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축은행 왜 '시한폭탄' 됐나

[Cover Story] '프로젝트 파이낸싱' 으로 돈 벌다가 부동산 침체로 대출 부실 '부메랑'
저축은행 7곳이 최근 한 달 만에 잇달아 문을 닫았다.

1월14일 서울 소재 삼화저축은행에 이어 2월 17일 부산 · 대전 등 지방저축은행이 영업을 정지했다.

지난 19일엔 부산2 · 중앙부산 · 전주 · 보해저축은행 등 4곳이,22일엔 강원도 도민저축은행이 금융위원회로부터 영업정지 처분을 받았다.

이에 따라 전국의 저축은행 수는 104개에서 97개로 줄었다. 왜 이처럼 적지 않은 저축은행들이 한꺼번에 문을 닫아야 했을까.

그 배후엔 바로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대출이 자리잡고 있다.

프로젝트 파이낸싱이란 금융회사가 기업이나 개인이 아니라 대출자금이 투입될 사업(프로젝트) 자체의 수익성을 보고 대출해 주는 것을 말한다.

많은 저축은행들이 부동산 개발 사업의 수익성을 보고 돈을 빌려 주었다가 부동산 경기 침체로 분양이 여의치 않자 자금을 회수하지 못해 부실화되고 있는 것이다.



⊙ PF 대출로 초고속 성장한 저축은행

저축은행(2002년 이전에는 상호신용금고로 불렸음)은 신용등급이 낮은 개인들이 주로 거래하는 서민금융회사다.

중소 자영업자들을 상대로 대출을 해주다 보니 경기가 침체되면 대출금을 제대로 회수하지 못해 금융회사들 중에 먼저 부실화되는 경향이 있다.

정부가 외환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신용카드 발급을 무제한 허용하면서 빚어진 2004년 가계 신용위기 당시에도 저축은행들이 가장 먼저 타격을 받았다.

최근 저축은행의 부실은 서민대출이라는 본업이 아닌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이라는 부업에 주력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이란 아파트 상가 건물 등 부동산 개발 사업 자체를 믿고 자금을 빌려 주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의 성공 여부는 해당 부동산 개발에 참여하는 건설회사의 신용도가 아니라 부동산 개발 사업 자체의 수익성에 따라 결정된다.

즉 경기변동 등 외부적 요인에 의해 개발 부동산의 분양(판매)이 늦어지거나 사업 자체가 수익을 내지 못하면 저축은행은 대출 자금 회수에 차질이 생길 수밖에 없는 것이다.

프로젝트 파이낸싱은 대출 기간도 일반 대출보다 긴 특징이 있다.

프로젝트 파이낸싱 계약이 저축은행과 부동산개발회사 간에 체결되면 저축은행은 개발 회사(부동산 개발 사업 아이디어를 낸 건설회사가 서류상으로 만드는 경우가 많다)에 토지 매입 자금 등을 빌려준다.

개발 회사는 그 돈으로 땅을 사고 아파트나 상가 등 개발 계획을 세워 관청의 인허가를 받는다.

그런 다음 건축물을 착공하고 분양에 들어가는데 이때 분양이 잘되면 당초 계획대로 대출금을 갚아 높은 수익을 올릴 수 있다.

그러나 분양이 여의치 않으면 대출금 상환이 늦어지게 되거나 아예 갚지 못하게 되어 다시 자금을 조달해야 하는 것이다.

건설회사가 직접 개발 자금을 투입하고 분양해 수익금을 얻는 일반적인 부동산 개발에 비해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은 개발 자금을 투입하는 금융기관이 사업 실패 위험을 고스란히 떠안는 셈이다.

노무현 정부 시절 부동산 경기가 호황을 구가하던 2005년 당시만 하더라도 프로젝트 파이낸싱은 인기였다.

땅값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분양이 잘 되자 저축은행들은 너도나도 '대박'을 노리며 부동산 개발 사업 대출에 뛰어들었다.

이들은 예금주들에게 높은 이자를 주고 더 많은 예금을 받아 부동산 개발업체에 PF 대출을 많이 해주기 시작했다.

저축은행들은 20%에 달하는 초고속 성장을 하게 됐다. 하지만 경기는 언제나 호황과 불황을 거듭하는 법이다.

⊙ 부메랑으로 돌아온 PF 대출

2008년 9월 글로벌 금융위기와 함께 'PF 대출 신화'는 무너졌다.

세계적인 경제위기의 여파로 국내 부동산 경기도 얼어붙자 프로젝트 파이낸싱 사업장은 직격탄을 맞았다.

미분양 아파트가 속출하고 부동산 가격이 급락하면서 저축은행 프로젝프 파이낸싱 대출의 연체율은 10%대로 치솟았다.

지난해 9월엔 급기야 20%를 넘어섰다.

대출 사업장 5곳 중 1곳이 부실화된 것이다.

결국 저축은행들은 수천억원대의 적자를 기록하게 된다.

일부 저축은행들은 부채가 자산을 초과해 자본이 잠식되는가 하면 PF대출 연체율이 100%를 기록하기도 했다.

은행을 얼마나 믿을 수 있는가를 나타내는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도 급속도로 떨어졌다.

일반적인 자기자본비율은 자기자본/총자산이나 BIS 기준 자기자본비율은 회수불능 위험이 높은 자산에 가중치를 곱하므로 연체율이 높은 대출금이 있을 경우 총자산이 많아져 이 비율이 하락하게 된다.

또 부실채권으로 분류되는 고정이하 대출비율도 크게 높아졌다. 일반적으로 대출금은 회수 가능성에 따라 △정상 △요주의 △고정 △회수의문 △추정손실의 5단계로 분류되는데 고정이하(고정 회수의문 추정손실)는 연체기간이 3개월 이상으로 부실 채권으로 불린다.

금융당국은 BIS 기준 자기자본비율이 8%를 넘어서고 고정 이하 부실여신비율이 8%를 넘지 않는 저축은행을 '8 · 8클럽'이라며 우량 저축은행으로 꼽고 있다.

프로젝트 파이낸싱 대출 부실로 지난해 말 저축은행들의 자기자본비율은 8%보다 한참 밑으로 떨어지고 고정이하 여신비율은 10% 이상으로 치솟았다.

⊙ 구조조정은 어떻게

프로젝트 파이낸싱으로 부실화된 저축은행을 구조조정하려면 막대한 자금이 들어간다.

이를 위해 예금보험제도가 있으나 저축은행 예금주들을 위한 보험기금은 이미 다 써 버린 상태이다.

예금보험공사는 금융회사의 부실에 대비해 평소에 은행,보험사,저축은행 등으로부터 예금 평균잔액의 0.08~0.35%를 보험료로 받아둔다.

하지만 저축은행을 위해 모아둔 예금보험기금은 200개의 저축은행이 100개로 줄어드는 과정에서 소진했다.

이에 따라 정부는 은행 보험 저축은행 등 업종별로 나눠진 예금보험기금 계정을 한데 묶어 위급할 때 어느 업종이나 곧바로 쓸 수 있는 '공동계정' 제도 도입을 추진 중이다.

쉽게 말해 은행들이 내놓은 보험금을 저축은행들이 사용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가급적 국민 세금(공적자금)을 투입하지 않고 예금보험기금만 사용해 저축은행 부실 문제를 해소해 보려는 고육지책이다.

하지만 이 공동계정 제도는 금융회사별로 이해 당사자 간 합의가 이뤄지지 않아 도입이 늦어지고 있다.

비슷한 위험의 상품을 한데 모아야 하는 보험의 원리에 맞지 않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금융당국은 이와 함께 부실 저축은행을 은행들에 인수시켜 정상화시킨다는 방안도 추진 중이다.

영업정지된 삼화저축은행은 우리금융지주가 인수하기로 확정된 상태다.

안대규 한국경제신문 기자 powerzani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