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무바라크 · 김정일 등 장기집권에 개인숭배, 권력세습 '닮은 꼴'


▶ 세계의독재자들 면면을 살펴보니…

⊙ 폭정의 전형 … 김정일,'세계 최악' 불명예

미국의 외교잡지인 포린폴리시(FP)는 매년 지구촌의 독재자를 선정해 발표한다.

지난해 6월엔 독재의 길을 걷는 40여명을 뽑았으며 이 가운데 '세계 최악의 독재자' 1위에 김정일을 선정했다.

"최고급 프랑스 코냑을 즐기는 개인숭배화된 고립주의자"라는 게 FP의 평가다.

16년의 집권 기간 중 얼마 안 되는 국가 자원을 핵개발에 쏟아 부어 국민을 도탄에 빠트리고,최대 20만명을 강제수용소에 보냈다는 것이다.

앞서 2009년 워싱턴포스트의 자매지인 퍼레이드는 30년 장기집권한 로버트 무가베 짐바브웨 대통령과 '다르푸르 대학살'의 주범으로 지목된 수단의 오마르 알 바시르 대통령에 이어 김정일을 세계의 독재자 3위에 올렸었다.

독재자 연구가인 데이비드 왈킨스키는 저서 '폭정(Tyranny)'에서 김정일에 대해 "공산권에서 부자세습을 한 유일한 케이스로,정권 유지를 위해선 어떤 일이든 서슴지 않는 독재자의 전형을 모두 갖추고 있다"고 지적했다.

⊙ 소통의 단절,그리고 탐욕

독재자에 대한 평가는 평가자의 정치적 입장에 따라 상반되기도 한다.

상당수 독재자가 내부에서는 '민족의 영웅'으로 추앙받는 경우도 적지 않은 이유다.

하지만 "정치철학을 떠나 인간의 기본권에서 바라본 문제점은 크게 변하지 않는다"는 게 FP의 분석이다.

독재자들은 우선 언론의 자유를 말살한다. 군(軍)이나 친인척 출신 각료,친위부대 격인 특수정보조직 등 '인(人)의 장막에 둘러싸여 있다 보니 '생각이 다른 주장'을 접하지도,쉽게 인정하지도 않는다.

소통의 부재는 결국 자유로운 의사표현을 '체제 전복 도발'이란 이유로 탄압하는 결과로 이어진다는 것이 왈킨스키의 분석이다.

김정일이 대표적이다.

미 시사전문지 타임은 "김정일 독재정권은 고문,공개처형,강제노동,강제낙태,영아살해 등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고 전했다.

FP 평가에서 3위에 오른 미얀마의 군정지도자 탄 슈웨 장군과 7위에 오른 이슬람 카리모프 우즈베키스탄 대통령도 학정과 소통 부재의 대표적 인물이다.

탄 슈웨는 자신의 권위에 도전하는 정치세력 대다수를 감옥에 보낸 것은 물론 2008년 태풍 피해를 돕겠다는 국제사회의 지원 제안까지 거절할 정도로 소통을 두려워 했다.

FP는 그를 "민족적 자존심은 센지 모르겠지만 선거투표함은 무서워하는 겁쟁이"라고 묘사했다.

6500명에 이르는 재야 인사를 투옥시킨 카리모프는 한때 2명의 정치범을 산채로 물 속에 집어넣어 끓이는 고문을 주도한 것으로 알려져 세계를 경악하게 하기도 했다.

종교의 이름을 내세운 독재는 더 심각한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4위에 오른 바시르 수단 대통령은 30만명이 죽은 '다르푸르 대학살'을 배후조종한 인물로 지목돼 국제형사재판소(ICC)의 체포 영장이 발부된 상태다.

바시르는 1989년 쿠데타로 집권한 뒤 수단을 이슬람 국가로 바꾸면서 기독교 등 이교도들에 대한 가혹한 탄압정책을 펼쳤다.

막강한 권력을 누리다 보니 재물에 대한 탐욕도 두드러진다. 9위에 오른 멜레스 제나위 에티오피아 대통령은 권좌에 올라 있는 20년 동안 아내 이름으로 외국의 고급 저택을 수십채씩 사들였다.

특히 그는 매년 서방 선진국으로부터 10억달러의 기아지원금을 받아 이 가운데 상당액을 챙긴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김정일 일가처럼 권력 세습에 대한 욕심을 보인 독재자도 상당하다.

미국의 정치학자인 제이슨 브라운리는 1945년부터 2006년까지 3년 이상 집권한 258개 독재정권을 분석한 결과 "23명이 권력 세습을 시도해 9명이 성공했다"고 밝혔다.

⊙ 비참한 최후도 공통점

이미 사망한 독재자들의 경우 대개 말로가 좋지 않은 게 비슷하다.

루마니아의 철권 독재자 니콜라에 차우셰스쿠는 특히 '극단적 최후'의 전형으로 꼽힌다.

그는 루마니아 반정부 시위가 민중봉기로 돌변한 1989년 크리스마스에 부인과 함께 헬기로 탈출하다 쿠데타군에 의해 즉결 총살형을 당했다.

재임 25년간 6만명의 시민을 처형하는 등 '악랄한' 철권통치로 원성을 산 차우셰스쿠 부부는 무덤에서조차 편치 못했다.

루마니아 당국이 지난해 신원 확인을 이유로 무덤을 파헤쳐 시신에서 DNA 시료를 채취한 것이다.

2003년 12월 고향인 티크리트의 토굴에서 미군에 생포된 사담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은 3년 만인 2006년 12월 교수형에 처해졌고,20년간의 독재 끝에 1986년 부인 이멜다와 함께 막대한 재산을 가지고 하와이로 피신한 필리핀의 마르코스는 3년 뒤 갑작스런 질병으로 사망했다.

가지고 있는 돈을 제대로 써보지도 못했다.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전 세르비아 대통령 역시 코소보 내전 직후인 2000년 권좌에서 쫓겨난 뒤 2006년 헤이그 감방에서 전범 재판을 받던 중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1979년 이란혁명으로 축출된 무하마드 레자 팔레비 국왕 가족의 일생은 비극의 정점에 있다.

40여년간 군림했던 팔레비 국왕은 왕좌에서 내려온 지 1년 만에 췌장암으로 사망했다.

막내 아들 알리레자 팔레비는 올초 미국에서 권총자살했다.

여동생인 레일라 역시 거식증과 우울증에 시달리다 2001년 약물 과다로 숨졌다.

이관우 한국경제신문 기자 leebro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