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보편적 복지는 理想에 불과 '복지 포퓰리즘' 경계해야
국가가 국민에게 제공하는 복지급여는 수혜 대상자를 결정하는 방식에 따라 보편적 복지(universal welfare)와 선택적 복지(selective welfare)로 나뉜다.

보편적 복지는 소득 수준에 상관없이 모든 사람에게 복지급여를 제공하는 것이다.

노인들이 무료로 지하철을 탈 수 있게 하거나 중학교 교육을 무상으로 실시하는 것 등이 여기 속한다.

이와 달리 선택적 복지는 저소득층에만 혜택을 주는 것이다.

저소득층 자녀들에게만 무상급식을 주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보편적 복지는 교육 육아 의료 주거 노후 등과 관련해 정부로부터 물질적 보호를 받는 게 사회적 기본권이라는 주장에 근거를 두고 있다.

그래서 보편적 복지 강화를 외치는 사람들은 사회적 기본권을 충실하게 보장하는 복지국가를 만들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하지만 공산주의 국가를 제외한 어느 나라도 완벽하게 보편적 복지를 수행한 나라는 없다.

공산주의 국가들의 복지 실험조차 실패로 끝났다. 보편적 복지는 실현 불가능한 이상(理想)인 것이다.

보편적 복지와 복지국가의 철학적 근거가 무엇인지,그 근거가 어떤 한계를 갖고 있는지 자세히 알아보자.

⊙보편적 복지는 철학적 근거가 매우 취약

보편적 복지와 복지국가의 철학적 근거로는 사회적 기본권론과 사회적 책임론을 들 수 있다.

사회적 기본권론은 누구나 교육 육아 의료 주거 노후 등에 대해 국가의 도움을 요구할 권리가 있다는 주장이다.

국가에 의한 물질적 도움이 사회적 기본권을 보장해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보호한다는 것이다.

국가에 도움을 요구할 권리라고 하니,왠지 좋은 취지인 것 같아 쉽게 공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회적 기본권론은 많은 문제점도 안고 있다.

사회적 기본권론이 내세우는 권리는 사실 허구적인 것이다.

권리는 계약관계를 통해서만 생긴다.

그런데 사회적 기본권은 누가 누구와 계약해서 생겼난 것이 아니다.

국가와 계약했다는 것인가. 설령 국가와 계약했다고 해도 국가는 계약 이행에 필요한 돈을 갖고 있지 않다.

사회적 기본권을 충족시키려면 국가는 누군가의 재산을 빼앗아야 한다.

결국 사회적 기본권론은 자신의 노력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노력에 기대어 자신의 삶을 꾸리려는 것을 정당화시키려는 주장이다.

사회적 책임론은 누구나 실직 가난 질병 노후 등의 위험에 빠질 수 있기 때문에 국가가 나서서 그런 어려움에 빠진 사람을 차별없이 책임져야 한다는 것이다.

사회적 기본권론만큼이나 쉽게 공감할 수 있다. 그러나 사회적 책임론도 설득력이 떨어지기는 마찬가지다.

누구에게나 삶의 과정에서 예기치 않은 어려움이 닥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국가가 모든 국민을 위해 대비책을 세워야 한다는 것은 논리적 비약이다.

국가가 아니라 시장경제를 통해 개인들이 대비책을 마련해야 한다.

특히 현대 사회의 이질적이고 복잡한 복지 수요를 국가가 충족시킨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수천만명의 상이한 욕구와 필요를 효율적으로 조정하는 메커니즘인 시장경제를 통해 각자가 자신에 맞는 위험대비책을 세워야 한다.

⊙ 선택적 복지로 인한 낙인 효과 우려는 옳지 않아

보편적 복지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선택적 복지가 저소득층에 대한 시혜 차원에서 이뤄지는 것이라 수혜자들이 상처를 받는다고 지적한다.

예를 들어 급식비를 지원받는 저소득층 학생들이 '정서적 상처'를 받을 수 있으니 부모의 소득과 관계없이 전면적인 무상급식을 실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정서적 상처는 '낙인 효과'라는 개념으로 설명된다.

낙인 효과는 범죄이론에서 유래한 것으로,특정인을 사회제도나 규범의 일탈자라고 인식하면 그 사람은 결국 범죄자가 되고 만다는 것이다.

보편적 복지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쪽에선 현재 시행 중인 저소득층 무상급식 지원을 받는 학생들이 가난이라는 낙인 효과로 인해 성장 과정에서 심각한 문제를 갖게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정당화되기 어렵다. 가난은 낙인의 대상이 될 수 없을 뿐 아니라 자신의 책임이 아닌 가난 때문에 무상급식을 받는 학생들이 낙인 효과로 가난하게 된다는 것은 설득력이 약하다.

물론 어린 학생이 무상급식을 받는다는 사실을 부끄러워할 수는 있다.

하지만 그 부끄러움은 어른들이 숨겨줘야 할 부끄러움이 아니다.

무상급식을 부끄러워한다면 전혀 그럴 필요가 없다는 점을 일깨워줘야 하고 실제로 급식 여부가 공개되지 않도록 하면서 낙인효과를 없앨 방법은 많다.

더 근본적으로는 가난한 가정에 태어나 국가로부터 무상급식 혜택을 받는 것을 부끄러워할 게 아니라 따뜻한 이웃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감사하고,열심히 노력해 가난에서 벗어나라는 격려로 받아들이도록 유도해야 한다.

⊙ 복지 포퓰리즘 경계해야

보편적 복지는 많은 취약점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우리 사회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가능성이 크다. 내년에 총선과 대통령 선거가 예정돼 있어서 특히 그렇다.

보편적 복지는 종종 '복지 포퓰리즘'으로 둔갑한다. 포퓰리즘은 일반 대중의 인기에 영합하는 정책을 앞세워 권력을 가지려는 정치행태를 일컫는다.

위에서 살펴본 대로 보편적 복지는 왠지 좋은 취지인 것 같아 쉽게 공감을 이끌어내는 특징이 있다.

하지만 정치인들이 내놓는 포퓰리즘 정책은 그들에게 표를 던진 유권자들에게 비수가 돼 돌아온다.

시장경제 원리를 무시한 선심성 정책의 비용은 결국 모든 국민이 지급해야 한다.

그런 부담은 결국 젊은 세대인 다음 세대가 갚아야 한다.

이런 점들을 감안하면 우리는 실현 불가능한 이상인 보편적 복지보다는 꼭 필요한 사람에게만 국가가 복지를 보장하는 선택적 복지와 그것에 기반한 자유주의를 우리 사회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한 원리로 삼아야 한다.

자유주의는 보편적 복지가 근거를 둔 사회적 기본권 대신에 개인의 자유를,사회적 책임 대신에 스스로의 책임을 중시한다.

개인의 자유와 스스로의 책임이 자유주의의 철학적 기반인 것이다.

자유주의가 지속 가능한 사회발전 원리라는 것을 입증하는 역사적 사례는 매우 많다.

제2차 세계대전의 패전국인 독일이 라인강의 기적을 일군 것이나 1980년대 미국 레이거노믹스(레이건 대통령의 시장중심적 경제정책)와 영국 대처리즘(대처 총리의 경제 활성화 정책)이 큰 성과를 올린 것이 대표적이다.

장경영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longr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