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유통점 규제, 외국에선…
[Cover Story] 포퓰리즘 보살핌에 길든'약자'들 경쟁력 못 키우면 소비자에 외면당해
대형 유통사와 영세상인(중소 유통점) 간 갈등은 미국 일본 유럽 등에서도 논란을 빚었다.

이들 선진국에서도 한때 대형 유통사를 규제해 중소 유통점을 보호했다.

하지만 고용 감소와 물가 상승 등의 폐해가 부각돼 이제는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그런 규제는 사라졌다.

규제가 철폐된 후엔 물가는 떨어지고 일자리는 늘어나는 효과가 나타났다.

대형 유통사 규제에 대한 선진국의 사례를 살펴보자.

⊙ 미국에선 한때 포퓰리즘적 조치로 대형 유통점 규제

미국에선 지금으로부터 약 90년이나 전인 1920~1940년 대형 유통점 저지 운동(anti-chain movement)이 활발했다.

1929년엔 미국의 400개 이상 도시에서 대형 유통점 확산을 저지하기 위한 단체가 결성됐고,수많은 주에서 대형 유통점의 등장을 막기 위한 법률이 제정됐다.

이는 당시 공황이 발생하면서 크게 높아진 기업들에 대한 일반인의 분노에 편승한 포퓰리즘적 조치였다.

당시엔 큰 것(bigness)에 대한 반감이 팽배했던 상황이라서 대형 유통점 저지 운동은 많은 미국인의 호응을 이끌어냈고,이 덕분에 중소 유통업자들이 이익을 얻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대형 유통점을 원하는 소비자들이 늘어나 대형 유통점 저지 운동은 힘을 잃었다.

현재 미국엔 연방정부 차원의 대형 유통점 규제 법이 없다.

교통 혼잡,소음 등으로부터 생활환경을 보존하기 위해 대형 유통점을 규제하는 지방정부의 조례가 있을 뿐이다.

이런 조례는 중소 유통점 보호가 목적이 아니라 환경이나 도로교통 등의 목적으로 시행한다.

⊙ 일본 정치인들은 정치적 목적으로 대형 유통점 규제

일본은 공공정책을 통해 중소 유통점의 이익을 보호하는 게 유별났던 나라다.

1937년 이후 일본 정부는 정치인들의 요구에 부응해 지속적으로 대형 유통점을 규제했다.

특히 자유민주당은 전통적으로 정치적 지지 세력인 중소 유통점(특히 골목가게)을 보호하는 데 힘을 썼다.

일본의 대형 유통점 규제는 1973년 제정된 '대규모 소매점포법(대점법)'으로 정점에 달했다.

이 법에 따르면 매장 면적 1500㎡ 이상의 유통점을 만들 경우 자세한 사업 계획을 제출하고,중소 유통점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판정받으면 사업 계획을 조정해야 했다.

이로 인해 사업 계획 신고에서 실제 점포 개장까지 10년이 걸리는 경우가 있을 정도로 많은 문제점이 생겼다.

대점법은 1980년대 중반 이후 미국 등이 숨겨진 무역장벽이라고 지적하고,소비자들과 대형 유통점들의 불만이 커지면서 1998년 폐지됐다.

일본은 대점법을 폐지하면서 중소 유통점 보호가 아니라 환경 교통 등의 문제를 줄이기 위한 법을 새로 제정했다.

⊙ 대형 유통점 규제 폐지 후 물가 하락 · 일자리 증가

유럽 국가들도 20세기 초 소규모 유통점을 보호하기 위해 대형 유통점을 규제하는 법을 만들었지만,지금은 대부분 폐지했다.

미국 일본 유럽 등에 존재했던 대형 유통점 규제는 필연적으로 인위적인 진입장벽을 만들어 유통부문에서 경쟁이 사라지게 했고 그로 인해 소비자들의 혜택이 줄어들었다.

하지만 규제를 없앤 뒤엔 물가 하락과 일자리 증가라는 효과가 나타났다.

미국의 경우 대형 유통사인 월마트가 시장에 진출하면서 효과가 두드러졌다. 2004년 미국 모든 가구의 연평균 소득은 5만4453달러,연평균 소비는 4만3395달러였다.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당시 월마트의 시장진출로 소비자물가지수(CPI)가 3.1% 하락했다.

모든 소비자들이 연평균 1345달러를 절약하게 된 것이다.

이는 연평균 소득의 2.5%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소득수준 하위 20% 계층은 CPI 하락으로 가구당 553달러를 절약했다.

연평균 소득의 6.0%에 해당하는 액수다.

소득수준 상위 20% 계층은 연평균 소득의 2.0%인 2595달러를 절약했다.

저소득층이 더 큰 혜택을 누린 셈이다.

또 월마트의 시장진출로 기존 유통점은 일자리가 없어졌지만 월마트는 그보다 더 많은 일자리를 창출했다.

일본에서도 대점법 폐지 이후 비슷한 효과가 나타났다.

물가는 낮아지고 고용은 증가한 것이다.

미국 일본 등 선진국은 새로운 유통 업태의 등장으로 경쟁력이 떨어지는 기존 유통업을 한때 보호했지만 결국 이러한 보호정책을 철폐함으로써 일반 국민의 후생을 증가시킨 것이다.

장경영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longr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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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세하다는 이유만으로 보호하면 오히려 경제 발전에 역효과
[Cover Story] 포퓰리즘 보살핌에 길든'약자'들 경쟁력 못 키우면 소비자에 외면당해
대형 유통점과 영세상인(중소 유통점) 간 갈등은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사례다.

우리나라에선 그동안 대기업에 비해 상대적 약자인 중소기업을 보호하고 육성하기 위해 다양한 정책이 시행돼 왔다.

그러나 중소기업 보호 정책이 경쟁을 제한함으로써 오히려 경제 발전에 역효과를 가져온 사례도 없지 않다.

몇 년 전까지 시행됐던 중소기업 고유업종 제도가 대표적인 사례다.

이 제도는 중소기업에 적합하다고 판단되는 업종을 중소기업 고유업종으로 지정해 이 분야엔 원칙적으로 대기업의 진출을 금지함으로써 경쟁을 제한했다.

1979년 23개 업종을 중소기업 고유업종으로 지정한 이래 1989년엔 237개까지 그 수가 불어났다.

이후 고유업종 수는 꾸준히 감소해 2001년엔 45개로 줄었다.

당시 중소기업 고유업종은 광택제 양곡도정업 안경테 재생타이어 타월 골판지 아스콘 고무장갑 국수 두부 우산 안테나 등이었다.

중소기업 고유업종 제도는 중소기업의 안정적인 성장에 기여하기보다 여러 가지 문제점을 야기했다.

경쟁을 제한함으로써 기술과 품질이 떨어지고,가격 담합 등의 부작용이 발생했으며 해당 분야의 국제경쟁력이 약화된 것이다.

이러한 부작용이 노출되자 이 제도는 2006년 폐지됐다.

최근 정부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동반성장이라는 목표를 내세우고 있다.

우리 경제의 지속가능한 성장동력과 경쟁력 확보를 위해서는 대 · 중소기업 동반성장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이런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규제와 보호로 경쟁을 제한해서는 곤란하다.

특히 새로운 기술의 개발로 혁신적인 제품이 등장했을 경우 경쟁력이 떨어지는 기존 업종의 사업자를 단순히 영세하다는 이유만으로 보호한다면 기술 개발이나 혁신의 유인이 없어져 경제 발전에 역행하는 결과를 가져 올 수 있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롯데마트의 '통큰 치킨'도 이런 입장에서 접근할 수 있다.

롯데가 새로운 기술로 품질을 높이고 가격을 낮췄다면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하지만 경쟁업체를 도태시켜 종국적으로 시장을 독점하려고 원가 이하로 판매한다면 문제가 달라진다.

이는 공정거래 당국에서 판단하게 될 것이다.

요컨대 경쟁력을 잃어가는 기업에 대해서는 보호 정책으로 생존을 보장해 주기보다는 다른 분야로 진출해 새로운 도전에 나설 수 있게 지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