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성적인 식량난으로 영양실조 시달려··· 삶의 실, 세계 최하위 수준
[Cover Story] "잘 살아야 키도 큰다"··· 못먹고 자라는 북한 청소년 작을수 밖에!
북한 사람들의 키가 남한 사람들보다 작은 것은 만성적인 식량 부족 등으로 삶의 질이 세계 최하위 수준으로 떨어졌기 때문이다.

굶어 죽는 사람이 수천명에 달한다는 보도가 수시로 나올 정도로 북한의 식량난은 심각하다.

식량난의 원인은 1995년 이후 매년 반복되고 있는 홍수 피해 때문이라고 한다.

전기 석유의 부족으로 많은 주민들이 산에서 나무를 베어와 땔감으로 사용하다 보니 산림이 황폐화돼 비가 조금만 많이 와도 홍수 피해가 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겉으로 보이는 직접적인 원인일 뿐 식량 부족의 근본적인 문제는 사회주의 제도의 비효율성에 있다.

열심히 일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같은 대접을 받는 관계로 생산성이 떨어져 북한은 농업은 물론 의류 전자 화학 철강 등 모든 산업에서 공급 부족을 겪고 있다.

낮은 생산성으로 북한은 1990년 이후 경제성장률이 거의 제로에 가깝다. 북한의 국민소득은 우리나라의 20분의 1 수준에도 못 미친다.

분단되기 전만 하더라도 우리보다 컸던 북한 사람들이 아시아에서 두 번째로 작아진 것은 식량난이 1차적인 원인이지만 보다 넓은 시각으로 보면 사회주의 제도의 문제점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 만성적인 식량난

귀순한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비서에 따르면 북한은 1995년 이후 반복되는 대홍수로 식량 생산 부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전기와 석유의 부족으로 시골에서는 아직까지 산에서 나무를 베어와 땔감으로 사용한다.

그러다 보니 산들은 벌거숭이가 돼 비가 조금만 와도 홍수가 나 논밭이 황폐화된다는 것이다.

이런 사정을 알게 된 이랜드그룹은 몇 년 전 남북한 교류가 한창일 때 북한주민 돕기 사업의 하나로 '북한에 나무심기 운동'을 펼치기도 했다.

10여년 전 금강산을 방문한 적이 있는 필자 역시 당시 금강산으로 들어가는 길 주변 산들이 한결같이 벌거숭이여서 눈에 띄었던 기억이 있다.

북한 주민들의 굶주림은 그러나 홍수 때문만은 아니다.

다른 산업이 발달해 수출을 많이 한다면 홍수 피해로 쌀 생산량이 줄더라도 식량을 수입해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근본적인 문제는 열심히 일해도 인센티브가 없어 생산성이 떨어지는 사회주의의 비효율성 때문이다.

북한 주민들의 생산성이 낮은 것은 북한 이탈 주민들의 말을 들어 보면 실감할 수 있다.

최근 북한을 이탈한 20대 후반의 한 청년은 옥수수 크기에 대한 의미 있는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북한의 옥수수는 협동농장에서 재배한 것인지 북한 주민의 집에서 재배한 것인지 크기로 금방 알 수 있습니다.

농장에서 재배된 옥수수는 엄지손가락처럼 작은 반면 주민이 자기집 밭에서 재배한 옥수수는 팔뚝만큼 큽니다.

자기 옥수수는 매일매일 물을 주고 가꾸지만 협동농장 옥수수는 그렇지 않아서지요. "

옥수수 크기를 과장된 몸짓으로 그려 보인 그 이탈주민은 일부 주민들의 과욕으로 비료 도둑이 빈번하다는 뒷이야기도 들려 주었다.

"자기 옥수수를 잘 키우기 위해 협동농장 비료를 몰래 집에 갖고 가 뿌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낮에 협동농장에서 일하는 척하면서 비료를 몰래 땅에 묻어 두었다가 저녁에 어두워지면 집에서 다시 돌아와 비료를 파내 자기밭에 뿌리는 것이지요.

그러다 보니 협동농장 옥수수와 개인밭 옥수수의 크기가 차이날 수밖에요. "

사회주의 북한에서는 원래 개인 경작이 허용되지 않았다.

그러나 1990년대 들어 식량난이 심해지자 자기집 마당이나 산비탈을 개간해 농사를 짓는 주민이 크게 늘었다고 한다.

이에 북한 당국은 2002년 7월 소위 '경제개혁'을 단행, 주민들이 개별적으로 소규모 농사를 지을 수 있게 하고, 쌀을 제외한 일부 품목을 시장에서 사고 팔 수 있도록 공식 허용했다.

말하자면 식량난을 해결하기 위해 시장 경제를 부분적으로 도입한 것이다.

그러나 북한은 이 조치를 오래 시행하지 못했다.

자기 밭을 가꾸려는 주민과 장사를 하려는 주민이 크게 늘면서 협동농장이 위축되는 등 사회주의 계획경제 체제에 혼선이 생겼기 때문이다.

북한은 최근 2~3년 동안 시장에서 장사할 수 있는 사람의 나이와 거래 품목을 제한하는 등 시장을 억제하는 조치를 취하고 있다.

시장경제 도입으로 생산성을 높이고 있는 중국 베트남 등 다른 사회주의 국가와 달리 북한은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시장경제'를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북한을 탈출한 주민들은 북한 사회의 이러한 문제점을 공통적으로 지적한다.

인센티브가 없다 보니 열심히 일하지 않아 생산성이 떨어지고 농업은 물론 산업 전반에 공급 부족현상이 빚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 국민소득과 HDI

삶의 질을 나타내는 지표로 흔히 국민소득과 유엔개발계획의 인간개발지수(HDI)를 사용한다.

경제학자 맨큐는 그의 저서 '경제학원리'에서 "한 나라 국민들의 삶의 질은 그 나라 국민들이 얼마나 많은 재화와 서비스를 생산해 낼 수 있는가에 달렸다"고 강조한다.

한 나라 국민들이 1년간 생산해 내는 재화와 서비스의 시장가치는 바로 국민소득이다.

남북한 사람들의 키 차이만큼이나 남북한의 국민소득 차이도 크다.

북한은 국민소득 통계를 내놓지 않고 있는데 세계은행의 2009년 통계에 따르면 저소득 국가(1인당 GDP 995달러 이하)에 분류돼 있다.

2만달러에 근접하는 우리나라 GDP의 20분의 1 수준인 셈이다.

국민소득을 높이려면 생산성이 높아야 한다.

생산성은 국민소득을 총노동시간으로 나눈 것으로 경제체제외에도

△근로자들의 지식과 기술 수준(인적자본) △자연자원 △기술지식 등에 영향을 받는다.

GDP는 삶의 질을 나타내는 척도로 완전하지 않은 면도 있다.

여가나 환경오염같이 비물질적 요소는 GDP 계산에 포함되지 않는다.

휴일도 없이 일한다면 GDP는 높아지겠지만 삶의 질은 높아지지 않을 것이다.

기업들이 오염물질을 마구 쏟아내면서 공장을 돌릴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GDP는 국가가 만들어 내는 통계 중 삶의 질을 나타내는 가장 대표적인 지표임에는 틀림없다.

유엔개발계획은 GDP의 한계를 들어 삶의 질을 종합적으로 나타내는 인간개발지수를 발표하고 있다.

HDI는 1인당 국민소득 외에 국민들의 평균수명 문자해독률 유아사망률 등 비물질적 요소까지 포함한다.

유엔개발계획에 따르면 북한의 HDI는 1995년에 한 차례 집계된 적이 있는데 세계 76위로 '삶의 질 하위권 국가'로 분류돼 있다.

우리나라의 2009년 HDI는 0.937(1점 만점)로 2006년 이후 4년째 세계 26위를 차지하고 있다.

남북한 사람들의 키 차이만큼이나 GDP 인간개발지수가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박주병 경제교육연구소 부소장 jbpar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