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무-채권자 '富재분배'도 초래
[Cover Story] 화폐가치 떨어져 사회적 비용 증가
인플레이션의 정도가 매우 심해서 화폐가치가 폭락하는 경우를 가리켜 초(超)인플레이션이라고 한다.

일반적으로연 100%가 넘는 인플레이션이 이에 해당한다.

“초인플레이션이란 점심을 먹기전에 그 값을 지불하는 것이 먹은 후에 내는 것보다 쌀 때를 의미한다”는말이있을정도다.

초인플레이션은 정부가 재정적자를 메우기 위해 화폐를 마구 발행해 생기는 경우가 많다.

경제규모가 커짐에 따라 물가가 완만하게 상승하는 것은 어느정도 바람직하다.

하지만 물가가 급등락하는 것은 좋지않다.

물가 급등은 국민의 사회적 후생을 감소 시키며, 물가 급락은 심각한 디플레이션(물가 하락 속 수요 감소)이 원인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 인플레이션은 왜 나쁠까

⊙ 인플레이션은 사회적 비용 발생시켜

역사상 가장 끔찍한 초인플레이션으론 1차 세계대전 후 독일 바이마르공화국의 사례가 꼽힌다.

독일 정부는 연합국들에 패전 배상금을 지급하기 위해 돈을 마구 찍었고,이로 인해 돈 가치가 떨어져 노동자들이 하루치 품삯을 손수레에 가득 싣고 집으로 돌아가야 할 정도였다.

벽지 대신 돈으로 도배를 하는 집도 많았다.

우리나라에서는 조선 후기 당백전이란 화폐가 초인플레이션을 일으켰다.

대원군이 경복궁 중건과 국방비 조달을 위해 발행한 당백전은 상평통보보다 6배 정도 금속 함량이 많았지만 명목가치는 20배나 됐다.

대원군은 당백전 발행차액을 재정자금으로 활용하려 했지만,그 결과는 쌀 가격이 1~2년 사이에 6배로 폭등하는 등의 큰 혼란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극단적인 상황이 아니더라도 물가 급등은 심각한 경제문제로 인식된다.

물가가 오르면 같은 돈으로 살 수 있는 재화나 서비스 양이 그만큼 줄어들어 서민들의 생활은 그만큼 어려워지게 된다.

경제학자들은 인플레이션의 영향과 관련,인플레이션이 예상된 경우와 예상되지 않은 경우로 나눠 설명한다.

먼저 예상된 인플레이션은 여러가지 사회적 비용을 발생시킨다.

구두창 비용(shoeleather costs)이 가장 대표적이다. 인플레이션이 예상되면 명목이자율이 상승한다.

대신 지갑 속 화폐의 가치는 떨어진다. 따라서 사람들은 전보다 현금을 조금만 보유하려고 하고,은행에 더 자주 간다. 예를 들어 한달에 한번 200만원을 인출하는 대신 매주 50만원씩 돈을 찾는 것이다.

은행에 맡겨두는 돈을 최대한 늘려 이자가 많이 붙게 하고,보유현금을 줄여 화폐 가치 하락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다.

구두창비용은 은행에 자주 갈수록 구두창이 더 빨리 닳는다는 비유적 표현이다.

실질적인 의미는 현금 보유를 줄이기 위해서 시간을 투자하고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업들은 제품 가격을 자주 바꾸지 않는다. 가격을 조정하는 데 비용이 들기 때문이다.

이를 메뉴 비용(menu costs)이라고 한다. 음식점에서 새로운 메뉴를 인쇄하는 데 드는 비용에서 유래된 말이다.

메뉴 비용에는 새로운 가격과 제품목록을 인쇄하는 비용,인쇄된 새 메뉴를 대리점과 소비자들에게 발송하는 비용,새로운 가격을 광고하는 비용,새로운 가격을 결정하는 비용,가격조정에 대한 소비자들의 불만에 대응하는 비용 등이 포함된다.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면 기업이 부담해야 하는 메뉴 비용이 증가한다.

인플레이션은 세금의 역할도 할 수 있다. 화폐 발행으로 인해 정부의 재정적자가 1조원 생겼다고 생각해보자.

이때 물가가 두 배로 뛰었다면 정부가 갚아야 하는 1조원의 실질가치는 5000억원으로 감소할 것이다.

이는 정부가 5000억원의 세금을 거둬간 것과 같다고 해서 이를 인플레이션 조세(inflation tax)라고 부른다.

⊙ 부의 자의적인 재분배 일어나

예상치 못한 인플레이션은 사람들의 능력과 무관하게 부(wealth)를 재분배한다.

예를 들어 어떤 학생이 대학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은행에서 이자율 7%로 2000만원을 대출받았다고 하자.

이 돈에 10년 동안 매년 7%의 복리이자가 붙으면 원리금 상환액은 4000만원이 된다.

그런데 10년 후 4000만원의 실질가치는 인플레이션율에 좌우된다.

만약 이 학생이 운이 좋아서 초인플레이션이 발생하면 푼돈을 가지고도 4000만원을 갚을 수 있다.

반대로 디플레이션이 발생하면 원리금 상환액 4000만원의 실질가치는 예상한 것보다 훨씬 커진다.

결국 예상치 못한 물가변동이 채무자(학생)와 채권자(은행)의 부를 재분배하는 것이다.

초인플레이션이 발생하면 채무자가 유리하고,디플레이션은 채권자를 유리하게 만든다.

채무자는 자금을 필요로 하는 자금 수요자이며,경제주체 중에선 기업과 정부가 채무자에 해당한다.

예상치 못한 인플레이션이 빈번하게 발생하면 채무자가 유리한 입장에 서게 되므로 채무자인 기업의 부채의존도는 증가하는 경향을 보일 것이다.

정부도 국공채 발행을 통해 재원을 조달하려는 욕구가 더 커질 것이다. 반면 채권자이며 자금 공급자인 가계는 손해를 보는 경우가 늘어날 것이다.

장경영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longrun@hankyung.com

---------------------------------------------------------

물가 상승은 수출 감소·수입 증가 원인될 수도

물가 상승은 수출을 감소시킨다는 점에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물가 상승이 수출에 미치는 영향은 자본 이동을 고려할 것인지에 따라 두 가지 경우로 나눠 생각해볼 수 있다.

먼저 자본 이동을 고려하지 않는 경우를 보자.

원 · 달러 환율이 1000원일 때 국내 물가가 상승하면서 100만원이던 태블릿PC가 120만원에 판매된다면,태블릿PC의 수출가격은 1000달러에서 1200달러로 상승한다.

반면 국내 물가가 상승해도 수입품의 달러 가격과 환율은 변하지 않기 때문에 국내 시장에서 수입품의 가격 경쟁력이 높아진다.

예를 들어 국내 물가가 오르기 전과 후에 수입 태블릿PC의 국내 가격이 110만원으로 일정했다면 사람들은 가격이 오른 국산 태블릿PC 대신 수입품을 사려고 할 것이다.

결국 국내 물가 상승은 환율이 일정한 상태에서 수출 감소 · 수입 증가로 이어진다.

이제 자본 이동을 고려한 경우를 살펴보자.

물가 상승은 이자율 변화와 자본 이동을 통해 환율을 변화시킬 수 있다.

물가가 상승하면 전에는 하루 1만원이면 생활할 수 있었지만 이젠 1만2000원이 필요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2000원만큼 더 많은 화폐를 보유하려 하고,이 같은 화폐 수요 증가로 인해 화폐의 가격인 이자율이 상승한다.

국내 이자율이 올라간다는 것은 해외 자산에 비해 국내 자산에 투자했을 경우 더많은 수익을 올릴 수 있다는 의미다. 따라서 해외 자금이 국내로 유입된다.

해외 자금의 유입은 외환시장에서 달러 공급을 증가시켜 원 · 달러 환율이 하락한다.

환율 하락은 수출품의 가격 상승과 수입품의 가격 하락을 통해 수출 감소 · 수입 증가로 이어진다.

여기서 한 가지 주의할 것은 물가 상승으로 인한 화폐가치 하락과 환율 상승에 따른 원화의 대외 교환가치 하락을 혼동하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다.

물가가 상승하면 화폐의 구매력이 떨어진다.

물가가 10% 상승하면 그전에 100만원으로 살 수 있었던 재화를 얻는 데 110만원이 필요한 것이다.

한편 대외 거래에서 화폐가치는 1달러와 교환되는 원화의 양인 원 · 달러 환율로 나타낸다.

환율이 상승했다면 달러에 비해 원화 가치가 떨어진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대외 거래에서 원화 가치가 하락한 것이지,원화의 국내 구매력이 하락한 것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