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개된 경쟁 줄이면 은밀한 경쟁 키워
[Cover Story] 경쟁이 있어야 사회 正義가 자란다
우리 사회 곳곳에서 공정사회에 반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투명하고 공개된 경쟁을 피해 은밀한 곳에서 특권을 누리려는 시도가 속출하고 있는 것이다.

공개경쟁의 빈틈에서 특혜와 특권의 독버섯이 자라는 형국이다.

외교통상부 장관 딸이 특혜를 받아 공무원에 특채된 것을 두고 '현대판 음서제(蔭敍制)'가 등장한 꼴이란 비판이 거세다.

음서제는 부모나 조상을 잘 둔 사람에게 벼슬을 내리던 고려 시대의 제도로,고려 귀족들이 문벌을 형성하고 특권을 유지하는 데 이용됐던 제도다.

수백년 전 봉건시대의 차별적 제도가 일부 사회 지도층의 기득권 유지를 위한 도구로 부활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 문제는 정부가 추진 중인 행정고시 개편정책에 대한 논란도 가열시켰다.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정부에서 일할 수 있도록 한다는 취지였다.

공정하기만 하다면 다양한 전문가를 채용하는 이 제도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제도다.

문제는 고시를 줄이고 특례채용을 늘릴 경우 외교부 장관 딸과 같은 특혜가 나타날 것이라는 점이다.

이 때문에 정부와 여당은 행정고시 제도 개편안을 전면 백지화하고 말았다.

장보다 구더기가 많다는 우려 때문인 셈이다.

이번 파문은 우리 사회에 만연된 낮은 법의식을 되돌아보게 하고 있다.

누가 뭐라고 해도 공정한 사회의 가장 기본적인 조건은 법치주의의 확립이다.

과연 한국인들의 법의식이 낮은 이유는 무엇일까.

사실 이 문제는 매우 오래된 질문이고 다양한 응답이 가능한 질문이다.

일제를 거치면서 자율적으로 근대적 시민의식이 형성될 기회가 없었다는 원인 분석도 많다.

고도 성장 과정에서 적법한 수단보다 목적을 달성하기만 하면 된다는 목표지상주의적 사고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유전무죄 · 무전유죄식의 법조 윤리 실종 때문이라는 분석도 뒤따른다.

모두가 맞는 말이다.

그러나 우리가 자주 잊는 것 중의 하나는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법이 너무 많다는 점이다.

국가가 행정 목적상 도입한 법들이 너무 많아 국민들이 법을 무시하거나, 들키지 않으면 그만이라거나, 애써 회피하려는 동기를 갖는다는 점이다.

또 막상 법을 만들 때는 저마다 원칙주의자가 되어 지키기 어려울 정도로 높은 도덕적 기준을 세워놓는다는 점도 정작 지키지 않는 법을 만드는 요소가 된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지킬 수 있는 법을 만드는 것이 그래서 중요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알게 모르게 경쟁을 피하려 한다는 점이다.

공정한 경쟁은 사회 구성원들이 모두 지켜야 할 기본이다.

경쟁은 피곤한 것이라고 불평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공개된 투명한 경쟁이야말로 약자를 보호하고 강자와 동일한 조건에 세운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경쟁이 약화되면 언제나 강자들이 은밀한 곳에서 결정권을 행사한다.

우리가 시장경제 원리를 강조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시장경제에선 누구나 자신의 이익을 위해 노력하며 공개된 시장에서 경쟁을 벌인다.

이런 개인의 경쟁은 사회적 생산성을 높여 사회 발전을 이끈다.

또 사회 발전은 경쟁에서 패배한 사람들을 돌볼 수 있는 기반이 되기 때문에 다시 개인과 사회의 발전을 위한 경쟁이 일어나는 선순환이 가능하다.

사람들은 경쟁을 통해 이익을 추구할 수 있고,그 경쟁에서 져 약자가 되더라도 보호받을 수 있다는 인식으로 공정한 경쟁을 지지하게 된다.

법치주의와 윤리의식이 약화된 이유, 시장경제와 공정한 경쟁 등에 대해 4 · 5면에서 자세히 알아보자.

장경영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longr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