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세이하 女축구 대표팀 FIFA 월드컵 우승원 동력은···
태극 소녀들이 열악한 현실과 무관심 속에서도 세계 축구를 제패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
'여자가 축구해서 뭐 하나'라는 주변의 차가운 시선에도 뽀얀 얼굴이 까매지도록 공을 차면서 웃음을 잃지 않는 '즐기는 축구'가 가장 큰 요인으로 꼽힌다.
'즐기는 축구'의 강점은 이번 대회에서 잇단 역전승으로 증명됐다. 나이지리아와의 8강전에서는 0-2로 밀리다가 6-5로 극적인 승리를 거뒀고,스페인과의 준결승에서도 0-1의 초반 열세를 이겨내고 2-1로 승리했다.
일본과의 결승전에서도 2-3으로 끌려가다 기어코 동점을 만들었고,승부차기로 국제축구연맹(FIFA)이 주최하는 월드컵 대회에서 한국 최초 우승이라는 금자탑을 일궈냈다.
대한축구협회 관계자는 "예전 세대들은 위기가 오면 겁을 먹고 소극적인 플레이를 했지만 이번 대표팀은 위기 속에서 오히려 축구를 더 즐기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즐기는 마음으로 '자율 미팅' 통해 경기력 향상
선수단 내 자율적인 분위기가 '즐기는 축구'의 경기 스타일을 만드는 데 한몫했다.
태극 소녀들은 조별리그 때부터 매 경기를 앞두고 다음 날 경기에서 서로의 역할을 미리 점검하는 자율 미팅 시간을 가졌다.
이 시간은 코치진의 지시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선수들이 감독과 코치진에게 요구해 생겨난 것이다.
미팅 시간에는 다음 경기를 전체적으로 어떻게 펼치는 것이 좋겠다는 이야기로 시작해 선수 개인별 위치 선정,패스 방법 등을 서로에게 가감없이 얘기한다.
결승전을 앞두고도 전날 밤 한 시간 정도 자율 미팅을 가졌고 경기 당일에도 30분간 최종 점검하는 마지막 미팅을 했다. 결승전을 앞둔 미팅이어서 다른 경기 때보다 한층 긴장된 모습이었지만 서로가 긴장 때문에 실수하지 말자고 다독이는 자리였다고 한다.
대표팀 관계자는 "성인팀은 자율적인 미팅 시간을 거의 갖지 않지만 이번 17세 이하 여자 대표팀은 경기를 앞두고 항상 즐기는 마음으로 자율 미팅을 가져왔다"고 말했다.
월드컵 우승컵에다 득점왕(골든부트),최우수상(골든볼)까지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하며 세계 축구의 '차세대 여제'로 떠오른 여민지 선수(17 · 함안대산고)는 '즐기는 축구'와 관련해 자신의 미니홈피에 이런 글을 남기기도 했다.
"천재는 노력하는 사람을 이길 수 없고 노력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을 이길 수 없다.
즐기는 것과 발전하는 것.내가 축구를 하는 두 가지 이유다.
잘하는 선수보다는 노력하는 성실한 선수가 될 겁니다. "
여민지 선수는 대회 전 중학교 시절부터 좋지 않았던 오른쪽 무릎 십자 인대를 크게 다쳐 월드컵 출전이 불투명했지만 특유의 집중력과 긍정적인 성격으로 당초 예상 회복 기간을 크게 단축시켜 의료진 등 주변을 놀라게 했다.
⊙재미있게 공을 차야 세계 정상의 기량이 가능
"축구는 이기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즐기려고 하는 것이다. "
17세 이하 여자 대표팀의 최덕주 감독이 선수들에게 항상 하는 말이다.
그는 '덕장'이라는 별명답게 그라운드에서 수비수끼리 손발이 맞지 않아 실수로 골을 내주거나 패스 미스를 연발해도 고함 한번 지르지 않았다.
선수들은 감독의 눈치를 살피기보다는 서로의 눈과 입을 바라보며 스스로 문제를 해결했다.
최 감독은 "선수들에게 윽박지르고 체벌을 가하는 방식은 한계가 있어요. 감독 눈치 보느라 주눅이 들면 창의적인 플레이가 나올 수 없죠.
이기기 위해 임기응변에 강한 선수가 아니라 축구를 즐기면서 기본기를 착실히 다지는 선수로 키워내야 합니다"라고 말한다.
이런 최 감독의 철학은 대한축구협회 기술 보고서인 'KFA 리포트'(2008년 8월)에 쓴 칼럼에도 잘 나타나 있다.
'한국 유소년 축구에서 욕설이나 체벌이 여전히 존재한다.
선수들은 경기 도중에도 감독이 소리를 지르면 깜짝 놀라며 부동자세로 멈춰 선다.
축구를 생각하고 상대와 우리 팀의 상황을 생각하고 우리 팀의 콤비네이션이나 움직임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감독이 무슨 말을 하는지 듣기에 바쁘다. '
최 감독은 "한국 축구가 세계 정상의 기량을 갖추기 위해서는 선수들이 유소년 시절부터 축구에 흥미를 느끼면서 재미있게 공을 차는 것이 최우선"이라고 주장한다.
이번 대회를 통해 여민지 선수가 부상을 딛고 성공적으로 부활하고,공격수로 뽑혔던 선수들이 수비수로 전환해 제 몫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최 감독이 '즐기는 축구'에 대한 신념으로 인내심을 갖고 선수들을 기다렸기 때문이다.
그는 결승전 승부차기를 앞두고도 "승부에 연연하지 말고 차고 싶은 데로 차라.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며 푸근한 아버지처럼 선수들을 다독였다.
⊙'전인적 청소년 스포츠'가 더욱 필요하다는 주장도
이번 대회에서 한국 청소년 스포츠가 큰 성과를 올렸지만,'학교 운동부'로 대표되는 국내 청소년 스포츠 환경의 문제점에 대한 지적은 여전하다.
대한축구협회는 지난 8월16일 상벌위원회를 열고 '2010 SBS 고교 클럽 챌린지리그'에서 K고등학교와 P고등학교가 승부 조작을 했다며 해당 학교의 축구팀 감독에게 무기한 자격정지의 중징계를 내렸다.
이처럼 성적 지상주의에 따른 비리뿐 아니라 폭력,학업능력 저하,상급학교 진학 비리 등 운동부 학생과 관련된 다양한 문제들이 자주 불거지고 있다.
이 때문에 '전인(全人)적 청소년 스포츠'라는 개념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전인적 청소년 스포츠는 경기 성적을 잘 내기 위한 경쟁에서 벗어나 지(智) · 덕(德) · 체(體)의 균형 있는 발달을 목표로 한다.
즉 청소년들이 단순히 뛰어난 운동 기량,학교 이름 알리기,상급학교 진학을 위해 운동하는 게 아니라 스포츠를 통해 자아 정체성을 찾고 더불어 사는 삶의 의미를 알게 되며 운동 자체의 재미를 느끼도록 하자는 것이다.
이를 위해선 경쟁을 중시하는 스포츠보다는 여가 및 교육 차원의 운동을 목표로 해야 하며 감독,교사,학부모에 의해 운영되는 청소년 스포츠가 학생 위주로 바뀌어야 한다.
김주완 한국경제신문 기자 kjwan@hankyung.com
'여자가 축구해서 뭐 하나'라는 주변의 차가운 시선에도 뽀얀 얼굴이 까매지도록 공을 차면서 웃음을 잃지 않는 '즐기는 축구'가 가장 큰 요인으로 꼽힌다.
'즐기는 축구'의 강점은 이번 대회에서 잇단 역전승으로 증명됐다. 나이지리아와의 8강전에서는 0-2로 밀리다가 6-5로 극적인 승리를 거뒀고,스페인과의 준결승에서도 0-1의 초반 열세를 이겨내고 2-1로 승리했다.
일본과의 결승전에서도 2-3으로 끌려가다 기어코 동점을 만들었고,승부차기로 국제축구연맹(FIFA)이 주최하는 월드컵 대회에서 한국 최초 우승이라는 금자탑을 일궈냈다.
대한축구협회 관계자는 "예전 세대들은 위기가 오면 겁을 먹고 소극적인 플레이를 했지만 이번 대표팀은 위기 속에서 오히려 축구를 더 즐기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즐기는 마음으로 '자율 미팅' 통해 경기력 향상
선수단 내 자율적인 분위기가 '즐기는 축구'의 경기 스타일을 만드는 데 한몫했다.
태극 소녀들은 조별리그 때부터 매 경기를 앞두고 다음 날 경기에서 서로의 역할을 미리 점검하는 자율 미팅 시간을 가졌다.
이 시간은 코치진의 지시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선수들이 감독과 코치진에게 요구해 생겨난 것이다.
미팅 시간에는 다음 경기를 전체적으로 어떻게 펼치는 것이 좋겠다는 이야기로 시작해 선수 개인별 위치 선정,패스 방법 등을 서로에게 가감없이 얘기한다.
결승전을 앞두고도 전날 밤 한 시간 정도 자율 미팅을 가졌고 경기 당일에도 30분간 최종 점검하는 마지막 미팅을 했다. 결승전을 앞둔 미팅이어서 다른 경기 때보다 한층 긴장된 모습이었지만 서로가 긴장 때문에 실수하지 말자고 다독이는 자리였다고 한다.
대표팀 관계자는 "성인팀은 자율적인 미팅 시간을 거의 갖지 않지만 이번 17세 이하 여자 대표팀은 경기를 앞두고 항상 즐기는 마음으로 자율 미팅을 가져왔다"고 말했다.
월드컵 우승컵에다 득점왕(골든부트),최우수상(골든볼)까지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하며 세계 축구의 '차세대 여제'로 떠오른 여민지 선수(17 · 함안대산고)는 '즐기는 축구'와 관련해 자신의 미니홈피에 이런 글을 남기기도 했다.
"천재는 노력하는 사람을 이길 수 없고 노력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을 이길 수 없다.
즐기는 것과 발전하는 것.내가 축구를 하는 두 가지 이유다.
잘하는 선수보다는 노력하는 성실한 선수가 될 겁니다. "
여민지 선수는 대회 전 중학교 시절부터 좋지 않았던 오른쪽 무릎 십자 인대를 크게 다쳐 월드컵 출전이 불투명했지만 특유의 집중력과 긍정적인 성격으로 당초 예상 회복 기간을 크게 단축시켜 의료진 등 주변을 놀라게 했다.
⊙재미있게 공을 차야 세계 정상의 기량이 가능
"축구는 이기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즐기려고 하는 것이다. "
17세 이하 여자 대표팀의 최덕주 감독이 선수들에게 항상 하는 말이다.
그는 '덕장'이라는 별명답게 그라운드에서 수비수끼리 손발이 맞지 않아 실수로 골을 내주거나 패스 미스를 연발해도 고함 한번 지르지 않았다.
선수들은 감독의 눈치를 살피기보다는 서로의 눈과 입을 바라보며 스스로 문제를 해결했다.
최 감독은 "선수들에게 윽박지르고 체벌을 가하는 방식은 한계가 있어요. 감독 눈치 보느라 주눅이 들면 창의적인 플레이가 나올 수 없죠.
이기기 위해 임기응변에 강한 선수가 아니라 축구를 즐기면서 기본기를 착실히 다지는 선수로 키워내야 합니다"라고 말한다.
이런 최 감독의 철학은 대한축구협회 기술 보고서인 'KFA 리포트'(2008년 8월)에 쓴 칼럼에도 잘 나타나 있다.
'한국 유소년 축구에서 욕설이나 체벌이 여전히 존재한다.
선수들은 경기 도중에도 감독이 소리를 지르면 깜짝 놀라며 부동자세로 멈춰 선다.
축구를 생각하고 상대와 우리 팀의 상황을 생각하고 우리 팀의 콤비네이션이나 움직임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감독이 무슨 말을 하는지 듣기에 바쁘다. '
최 감독은 "한국 축구가 세계 정상의 기량을 갖추기 위해서는 선수들이 유소년 시절부터 축구에 흥미를 느끼면서 재미있게 공을 차는 것이 최우선"이라고 주장한다.
이번 대회를 통해 여민지 선수가 부상을 딛고 성공적으로 부활하고,공격수로 뽑혔던 선수들이 수비수로 전환해 제 몫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최 감독이 '즐기는 축구'에 대한 신념으로 인내심을 갖고 선수들을 기다렸기 때문이다.
그는 결승전 승부차기를 앞두고도 "승부에 연연하지 말고 차고 싶은 데로 차라.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며 푸근한 아버지처럼 선수들을 다독였다.
⊙'전인적 청소년 스포츠'가 더욱 필요하다는 주장도
이번 대회에서 한국 청소년 스포츠가 큰 성과를 올렸지만,'학교 운동부'로 대표되는 국내 청소년 스포츠 환경의 문제점에 대한 지적은 여전하다.
대한축구협회는 지난 8월16일 상벌위원회를 열고 '2010 SBS 고교 클럽 챌린지리그'에서 K고등학교와 P고등학교가 승부 조작을 했다며 해당 학교의 축구팀 감독에게 무기한 자격정지의 중징계를 내렸다.
이처럼 성적 지상주의에 따른 비리뿐 아니라 폭력,학업능력 저하,상급학교 진학 비리 등 운동부 학생과 관련된 다양한 문제들이 자주 불거지고 있다.
이 때문에 '전인(全人)적 청소년 스포츠'라는 개념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전인적 청소년 스포츠는 경기 성적을 잘 내기 위한 경쟁에서 벗어나 지(智) · 덕(德) · 체(體)의 균형 있는 발달을 목표로 한다.
즉 청소년들이 단순히 뛰어난 운동 기량,학교 이름 알리기,상급학교 진학을 위해 운동하는 게 아니라 스포츠를 통해 자아 정체성을 찾고 더불어 사는 삶의 의미를 알게 되며 운동 자체의 재미를 느끼도록 하자는 것이다.
이를 위해선 경쟁을 중시하는 스포츠보다는 여가 및 교육 차원의 운동을 목표로 해야 하며 감독,교사,학부모에 의해 운영되는 청소년 스포츠가 학생 위주로 바뀌어야 한다.
김주완 한국경제신문 기자 kjw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