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정의란 무엇인가’에 숨은 오류들
EBS가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 교수의 정의론 강의를 고정적으로 편성해 방영하고,그의 저서인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이 수십만권이나 불티나게 팔리고 있는 현상은 인기라는 수식어를 넘어 열풍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역시 논술시험의 힘이다.

그러나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도전적 제목의 이 책은 매우 조심스럽게 읽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어서 적지 않은 주의도 요구된다.

초심자들에게는 샌델이 제시하는 기준들이 유일하고도 정당한 기준들로 비칠 수도 있고 마치 도덕적 갈등 문제의 정답인 것처럼 인식될 위험도 있다.

샌델의 주장은 ‘공동체주의’라고 부르는 도덕철학의 한 분파일 뿐이며, 샌델이 그토록 거칠게 공격하는 공리주의야 말로 전세계 대부분 국가들이 오늘도 정책을 결정할 때 가장 강력한 준거틀로 적용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예를 들어 신종플루를 막기 위해 백신을 처방할때 독자 여러분은 어떤 기준으로 우선 순위를 정할 것인가.

또 실제로 수년전 우리 정부가 백신을 처방했을 때 어떤 기준으로 순위를 정했을까.

지금 창궐하는 구제역에 대한 정부의 대처는 또 어떤 기준으로 실행되는가.

왜 모조리 살처분하게 되는가. 샌델이 강조하는 소위 동물권은 이때 어떻게 되는가.

이런 현실의 사태에 대해 적용되는 기준은 어떤 도덕철학에 의거하게 되는가 하는 질문들을 우리는 보다 진지하게 해봐야 하는 것이다.

우리 정부가 3년전 신종플루 백신을 처방한 기준은 누가 뭐래도 공리주의적 원칙, 즉 전체 국민에 대한 전염가능성을 차단하는 것이 가장 강력한 기준이었다.

여기에 공동체주의나 다른 도덕원칙들이 개입할 여지는 없다.

시민의 덕성이나 소외된 자에 대한 배려 등도 구호는 그럴듯하지만 백신 처방 과정에서는 전혀 고려대상이 아니다.

바로 이런 점 때문에 샌델의 책을 아무리 읽어도 구체적인 문제에 들어가면 답이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발견하게 된다.

아니 샌델식의 논리로는 사회적 갈등의 구체적 문제에 그 어떤 답도 낼 수 없다.

기껏 도덕철학을 거창하게 논해 놓았는데 실제 현실에서 아무런 기준이 되지 못하는 것이 바로 샌델의 도덕철학이라는 비판도 무시할 수만은 없다.

그럴듯하게 보일 뿐인 감언이설이 될 가능성이 크다면 우리는 이런 철학에 높은 점수를 매길 수는 없는 것이다.

오늘은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를 4,5면에서 비판적으로 읽어 보기로 한다.

정규재 경제교육연구소장 jk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