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 "공직사회도 다양한 경험 있는 전문인력 필요"

반 "외부 전문가 특채할 경우 형평성 시비 일것"

오랫동안 고급 공무원의 등용문 역할을 했던 행정고시가 역사 속으로 사라질 것으로 보인다.

행정안전부는 내년부터 행정고시의 명칭을 5급 공무원 선발시험으로 바꾸고 선발 인원의 30%는 각종 자격증과 학위를 가진 외부 전문가를 선발하는 것을 골자로 한 '공무원 채용제도 선진화 방안'을 최근 발표했다.

권위적인 냄새가 짙은 고시라는 용어를 없애고 채용 경로도 다양화하겠다는 취지다.

현행 5급 공무원(사무관) 채용 시험은 1963년 고등고시(당시 3급 채용시험)가 행정고시로 바뀌었을 때부터 이어져 내려온 것이다.

선진화 방안에 따르면 5급 사무관 채용 방식에 필기시험 위주인 5급 공채 외에 전문가 전형인 '5급 전문가 채용시험'이 내년부터 신설된다.

각종 자격증이나 학위를 취득하거나 연구 경력을 쌓은 민간 전문가 중에서 해당 분야의 연구나 특허출원 실적 등 다양한 경험을 가진 응시자를 대상으로 서류 전형과 면접만으로 뽑는 방식이다.

행안부는 내년에는 전체 5급 공무원 채용인원의 30%를 선발하고 2015년까지 50%로 늘릴 계획이다.

이 같은 정부의 방침에 대해 공직사회의 경직성을 타파하고 전문성을 높일 수 있다며 환영하는 분위기가 있는 반면 전문가 선발이 얼마나 객관성을 띨 수 있겠느냐며 반대하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또 선발된 전문가들이 이질적인 공직사회에 과연 얼마나 성공적으로 적응할 수 있느냐에 대해서도 이론이 많다.

행정고시 폐지를 둘러싼 논란을 알아본다.

⊙ 찬성 측, "공직사회에도 다양한 시각과 경험이 필요하다"

행안부는 그동안 행정고시가 공정하고 객관적인 선발시험으로 공직에 젊고 유능한 인재를 안정적으로 유치하는 데 기여했다는 점은 인정하지만 부작용도 적지 않다는 입장이다.

공직 내부의 상위직급이 고시 출신 위주로 구성돼 경쟁이 부족하고 다양한 시각과 경험을 배경으로 사회문제를 인식하고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미흡하다는 비판이 제기돼 왔다는 것이다.

또 필기 위주의 평가 방식으로 채용 단계에서 공무원의 적성과 자질을 충분히 검증하기 어렵고 일반 공무원 중심으로 시험관리가 이뤄짐에 따라 전문성을 확보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고도 한다.

특히 몇 년간 고시원에 틀어박혀 특정 과목에 대한 암기 위주 필기시험에 대비하여 합격만 하면 공직자로서의 적합성 여부에 관련 없이 거의 평생을 보장받는 시스템은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고시공부 이외의 분야에서 나름대로 전문 지식이나 일반 교양을 쌓은 사람들과 현격한 차이가 거의 평생에 걸쳐 발생한다는 것은 고시제도가 갖는 중대한 허점이라는 주장도 있다.

젊고 유능한 인재들이 전공이나 다양한 직업을 포기하고 아예 고시에만 올인하는 것은 젊은이들이 사회 각계의 다양한 방면으로 진출해야 사회 전체가 긍정적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점에 비춰볼 때 분명히 개선의 여지가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고시에 매달리는 학생이 많아지면 학교 수업 정상화가 어려울 뿐 아니라 한창 일할 젊은이들에게는 시간낭비일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 반대 측, "외부 전문가 채용 형평성 유지 어렵다"

가장 큰 반대론은 그나마 가진 것 없고 소위 '빽'도 없는 젊은이들이 신분 상승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길이었는데 이를 폐지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입장이다.

안효대 한나라당 의원은 "행안부의 취지는 알겠지만 지금까지 많은 서민들이 고시를 통해 신분 상승을 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오지 않았느냐"며 "정부가 제도적인 보완 없이 너무 성급하게 폐지 방침을 발표한 것 같다"고 말했다.

외부 전문가 채용의 형평성 문제를 들고 나오는 목소리도 있다.

정두언 한나라당 최고위원은 "(행시 개편안은) 특수층 자녀가 들어가기 쉬운 제도로 공정하지 않다"며 "전문성을 높이겠다는 취지와 달리 자격증,학위,전문분야 경력을 고려하다 보면 제도가 악용될 가능성이 너무 크다"고 말했다.

그는 "실제로 외교부 같은 경우 전문직을 채용한다는 명분으로 오래전부터 이런 제도를 실시하고 있지만 거의 다 외교관 자녀나 해외에 근무했던 상사 주재원 자녀가 들어온다"고 주장했다.

고흥길 한나라당 정책위 의장도 "특채를 시행할 경우 우리나라 정서상 형평성의 문제를 제기할 사람들이 많다"며 "외부 인사를 채용하는 과정이 투명하게 이뤄지기 위한 제도적 차원의 준비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갑작스러운 시험 제도 변경에 고시 준비생들 역시 당황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고시 준비생은 "정원을 줄이려면 최소 5년 전에는 알려줘야 하는 것 아니냐"며 정부가 사전에 여론 수렴 과정 등이 거의 없이 전격적으로 발표한 것에 불만을 터뜨렸다.

⊙ 공개 채용과 전문가 채용이 상호 보완돼야

고위직 공무원 채용은 참으로 쉽지 않은 문제다.

공무원은 사실 일반 회사원과 달리 때에 따라서는 정부라는 커다란 조직 속에서 일사불란하게 움직여야 할 때도 있다.

반면 사회가 빠른 속도로 바뀌고 다양화되면서 전문지식과 유연성 또한 요구되는 게 현실이다.

한마디로 공무원은 일반관리자에 해당하는 직업공무원으로서의 역할도 요구받는 한편 전문가 못지않은 지식 또한 갖춰야 하는 어려운 시대에 살고 있는 셈이다.

공직자 채용도 이런 추세를 따르지 않을 수 없다고 본다.

따라서 무조건 전문가가 많다고 좋은 것만은 아니며 그렇다고 공직사회가 완전히 폐쇄형으로 충원돼서도 안되는 것은 물론이다.

결국 두 가지 채용 방식의 중간점을 찾아야 한다는 얘기다.

어느 쪽에 더 중점을 둘 것인가가 중요한데,시험 선발은 여러 가지 문제가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무엇보다 누구에게나 공정한 경쟁을 보장한다는 점에서는 분명히 장점이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따라서 시험 선발이라는 주된 루트는 존속시키되 여기에 전문가 채용 범위를 확대하는 선에서 채용방식의 보완이 이뤄져야 할 것이다.

김선태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kst@hankyung.com


---------------------------------------------------------


☞한국경제신문 8월20일자 A10면

행정안전부의 행정고시 폐지 방침과 관련 여당 내 반발이 확산되고 있다.

정두언 한나라당 최고위원은 19일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취지는 좋으나 결과적으로 특수층 자녀를 위한 제도로 악용될 수 있다"며 "당정회의 및 국회 논의 과정에서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 최고위원은 이어 "행시 폐지안은 대통령이 강조한 공정한 사회,친서민 정책과도 맞지 않다"며 "기득권층 시각에서 벗어나 서민의 시각으로 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고흥길 한나라당 정책위 의장도 부정적인 의견을 피력했다.

고 의장은 "폐쇄적인 공직 사회에 외부 인사를 많이 수혈하는 것에 대해서는 원칙적으로 찬성하지만 특채를 시행할 경우 우리나라 정서상 형평성의 문제를 제기할 사람들이 많다"며 "외부 인사를 채용하는 과정이 투명하게 이뤄지기 위한 제도적 차원의 준비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서 활동 중인 안효대 의원도 "행안부의 취지는 알겠지만 지금까지 많은 서민들이 고시를 통해 신분 상승을 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오지 않았느냐"며 "정부가 제도적인 보완 없이 너무 성급하게 폐지 방침을 발표한 것 같다"고 말했다.

박신영 한국경제신문 기자 nyus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