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짜는 없다' 는 명제 잊지 말아야

[Cover Story] 과잉복지 · 정부실패가 경제위기 초래


17세기 유명한 네덜란드의 튤립 투기 사건에서부터 1930년대의 대공황,최근의 미국발 글로벌 금융위기에 이르기까지 세계경제엔 수많은 위기가 발생했다.

왜 이처럼 위기가 반복되는 것일까. 대형 경제위기는 시대별 국가별로 형태가 다양하지만 본질은 같다고 할 수 있다.

그건 '인간의 탐욕,정부의 실패,법 · 제도의 미비'라는 3박자가 어울려 빚어낸,거품(버블)의 형성과 붕괴 과정이라는 점이다.

⊙ 위기의 공통 패턴

2008년 9월 미국의 거대 투자은행(IB)인 리먼 브러더스의 파산으로 본격화된 글로벌 금융위기의 배후에는 인간의 어리석은 욕심이 자리잡고 있었다.

(이는 합리적 인간의 이기심과는 다르다) 2000년 들어 IT(정보기술) 버블의 붕괴 조짐이 나타나고 2001년 9 · 11 테러가 발생하자 그린스펀 전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은 기준금리를 공격적으로 내리기 시작한다.

금리를 낮춰 소비와 투자를 북돋움으로써 경기 급랭을 막아보자는 것이었다.

FRB는 연 5.25%에 달했던 기준금리를 2003년 6월까지 2년여에 걸쳐 13차례나 인하,사상 최저수준인 1.0%까지 떨어뜨렸다.

그 덕분에 미국 경제는 침체를 면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늘막에선 과도한 저금리의 후유증이 자라고 있었다.

사람들은 너도나도 금융사로부터 값싼 이자로 돈을 빌려 닥치는 대로 부동산을 사들였다.

2000~2006년 사이 시중에 풀린 주택담보대출(모기지)은 10조달러를 넘어섰으며 주택 가격은 90% 뛰었다.

씨티은행이나 뱅크오브아메리카(BOA) 같은 거대 은행은 물론 모기지 전문업체인 뉴센추리,컨트리 와이드 등은 상환능력이 없는 저신용자에게까지 돈을 빌려주는 등 부동산 대출에 혈안이 됐다.

투자와 자금중개로 먹고 사는 리먼이나 골드만삭스와 같은 투자은행들도 앞다퉈 대규모 자금을 빌려 투기에 나섰다.

투자은행들은 나아가 부동산대출자금을 재활용하는 방법을 고안해냈다.

부동산대출채권을 담보로 자산담보부증권(MBS)이나 부채담보부증권(CDO)이라는 새로운 파생상품을 만들어 팔아 자금을 모집,또 다시 투기에 나선 것이다.

이들 파생상품은 주식처럼 유형의 시장(증권거래소)에서 매매되는 게 아니어서 누가 사고 누가 팔았는지도,전체 거래 규모가 얼마나 되는지도 모른채 대규모로 거래됐다.

언제 부도가 날지 모르는 위험성이 높은 파생상품에 대한 정부의 규제는 전무했다.

하지만 봄날은 오래가지 않았다. 2006~2007년 미국의 부동산 가격이 하락세로 돌아서면서 위기는 현실화됐다.

부동산 가격이 급락하자 가장 먼저 서브프라임(비우량) 모기지를 얻어 집을 산 사람들이 휘청거렸으며,이어 모기지를 대출해주고 파생상품을 판매한 은행들이 타격을 받았다.

결국 리먼이 파산하고 세계적인 금융사인 베어스턴스와 메릴린치는 주인이 바뀌는 수모를 겪었다.

씨티 골드만삭스 BOA AIG 도이체방크 등 내로라하는 금융사들도 부실채권 급증으로 길고 긴 어둠의 터널을 지나야 했다.

△'대박'만을 쫓는 인간의 탐욕과 과소비 △초저금리로 탐욕을 부추긴 정부의 실패 △금융사의 무분별한 투기를 조장한 적절한 규제의 미비 등이 위기의 원인이었던 것이다.

1930년대 대공황,1970년대 이후 되풀이돼온 남미의 경제 위기,1980년대 후반에서 1990년대 초에 걸친 미국의 저축대부(S&L) 조합 파산,1994년 멕시코 위기,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1998년 러시아 국가부도 위기의 배후에는 예외없이 같은 이유가 자리잡고 있다.

⊙ 과잉 복지의 함정

이른바 '돼지들(PIGS · 포르투갈 아일랜드 · 이탈리아 그리스 스페인)'로 불리는 유럽의 재정위기는 과잉 복지,분수에 넘치는 과소비가 경제위기를 불러일으킨 대표적 사례로 꼽을 수 있다.

한국 싱가포르 등 고성장국인 '아시아의 호랑이'에 빗대 '켈틱 호랑이'로 불리기도 했던 아일랜드는 그리스에 이어 EU(유럽연합)와 IMF(국제통화기금)에 구제금융을 신청하지 않을 수 없는 신세로 전락했다.

PIGS 국가들의 공통된 특징은 △정부의 지출(세출)이 수입(세입)보다 많은 만성적인 재정적자국이고 △나라 빚(국가채무)이 국내총생산(GDP)의 64~124%에 이를 정도로 막대하며 △외국과의 상품 · 서비스 거래에서도 역시 적자를 내는 경상수지 적자국이라는 점이다.

이처럼 만성적인 '부채 국가'가 된데는 정부의 대중영합(포퓰리즘)적 정책이 자리잡고 있다.

그리스와 이탈리아 정부가 사회보장비에 쓰는 돈은 GDP 대비 20.2%,18.8%(2008년 기준)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15.2%)을 훨씬 웃돌았다.

2000~2008년 동안 그리스와 스페인의 공공부문 고용인원은 13만7000명,7만7000명 늘었고 공공부문의 보수는 80.3%,100% 뛰었다.

그리스는 남자는 58세,여자는 55세인 정년퇴직 이후엔 평생 연금으로 생활한다.

생산연령 인구의 20%는 공공부문에 종사하며 공무원 봉급을 100이라고 할 경우 공기업은 110,민간기업은 70~80을 받는다.

공무원과 공기업의 보수가 민간보다 훨씬 많다.

공기업 직원은 회사 사정으로 조기 퇴직할 경우 근무연한과 상관없이 퇴직과 동시에 연금도 받는다.

과잉복지가 나라 살림을 결딴 낸 것이다.

땀흘려 일하지 않고선 개인이나 국가나 건전한 경제생활을 영위할 수 없는 법이다.

보험연구원의 이경희 전문연구위원은 "그리스 포르투갈 스페인 이탈리아 등 남유럽 4개국 국민이 퇴직 후 받는 공적연금은 퇴직 전 소득의 최저 54%에서 최고 96% 수준으로 OECD 회원국 평균보다 훨씬 높다"며 "정부가 매년 막대한 연금 적자를 보전해주면서 재정위기에 몰린 것"이라고 설명했다.

⊙북유럽의 교훈

그렇다면 위기를 예방할 수 있는 길은 없는 걸까.

최근의 유럽 재정위기에서 안전했던 북유럽 3국의 사례는 교훈을 준다.

노르웨이 핀란드 스웨덴 등 스칸디나비아 3국이 금융위기에서 비껴서 있을 수 있었던 것은 1990년대 초반에 겪었던 위기에서 적지않은 수업료를 치른 덕분이다.

이들 3국은 1980년대만 해도 경제가 호황을 누렸다.

부동산담보대출이 급증하면서 노르웨이와 핀란드의 부동산 가격은 1980년대에 4배,스웨덴은 9배가 뛰었다.

하지만 1990년대 들어 글로벌 경기가 꺾이고 구소련이 붕괴되면서 경제는 고꾸라졌다.

핀란드는 1990년부터 4년 연속 경제가 뒷걸음쳤으며,스웨덴은 1991~93년 마이너스 성장했다.

부동산 가격이 하락하면서 금융사들도 대거 부실화됐다.

핀란드의 주택가격은 39.8% 떨어졌으며 주가는 무려 85.9% 급락했다.

스웨덴과 노르웨이 주택가격도 20% 이상 떨어지고 주식시장은 70~77% 추락했다.

사정이 급박하자 핀란드 정부는 국내GDP의 17.2%,스웨덴은 6.1%,노르웨이는 2.6%에 달하는 세금을 투입해 부실 금융사를 청소했다.

이와 함께 스웨덴은 고령연금을 개혁하고 정부지출 상한제를 도입했으며, 핀란드는 아동 및 가정양육 수당을 삭감하는 등 재정적자 원인이었던 사회복지제도를 개혁했다.

이와 함께 스웨덴이 사회보험료 기여금을 포함한 국민부담률을 1985년 47.3%에서 49.1%로 올리는 등 세금은 더 거뒀다.

이들 3국은 그리스나 아일랜드와는 달리 제조업 육성에도 힘을 쏟았다.

사회복지비는 줄였지만 연구 · 개발(R&D)과 교육 등 미래를 위한 지출은 늘렸다.

스웨덴의 자동차나 핀란드의 정보통신 산업은 경상수지 흑자 기조를 유지시켜줬다.

과잉복지를 수술하고 미래 투자를 늘린 게 위기를 막는 길이었던 것이다.

강현철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hc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