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공리주의·신자유주의적 접근이 틀리다면…그럼, 샌델이 말하는 해법은 무엇이지?
샌델이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제기한 도덕철학의 갈등 문제군에 대한 반론들을 한번 살펴보자.

샌델은 이 책에서 다양한 현실의 사례들을 예로 들어 우리들에게 흥미만점의 논리들을 제시해주고 있다.

철학하는 재미를 가르쳐주고 깊이있는 논변을 유도한다는 점에서 그의 책은 누구라도 한번은 읽어봄직 하다.

그러나 문제는 샌델류의 도덕철학이 현실 문제에 있어 그 어떤 구체적 해법도 제시하기 어렵다는데 있다.

공론(空論)이거나 허공에 뜬 논리로 되고 말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실제로 샌델의 ‘정의란 …’을 열심히 읽은 사람도 책을 덮을 때는 “그렇다면 샌델의 해결책은 무엇이라는 것이지?” 하는 의문을 갖게 된다.

공리주의적 해법과 신자유주의는 명렬하게 비판하고 있으면서도 정작 자신의 해법이 없다면 이는 공허한 이론에 불과하다.

샌델이 공리주의와 신자유주의를 공격하는데 동원한 몇가지 사례들을 거꾸로 비판해보자.


◆ ‘정의란…’에 나타난 문제군에 대한 다른 생각들

◆ 질문 1. 상인들의 폭리

샌델은 허리케인 ‘찰리’가 미국 플로리다를 휩쓸고 지나간 다음 각종 생활필수품이 모자라게 되자 일부 상인들이 평상시 가격과는 달리 높은 가격을 받은 사례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재화와 용역을 판매하는 사람이 자연재해를 이용해 어떤 가격을 불러도 상관없다는 말인가”라는 개탄은 샌델이 아니더라도 우리가 일상 생활에서 흔히 겪는 곤란한 상황 중 하나다.

상인들에게도 도덕심이 있을 것인데 재난에 처한 사람들을 돕기는 커녕 재난을 이용해 폭리를 취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로 도덕적 비난을 받아야 마땅하다는 주장이다.

△ 다른 생각

타인의 곤궁한 처지를 안타깝게 생각하는 것은 인간의 보편적 심리다.

상인도 그렇다.

그렇다면 상인들은 언제나 싼 가격으로만 상품을 팔아야 할까.

샌델은 그렇다고 주장하는 듯하다.

그렇다면 의사는 어떨까.

병원은 심각한 질병에 걸린 환자를 돈이 없더라도 무조건 치료를 해주어야 할까.

허리케인은 집단에게 일어난 일이고 질병은 개별 환자에게 생긴 일이라는 점이 다를 뿐 본질은 같다.

허리케인에 대비해 창고를 평소에 튼튼하게 지어놓았던 상점 주인과 어떤 방비책도 없이 상품을 모두 떠내려 보낸 상인이 동일한 가격을 받아야 한다면 누가 상품을 적절하게 관리하려고 노력할까.

또 특정한 상품을 필요로 하는 사람은 많고 공급은 적다면 어떻게 순위를 정해 상품을 나누어줄 수 있을까. 가위바위보가 옳을까.

나아가 상인들은 모두 잠재적인 폭리꾼일까.

만일 정해진 가격으로만 상품을 팔라고 한다면 상품은 필요한 만큼 잘 공급될까.

허리케인이 아니라 하더라도 평소에 특정 상품을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궁박한 개인이 있다면, 예를 들어 어떤 배고픈 사람이 있다면 상인은 라면이라도 공짜로 주어야 할까.

한 사람에게 생긴 문제는 도외시해도 되고 많은 사람에게 한꺼번에 발생한 문제에는 도덕적 기준을 달리 적용해야 할까.

허리케인이 닥친 지역에 물건 값이 뛰어올라야 오히려 많은 다른 지역의 상인들이 서둘러 많은 상품을 이 지역으로 실어나르려는 필사의 노력을 하지 않을까.

반대로 만일 평소 가격대로 팔 것을 정부가 명령한다면 다른 지역의 상인들이 황급히 이 지역에 상품을 공급하려는 노력을 할 것인가.

이런 질문들에 우리는 직면하게 된다.

역시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우리는 깨닫게 된다.

더구나 특정한 상황에서 일부 상인의 폭리를 지적하는 것으로 상인이라는 직업이 항상 무언가 정의롭지 못한 일을 하는 것 같은 이미지를 만들어 내는 것은 고약한 화법이 아닌가.

샌델이 실제 그런 의도는 없다 하더라도 그의 책을 읽는 많은 어린 학생들은 상인은 으레 기회만 있으면 폭리를 취하는 사람으로 생각할 위험이 있다.

만일 상인이 없다면 우리는 누구에게서 우리가 필요로 하는 상품을 구할 것인가.

상인이 없다면 우리는 정부 관리에게 고개를 숙여가며 물건을 배급받아야 할 것이다.

상품은 항상 사람들의 필요보다 모자라기 마련인데 -이를 경제학에서는 ‘자원의 희소성’이라고 부른다- 만일 정부가 공급하게 된다면 우리는 공무원에게 머리를 조아려야 하거나 은밀하게 줄을 대야 하거나 물건을 빨리 받기 위해 돈을 상납하는 등의 행위를 할 수 밖에 없다.

◆ 질문 2. 국가와 미덕의 문제

샌델은 가격 폭리 문제에 이어 미덕의 문제를 강조한다. 미덕은 듣기에 참 좋은 말이다.

샌델은 상인들의 폭리를 미덕의 상실로 규정하고 국가가 여기에 개입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듯하다.

무엇이 미덕이고 무엇이 악덕인지 누가 판단하는가.

샌델에 따르면 국가가 아마 그러한 주체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미덕을 장려하는 것도 국가의 역할과 기능의 하나일 것이다.

정의로운 사회라면 사회와 국가는 시민의 미덕을 장려해야 한다는 것이 샌델의 주장이다.

△ 다른 생각

미덕은 시대에 따라 변한다. 또 개인의 판단에 따라 달라진다.

사람마다 악덕에 대한 기준도 다르다. 만일 국가가 도덕에 대한 판단자가 된다면 사회는 어떻게 될까.

아마도 부모들이 자식들에게 잔소리를 하듯이 시민들에게 끊임 없이 잔소리를 하지 않을까.

시민의 덕성을 바로 잡기 위해 소위 ‘바른 생활’에 대해 국가가 끊임 없이 간섭한다면 이런 국가는 독재국가에 다름 아니 게 된다.

바로 이 때문에 북한같은 공산주의 국가들은 매일 밤마다 시민들을 불러내 교양사업에 참여하도록 강제하고 있는 것이다.

머리를 단정하게 자르고 옷은 이렇게 입어라, 아침에 몇시에 일어나 일터로 나가라는 등의 잔소리를 부모도 아니고 국가가 하기 시작한다면 이는 정말 비참한 사회가 될 것이다.

혹시 특정 종교를 국가가 믿어라고 강요하는 일도 일어나지나 않을까.

물론 이런 우려는 극단적인 경우이지만 스탈린이나 히틀러 같은 대부분의 독재자도 선의와 도덕심을 강조한 결과 점점 독재로 치닫고 말았다.

이것이 역사가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불편한 진실이다.

독일 국민 전부가 히틀러 맹신에 빠졌던 것이나, 독일인의 덕성과 도덕심을 자극하면서 독재가 시작되었다는 점도 기억해야 마땅하다.

이 때문에 우리는 국가는 도덕의 담보자가 되서는 안되며, 종교나 도덕은 국민 각자의 영역에 속하는 세속국가가 바람직하다고 보는 것이다.

◆ 질문 3. 금융위기와 월스트리트의 탐욕

[Cover Story] 공리주의·신자유주의적 접근이 틀리다면…그럼, 샌델이 말하는 해법은 무엇이지?
엄청난 구제금융을 받은 금융기관의 경영자들이 거액의 상여금을 받는 것은 정당하지 않다.

금융위기는 신자유주의가 만들어 놓은 탐욕 때문이다.

미국 최고경영자들이 노동자 평균보다 344배나 많은 급여를 받을 자격은 없다.

공로에 대한 보상의 원칙도 공동체의 가치 기준에 따라 주는 것이 맞다는 것이 샌델의 주장이다.

△ 다른 생각

월가의 탐욕을 정당화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신자유주의는 개인의 자유와 책임을 중시하지만 탐욕을 옹호하거나 정당화하지 않는다.

경영자 보수는 주주가 결정할 문제이지 사회가 그 기준을 정하거나 강제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애플의 스티브 잡스에게 보수를 얼마를 주어야 적당할지 사회나 국가 혹은 외부에서 결코 언급할 수도 없고 언급해서도 안된다는 것이다.

오로지 시장에서 평가받고 기업가치로 입증될 뿐이라는 것이 신자유주의자들의 주장이다.

만일 회사가 손실을 보고 경영자들에게 보수를 지급할 돈이 없다면 이때는 사회나 국가가 경영자에게 월급을 대신 지급해야 할 것인가.

아마 대부분 사람들이 터무니 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우리가 급여를 주는 것이 아니라면 이 문제는 회사의 주주에게 맡기는 것이 당연하다.

금융위기가 신자유주의 때문에 초래되었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신자유주의자들이 강력하게 반박한다.

금융위기는 오히려 신자유주의자들이 아주 싫어하는 ‘화폐의 타락’ 때문에 발생했다고 본다.

정부가 대중의 인기를 추구하면서 장기 저금리정책으로 돈을 너무 많이 풀었으며 그 결과 자산거품이 형성되고 그것이 탐욕을 부풀렸다는 것이다.

◆ 질문 4. 식인의 문제

공리주의는 전체의 이익이 크면 무엇이든 감행할 수 있는 사상 체계에 가깝다.

영국 선원 4명이 구명보트를 타고 가다 굶주림에 직면하자 가장 나이어린 17세의 병든 선원을 잡아먹고 생존한 경우는 어떻게 판단해야 하나.

샌델은 이 경우를 예로 들어 공리주의적 가치판단 기준을 준엄하게 비판한다.

다수의 이익을 위해 소수를 희생하는 이런 일에 결코 찬성할 수 없다는 것이다.

△ 다른 생각

공리주의는 어떤 문제를 판단함에 있어 전체의 이익을 증진시키는 정책을 취한다는 것이지 그 과정에서 인간성은 어떻게 되어도 좋다거나 소수가 희생되어도 좋다거나 심지어 사람을 잡아먹어도 좋다는 철학이 아니다.

특히 신자유주의는 개인의 자유를 가장 우선시 하는 사상이어서 전체를 위해 소수가 희생되어도 좋다는 생각과는 아예 차원을 달리한다.

만일 센델이 공리주의는 식인도 감행한다는 식으로 말한다면 이는 공리주의에 대한 악선전이다.

역사상 광포한 형태의 공리주의가 옛 소련 공산주의 체제에서 없었던 건 아니다.

그러나 식인은 극단적인 문제이고 구명정을 탄 선원의 문제도 한계상황의 경우여서 일반적인 도덕원칙으로 쉽게 평가하기 어렵다.

당연히 이들 영국 선원은 법에 따라 처벌받게 될 것이고 또 실제 그렇게 되었다.

샌델처럼 개인 아닌 공동체의 가치를 중시하는 철학일수록 오히려 영국 선원들처럼 행동하기 쉽다.

공리주의 원칙은 우리가 신종플루 백신을 처방하는 과정에서도 철저하게 관철된다.

도덕적 기준이 아니라 전체의 전염가능성을 가장 낮추는 순서에 따라 백신을 처방한다.

여기에는 도덕적 판단이 개입할 여지가 없다.

신종플루가 치명적이라고 한다면 이는 선원의 상황과 비슷해진다.

샌델이 강조하지 않더라도 사람의 목숨은 계량할 수 없는 지고의 가치이다.

그러나 우리가 직면한 상황은 4000만명 중 일부에만 백신주사를 처방할 수 밖에 없다.

백신은 부족하다.

어떻게 할 것인가.

만일 백신을 처방하지 않으면 나머지는 모두 죽는다고 가정해보자.

샌델의 방법으로는 아무런 결정도 내릴 수 없다.

그러나 공리주의는 전염가능성 차단이라는 기준을 세워 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살릴 수 있다.

또 한국 정부는 실제로 그렇게 했다.

다행히 우리중 대부분은 신종플루에 감염되지 않고 지금도 살아있다.

샌델은 식인이라는 범죄행위를 제멋대로 해석하고 다른 상황에까지 무분별하게 확대적용하면서 자신과 다른 생각을 터무니 없이 깍아내린다.

소말리아 해적도 그런 문제의 하나다.

대부분의 구출작전은 크고 작은 선의의 희생자를 낸다.

한명이라도 다치거나 죽으면 안되므로 구출작전을 포기하고 몸값을 주어야 하나.

아니다. 몸값을 지불하는 것은 해적들에게 한국인 납치 면허증을 주는 것과 같다.

이 때문에 더 큰 희생을 막기 위해 대부분 정상적인 국가들은 작은 희생을 무릅쓰고 특공대를 투입해 인질을 구한다. 더 큰 희생을 줄이기 위해 작은 희생을 감수하는 것이다 .

식인의 예를 들어 다수를 위해 소수를 잡아먹어서 되겠는가라는 식으로 논박하는 것은 어처구니 없는 비약이다.

정규재 경제교육연구소장 jk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