에 '드디어 외환보유고가 터지는구나'라는 제목으로 외환보유액이 고갈돼 외화예산 환전 업무가 중단된 것처럼 글을 쓰고,'대정부 긴급 공문 발송-1보'라는 제목의 글에서는 주요 7대 금융기관 및 수출입 관련 주요기업에 달러 매수를 금지할 것을 긴급 공문 전송했다는 허위사실을 유포했다는 혐의로 기소됐다.

정체가 드러났을 당시 '오랜 경력을 지닌 경제 전문가일 것'이라는 세간의 예상과 달리 고졸 학력에 독학으로 경제학을 공부한 사람이라는 사실이 밝혀져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 허위사실 유포 처벌과 표현의 자유 사이에서

헌법재판소의 미네르바법 위헌 결정 이후 법적 처벌 공백을 메우기 위해 국회의원들은 대체입법안을 잇따라 마련했다.

그동안 정부입법을 추진해오던 법무부는 별도로 개정안을 내지 않기로 방침을 정했다.

조만간 국회에서 의원들이 제출한 대체입법안들이 활발하게 논의될 전망이다.

현재 국회의원들이 내놓은 대체법안은 크게 두 갈래다. 첫 번째는 전쟁,테러 등 국가적인 중대 사안에 대한 허위사실을 유포하는 경우에 한정해 형사처벌을 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하자는 방향이다.

다른 갈래는 경제 · 무역 · 재정 등 구체적인 경제상황이나 정부 정책 등에 대해 허위사실을 인터넷상에 퍼뜨리는 경우까지 확대해 형사처벌할 수 있도록 법적 근거조항을 만들자는 주장이다.

이를 위해 전기통신기본법이나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정보통신망법)에 처벌조항이 들어간다.

예를 들어 이두아 한나라당 의원 등 10명은 전기통신기본법 대신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정보통신망법)을 손질하는 일부 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이 의원 등은 △전쟁,사변,교전 등 무력충돌 △내란,폭동,테러 △국방 외교 △식품 환경 △보건 등과 관련해 허위사실을 유포할 경우 처벌토록 했다. 또 △경제정책 · 무역거래 · 재정 등에 대해 허위사실을 구체적으로 유포한 자를 처벌토록 했다.

이들 의원은 외환보유액 규모를 허위로 퍼뜨리거나,경제정책을 악의적으로 날조하거나,금융시장을 뒤흔들 정도로 위기설을 퍼뜨리는 경우도 구체적인 처벌 사례로 규정하고 있다.

여상규 한나라당 의원 등 10명도 '국가안전보장이나 사회 · 경제적 질서 또는 공공기관의 정상적인 업무수행을 해할 목적'으로 허위사실을 유포한 경우 처벌하자는 쪽이다.

처벌범위를 전쟁 · 테러 등 국가의 중대 사안에 대한 허위사실 유포로 한정한 안도 있다.

임동규 한나라당 의원 등 10명은 '국가안전보장에 중대한 위험을 초래하고,자유민주적 기본질서 파괴와 사회혼란을 유도하거나 공공복리를 현저히 저해하는 허위사실을 유포'한 경우 처벌하자는 쪽으로 전기통신기본법 대체 입법안을 낸 상태다.

정옥임 한나라당 의원 등 13명도 처벌범위를 '전쟁,사변,교전상태와 내란,폭동,테러 및 대규모 재난에 대한 허위사실 유포'로 한정했다.

반면 조배숙 민주당 의원 등 10명은 아예 처벌조항 자체를 삭제하자는 주장이다.

지난 '미네르바법' 논란을 볼 때 향후 국회 논의과정에서도 진통이 예상된다.

박경신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처벌 범위에 전 분야를 망라해 놓으면 또다시 위헌 논란이 일어날 것"이라고 지적했다.

허위사실 유포 처벌범위가 전쟁,테러 등 국가적 중대 사안에 대한 것으로 한정된다면 큰 문제 없이 사회적 합의를 이룰 수 있겠지만,경제정책 등까지 처벌 대상에 넣어야 한다는 의원안도 다수이기 때문에 인터넷상 표현의 자유를 중시하는 시민사회 등의 반발을 국회가 어떻게 안고 갈지 주목된다.

이고운 한국경제신문 기자 cca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