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은 실용주의로 고성장··· 상반된 리더십이 경제 운명 갈라
[Global Issue] 아르헨티나, 또 모라토리엄?··· 되살아난 '포퓰리즘의 망령'
남미 최대 경제대국인 아르헨티나와 브라질이 엇갈린 행보를 보이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후 아르헨티나는 여전히 부진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반면 브라질은 세계 경제대국으로 발돋움했다.

2000년대 이후 각각 '포퓰리즘'과 '실용주의'라는 상반된 노선을 선택한 결과다.

영국 경제전문지 이코노미스트는 최신호에서 "과거 포퓰리즘으로 나락에 빠졌던 아르헨티나 경제가 또다시 집권층의 포퓰리즘으로 신음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1910년 당시 중남미 국내총생산(GDP)의 절반을 차지하는 최대 경제국이었던 아르헨티나를 수렁에 빠트렸던 포퓰리즘이 100년이 지난 지금도 발목을 잡고 있다는 얘기다.



⊙ 두 번째 모라토리엄 위기에 빠지나

아르헨티나 정부는 지난 4일 올해 GDP 증가율이 8%에 이를 것이라고 발표했다.

인플레이션 전망치도 6.1%로 제시했다.

그러나 이 수치는 민간경제단체뿐만 아니라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WB) 등 국제기구로부터 신뢰를 받지 못한다.

정부가 인위적으로 통계를 조작한다는 의혹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GDP 증가율도 아르헨티나 정부는 전년 대비 0.9% 성장했다고 밝혔지만 금융위기 여파로 실제 성장률이 -4% 수준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진단이다.

올해 인플레율도 정부 전망치와 달리 20%에 육박할 것이란 지적이다.

IMF는 아르헨티나 경제지표에 대한 조작설을 제기하면서 막대한 재정적자 및 신용경색으로 국가부도 사태를 맞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실제로 아르헨티나는 2001년 경제위기를 거치면서 모라토리엄(지급유예)을 선언한 전력 때문에 국제시장에서 자본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현재 아르헨티나 총 외채는 전체 GDP의 3분의 1이 넘는 1086억달러인 데 비해 외환보유액은 480억달러에 그친다. 1년 만기 단기 외채 비중도 40%가 넘는다.

막대한 국가부채를 상환하기 위해 아르헨티나 정부는 올초 중앙은행의 보유외환을 활용,외채상환기금을 설치하겠다는 고육책을 내놓기도 했다.

이런 사정 때문에 아르헨티나가 또다시 모라토리엄 위기에 빠질 수 있다는 가능성도 제기된다.

세계 최대 선물 · 옵션 거래소인 CME그룹 자회사인 CMA데이터비전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아르헨티나의 국가부도 확률은 42%로 베네수엘라와 그리스에 이어 세 번째로 높다.

⊙ 포퓰리즘이 경제난의 근본 원인

아르헨티나의 경제위기는 2003년 이후 집권한 네스토르 키르치네르 전 대통령과 그의 부인이자 후임 대통령인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현 대통령의 포퓰리즘 정책 때문에 빚어졌다는 분석이다.

이들 부부는 집권 기간 내내 지지세력인 빈민층을 잡기 위한 선심성 정책을 펼쳐왔다.

아르헨티나 최대 산업인 농업 부문에서 높은 세금을 징수해 빈민층에게 쏟아부었다.

정부는 2008년부터 산업 부문의 국유화 정책을 본격적으로 실시했다.

재정수입 증대를 위해 민간 연금펀드 및 항공산업 국유화 조치를 단행했다.

지난해엔 미국의 록히드 마틴을 비롯한 외국 기업 공장을 일방적으로 국유화하기도 했다. 이 자금은 모두 빈민층 복지 혜택 등에 쓰였다.

그러나 빈민층의 삶의 수준은 과거 대비 나아지지 않았다.

현재 전체 인구의 절반가량이 빈민층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빈민층 확산은 빈부격차 확대,범죄율 증가 등 사회문제로 이어졌다. 일자리도 지난해 34만개가 사라졌다.

게다가 국가 재정을 고려하지 않은 선심성 부양정책 시행에 따라 재정적자도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정확한 수치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아르헨티나의 재정적자 규모는 최근 재정위기를 겪고 있는 남유럽 국가들과 비슷하거나 오히려 더 높은 수준일 것으로 추정된다.

이코노미스트는 "이러한 국유화 정책은 1940년대 후안 페론 전 대통령이 펼쳤던 페로니즘의 재연"이라며 "아르헨티나의 경제동력을 상실케 만드는 요인"이라고 분석했다.

1946년 페론의 대통령 당선으로 시작된 페론주의는 독재와 부패,시혜적인 복지정책 등에 따른 경제 위기로 아르헨티나 경제를 파탄냈다는 평가다.

한때 세계 5위의 경제대국이던 아르헨티나는 페론 정부 이후 쇠락의 길을 걸었고 현재까지도 그 여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 실용주의 택한 브라질,탄탄한 경제

1990년대까지만 해도 아르헨티나처럼 포퓰리즘이 넘쳤던 브라질은 금융위기 후 호황을 구가하고 있다.

올 1분기 GDP 증가율은 9%.IMF에 따르면 올해 전체 GDP 증가율은 7.3%로 추정된다.

실업률도 2002년 이래 최저 수준이다. 물가도 중앙은행의 연간 인플레 목표치인 4.5% 정도에 불과하다.

외환보유액도 지난해 말 기준으로 2385억달러 수준으로 부채 대비 넉넉한 수준이다.

브라질의 경제성장은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실바 대통령의 실용주의 정책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그는 2002년 10월 노동자당(PT) 출신의 첫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급진적인 사회 개혁이 뒤따를 것이라는 분위기가 팽배했고 시장은 두려움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룰라 대통령은 집권 이후 전통 지지층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시장친화적인 정책을 택했다.

노동자들은 그를 배신자,철새 정치인이라고 비난했고 기업과 투자자들도 그의 변신을 못 미더워했다.

그러나 룰라는 좌편향되거나 포퓰리즘에 빠지지 않고 '중도 실용주의' 노선을 묵묵히 걸었다.

방만한 정부 재정을 개혁하고 연금제도도 뜯어고쳤다. 덕분에 지난해 브라질의 재정적자는 GDP 대비 1.2%에 그쳤다.

게다가 각종 규제를 풀고 기업에 우호적인 환경을 제공하면서 1980년대 썰물처럼 빠져나갔던 외국인 투자자들을 다시 유치했다.

금융위기가 닥치자 주요 산업 부문에 대한 감세정책도 적극적으로 실시했다.

내수소비 확대를 위해 자동차와 전기전자제품,건설자재의 판매가격에 붙는 공산품세를 인하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감세 조치를 적용했다.

이 같은 시장 친화적인 정책을 통해 브라질이 금융위기를 버텨낼 수 있는 원동력이 됐다는 분석이다.

룰라 대통령은 5년 내 브라질의 GDP가 세계 5위로 올라설 것으로 자신하고 있다.

브라질은 올해 GDP 순위에선 8위를 기록할 전망이다.

강경민 한국경제신문 기자 kkm1026@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