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버블에 취해 흥청망청 대다가 국가부도 위기 몰린  '켈틱 타이거'
한때 금융과 제약,정보기술(IT) 산업의 고도성장을 바탕으로 '켈틱 타이거(Celtic tiger)'로 칭송됐던 아일랜드가 한없이 추락하고 있다.

오랜 고난의 역사 탓에 자신들을 "세상에서 가장 슬픈 민족"으로 여긴다는 아일랜드는 1990년대 이후 반짝 활황으로 지구촌 신흥 경제의 모범으로 높게 평가받았지만,글로벌 경제위기의 직격탄을 맞아 수난의 역사를 새로 쓰고 있다.

자존심 강한 민족답게 "외부 지원은 필요없고,경제주권을 포기하지 않겠다"고 수차례 공언했지만 결국 유럽연합(EU)과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 신청서를 내야 했다.

구제금융 신청 발표 이후에도 내정불안이 이어지면서 신용평가사인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가 국가신용등급을 다시 낮추는 등 어려움이 계속되고 있다.

경제 모범생으로 불리던 아일랜드가 이처럼 위기에 처한 이유는 무얼까.


⊙ 부동산 '몰빵 투자'로 거품붕괴 부메랑

1990년대 아일랜드는 낮은 실업률과 높은 경제성장률,수출 증대 등으로 급성장을 거듭했다.

컴퓨터 회사 델과 인텔, 제약회사 화이자 등 수많은 다국적 기업이 12.5%의 낮은 법인세율과 규제 완화 등의 이점을 활용해 아일랜드로 몰려들어 공장을 세웠다.

빈약한 농업국가였던 아일랜드는 오랫동안 '가난한 나라'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했다.

영국 식민지 시절 영국인들로부터 '하얀 깜둥이'로 멸시받았고,19세기 중엽엔 마름병으로 인한 흉작으로 주식인 감자 생산이 타격을 받으면서 800만 인구 중 100만명이 굶어죽고 200만명 이상이 살 길을 찾아 미국 등 외국으로 이민을 떠나야 했던 아픈 역사를 가졌다.

그랬던 아일랜드가 외자유치 정책의 효과에 힘입어 자신들을 식민지배했던 영국은 물론 유럽 최대 경제대국 독일보다 성장률이 앞서는 등 경제도약을 이어갔다.

당시 경제학자들은 앞다퉈 아일랜드를 '유럽의 빛나는 별'로 칭송했다.

그러나 과도한 성장은 결국 자산 거품을 만들어냈다.

아일랜드 역시 외국자금이 흘러 들어오면서 통화량이 너무 많이 풀렸고 부동산 가격이 들썩거렸다.

1999년 유로화의 등장은 아일랜드 부동산 거품을 더욱 부추겼다.

당시 유럽중앙은행(ECB)은 침체 상태에 있던 독일 경제 활성화를 위해 저금리 정책을 시행했고,이는 독일뿐 아니라 유로존 16개 회원국의 대출금리를 끌어내렸다.

경기가 호황이어서 금리를 올려야 마땅한 아일랜드는 유로 회원국으로서 거꾸로 금리를 내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2007년 아일랜드에선 인구가 13배나 되는 영국보다도 50%나 더 많은 막대한 주택이 건설됐다.

동유럽 등지로부터 이민자가 늘어 부동산 활황에 불을 붙였고,정부는 세수증대라는 단맛에 중독되면서 부동산 산업에 대한 의존도를 키웠다.

하지만 부동산 경기는 글로벌 금융위기로 직격탄을 맞았다. 미국발 위기 이후 아일랜드 부동산값이 급락하자 바로 은행 부실로 이어졌다.

주택가격은 2008년 대비 50~60% 폭락했고,건설업자들에게 빌려준 대출이 부실화되면서 은행들의 자금 조달은 갈수록 어려워졌다.

정부는 대규모 부실대출을 안고 있는 은행권에 450억유로 규모의 세금(공적자금)을 투입했다.

공적자금 출연으로 정부의 재정적자는 급증해 올해 국내총생산(GDP)의 32%를 차지할 정도로 커졌다. 국가 부도 위기에 몰린 것이다.

"처음엔 감자가,이번엔 유로화(유로존 저금리에 따른 부동산 버블)가 아일랜드 경제를 망가뜨렸다"(영국 일간 데일리메일)는 평가도 나온다.

문제는 자신의 실력보다 흥청망청한 것이 화근이었다.

경기 침체에 따른 세수의 급격한 감소로 나라살림(재정)은 적자를 메우기도 힘든 상황이다.

조세 수입은 세출(정부 지출)에 비해 엄청나게 부족해 그 차이가 무려 GDP의 12% 수준에 이른다.

13%가 넘는 높은 실업률도 큰 걱정거리다.

제조업 육성에 소홀했던 점도 위기 극복을 어렵게 하고 있다. 한때 아일랜드를 이끌었던 IT 산업은 최근 다국적 기업들이 임금이 더 싼 인도 등으로 빠르게 빠져 나가면서 흔들리고 있다.

현재 아일랜드는 19세기 감자 기근 이래 최대 규모의 인력 유출 위기에 직면했다.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는 "건설경기 하강으로 수년째 실업 상태인 배관공,전기공,목수 등 건설 관련 전문직을 중심으로 해외 취업을 시도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며 "고실업으로 인해 젊은층은 처음부터 해외 취업을 노리고 있다"고 전했다.

제조업이 적었고 자국기업보다는 외국기업이 많았던 것도 위기시의 취약성을 드러냈다.

아일랜드 안팎에선 이처럼 경제를 망치고 EU와 IMF 구제금융을 받아야 할 처지로 전락한 데 대해 정부를 비난하는 목소리가 거세다.

특히 적절한 리스크 관리 없이 부동산대출을 해줘 금융사들을 망하게 한 금융인들에 대한 책임론이 거세게 일고 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데이비드 드럼 전 앵글로아이리시 은행장과 유진 시히 전 AIB 은행장 등 5명의 금융인을 '경제위기 5적'으로 지목했다.

⊙ 구제금융을 수치로 느끼는 자존심 강한 민족
[Cover Story] 버블에 취해 흥청망청 대다가 국가부도 위기 몰린  '켈틱 타이거'
아일랜드가 구제금융 신청을 결정하기까지 망설이면서 고민을 거듭해왔던 건 수난의 역사와 관련이 깊다.

구제금융 결정 직후 야당의 총리 사퇴 요구가 거세지며 아일랜드 정정이 불안해지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수많은 외세의 침입으로 수난을 겪은 아일랜드 국민은 독립과 주권에 대해 다른 나라보다 강한 집착과 자부심을 갖고 있다.

오랜 투쟁 끝에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쟁취했기 때문에 국민정서상 외부에 손을 벌리는 것을 수치로 여긴다.

EU와 IMF로부터 구제금융을 받으려면 여러 전제조건을 충족시켜야 하는데 이를 굴욕으로 여기는 분위기가 강한 것이다.

앞서 아일랜드는 이 같은 국민정서 탓에 유럽 통합의 시금석인 리스본조약(EU의 미니헌법)에 대한 국민투표도 2008년 6월 1차에서 부결시킨 뒤 지난해 10월 2차 투표에서 겨우 통과시키기도 했다.

하지만 이 같은 아일랜드의 행보를 두고 비합리적이라는 시각도 적지 않다.

아일랜드와 앙숙 관계인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는 "길 잃은 운전자가 '내비게이션을 켜라'는 부인의 충고를 끝까지 거부하는 격"이라고 꼬집기도 했다. 아일랜드로선 또다시 슬프고 우울한 역사의 한장을 더 써 나갈지,아니면 불굴의 극복사를 새로 그려나갈지 중요한 분기점에 서 있다.

김동욱 한국경제신문 기자 kimd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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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랜드는 왜 '켈틱 타이거'로 불렸나?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고속성장을 거듭하던 아일랜드 경제를 지칭하는 말이다.

모건스탠리가 아일랜드의 경이적인 경제성장을 두고 한국 대만 등 '아시아의 호랑이'에 빗대어 만든 표현으로,켈틱은 아일랜드 국민의 대부분이 켈트족인 데서 따왔다.

아일랜드는 1980년대까지만 해도 서유럽의 빈국으로서 노사분규가 끊이지 않았고,일자리가 없어 노동력이 해외로 빠져나가던 나라였다.

90년대 들어 아일랜드 정부가 규제 완화와 법인세 인하 등을 앞세워 해외 기업들을 적극 유치하면서 부자나라가 됐지만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부동산 거품 등이 꺼지면서 대표적인 경제 불안국으로 전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