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역은 국민 삶의 질을 향상시켜…'세계화는 자본의 수탈,빈곤의 확대가 아니다'
[Cover Story] 자유무역은 어떻게 인류를 부유하게 만들었나
한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은 21세기 국가 생존전략 차원에서 자유무역협정(FTA · Free Trade Agreement) 체결에 적극적이다.

주요국과 FTA를 맺지 못하면 자국산 제품의 수출경쟁력이 떨어져 경제에 악영향이 우려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각에선 FTA와 자유무역은 선진국이 후진국을 착취하는 수단일 뿐이라는 목소리도 여전한 실정이다. 자유무역은 과연 약일까 독일까.

⊙ '제로섬 사고'의 함정

셰익스피어의 희곡인 '베니스의 상인'에서 상인 안토니오와 결혼하게 되는 포셔는 "거래는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 모두를 축복한다"고 노래한다.

그녀에게 자유거래(무역)는 양측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일종의 은총이었다.

그러나 현실에선 포셔처럼 자유거래를 축복으로 느끼는 사람은 드물다.

고대 그리스의 시인 호메로스나 중세 이탈리아의 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종교개혁가인 마르틴 루터는 모두 상업과 고리대금업을 죄악으로 보았다.

영화 '월 스트리트'에서 배우 마이클 더글라스가 연기하는 기업사냥꾼 고든 게코는 "(자유거래는) 누군가 승리하면 누군가 패배하는 제로섬 게임"이라고 외친다.

"자유거래는 이기심을 필요로 하고 이를 조장한다"는 말도 회자된다.

이런 주장의 뒤에는 상업은 부도덕하고 재물은 더럽다는 생각이 깔려 있다.

이에 대해 세계적 과학저술가인 매트 리들리는 문명비평서인 '이성적 낙관주의자'에서 "세상을 한쪽이 이익을 보면 다른 한쪽은 손해를 보는 제로섬으로 본 데 따른 오류"라고 지적한다.

석기시대 이후 이뤄진 대부분의 거래에서 양측 모두에 도움이 되는 사례가 드물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르네상스와 근대 이후 자유거래가 "상업이 있는 곳은 어디나 사람들이 너그러웠다"는,'법의 정신'의 저자 몽테스키외의 얘기처럼 서로에게 윈윈인 형태로 발전했는데도 말이다.

또다른 계몽사상가인 볼테르는 "다른 경우라면 잘못된 신을 믿는다고 서로 죽이려 했을 사람들이 런던의 거래소 객장에서 만났을 때는 서로를 정중하게 대했다"고 썼으며,데이비드 흄은 "상업은 자유에 상당히 유리하며 자유주의 정부를 창출하지는 못하더라도 이를 유지시키는 자연적 경향이 있다"고 주장했다.

리들리는 따라서 "상업(자유거래)은 자유와 복지,번영을 증진시키며 중세의 피렌체나 베네치아처럼 상업이 번성하는 곳에서 인간의 창의성이 꽃핀다"고 결론을 지었다.

⊙ 자유무역의 효과
[Cover Story] 자유무역은 어떻게 인류를 부유하게 만들었나
자유무역은 어떻게 경제를 살찌우는 것일까.

그 비결은 첫째 자유무역이 유한한 자원의 적절한 배분을 통해 경제의 효율성을 높이고,둘째 비교우위에 따른 선택과 집중(국제분업)에 의해 경제성장을 촉진시킨다는 데 있다.

이는 2차 세계대전 이후의 세계경제 흐름을 보면 실증적으로 알 수 있다.

자유무역 촉진을 위해 1947년 체결된 GATT(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 이후 관세가 20~30%에서 1995년 5.2%로 낮아짐에 따라 세계 각국의 상품 수출은 연평균 6.2%,GDP(국내총생산)는 3.9%씩 늘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세계교역이 10% 증가하면 GDP는 4% 늘게 된다.

자유무역과 성장은 정비례 관계에 있는 것이다.

1930년대 대공황 시절 미국 의회가 자국 기업 보호를 위해 수입상품에 대한 관세를 평균 59%로 높인 스무트-할리법이 오히려 불황을 가속화하는 촉매가 됐다는 역사적 사실도 있다.

이 법은 전 세계에 연쇄적으로 보호무역주의를 불러일으켰고 그 영향으로 국제무역이 1929~1932년간 63% 감소,세계적인 공황을 초래했다.

자유무역이 성장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는 최근 무섭게 발전하는 신흥국 대표주자인 중국과 인도의 사례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중국과 인도는 성장은 더디고 국민 삶의 질은 한참 뒤떨어진 국가였다.

서로 비슷했던 두 나라는 1978년 중국의 지도자 덩샤오핑의 개혁 · 개방 정책 도입 이후 서로 다른 길을 가기 시작했다.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를 잘 잡으면 된다'는 덩샤오핑의 흑묘백묘론은 중국을 자유무역과 수출 확대를 통한 경제개발로 이끌었으며,30년이 지난 지금 미국과 맞서는 G2(주요 2개국)로 부상하게 만드는 원동력이 됐다.

이에 비해 2차 세계대전 이후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인도의 초대 총리 자와할랄 네루는 자유무역과 개방이 아닌 소련식 통제경제와 쇄국을 선택한다.

그 결과는 1950~1990년에 이르는 장기간의 경제 정체였다. 인도가 최근의 고도성장을 이룩하게 된 것은 1990년대 초 개방 이후였다.

자유무역이 경제를 성장시키고 국민 삶의 질을 높인 또다른 대표적 사례는 대한민국이다. 한국은 1960년대만 해도 필리핀보다 못사는 나라였다.

하지만 현재 한국의 1인당 소득은 필리핀의 8배를 넘어선다. 대외개방과 자유무역을 통해 경제를 발전시킨 덕분이다.

1964년 1억달러에 불과했던 우리 수출은 올해 그 4000배인 4000억달러에 이른다. 수입을 더한 전체 무역 규모는 1조달러를 넘보고 있다.

1980년대만 해도 한국에서 바나나는 사치품이었지만 1991년 시장개방으로 수입이 늘고 가격이 떨어지면서 이제 바나나는 누구나 사먹을 수 있는 과일이 됐다.

또 2004년 칠레와 FTA 체결 이후 겨울철에도 포도를 싸게 즐길 수 있게 됐으며 칠레산 포도주 수입으로 소비자 선택의 폭이 넓어졌다.

국산 자동차와 전자제품의 칠레 수출도 늘어나 양국 간 교역은 매년 평균 22.5% 증가,FTA 발효 이전보다 3.4배 확대됐다.

이에 비해 자립경제를 내걸고 빗장을 꽁꽁 걸어닫았던 북한은 2015년까지 경제정책 목표가 '쌀밥에 쇠고기 국'인 실정이다.

⊙ 세계화는 빈곤의 확대가 아니다

"세계화,글로벌라이제이션(Globalization)은 전 세계를 하나의 국가처럼 통합하자는 얘기다.

만약 이러한 체제가 이루어진다면 선진국은 후진국의 자원과 노동력을 착취해 그들의 배만 불리게 될 것이다.

선진국이 부르짖는 세계화 논리는 경제뿐만 아니라 정치,사회,문화의 각 방면을 종속의 구조로 만들어 개발도상국들의 정치체계와 문화를 뿌리째 흔들 것이다. "

한 인터넷 카페의 글이다.

이 주장대로라면 자유무역으로 대변되는 세계화는 부자 나라만을 위한 것으로 빈부격차를 확대하고 문화적 다양성을 말살시킬 따름이다.

이들에게 세계화는 부자 나라를 더욱 부유하게 만들고 가난한 나라는 더욱 가난하게 하는,선진국이 후진국을 수탈하는 이데올로기일 뿐이다.

이러한 논리를 펴는 이론을 종속이론이라고 부르는데 종속이론은 2차 세계대전 이후 남미 국가들의 사례를 들어 한때 유행한 적이 있으나 현실 설명력이 떨어져 이제 이를 믿는 경제학자는 거의 없다.

특히 한국을 비롯해 대만 홍콩 중국 등의 눈부신 경제개발 사례는 자유무역이 국민 삶의 질을 높이고 문화적 다양성을 확대한다는 사실을 웅변으로 말해준다.

많은 아프리카국가들이 풍요롭지 못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은 자무유역때문이 아니라 낮은 교육열과 사회 지도층의 부정부패 등 내부적인 이유때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강현철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hc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