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 "맹모삼천지교는 눈감아 줘도 되지 않을까"

반 "도덕성의 문제가 아니라 엄연한 위법행위"

정권이 바뀌거나 개각이 단행돼 새로운 장관 후보자의 과거 이력이 드러날 때가 되면 예외없이 문제가 되는 것이 있다.

바로 위장전입 문제다.

이 문제는 특히 현 정부 들어서 고위 관료나 공직 후보자들의 청문회 과정에서, 또는 그 전에라도 공직 후보자로 이름이 거명되고 이력에 대한 조사가 진행되면서 종종 등장하고 있다.

위장전입은 분명히 불법행위다. 주민등록법 제37조는 1호에서 9호까지를 나열하고 이에 해당하는 사람은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분명히 규정하고 있다.

이 중 제3호를 보면 '주민등록 또는 주민등록증에 관하여 거짓의 사실을 신고 또는 신청한 자'도 처벌 대상으로 명기하고 있다.

한마디로 위장전입자에 대한 처벌 근거와 형량이 명확하게 법에 나와 있는 셈이다.

그렇지만 고위 공직자 중 위장전입으로 처벌을 받았다는 사람은 찾아보기 어렵다.

처벌은커녕 고위 공직 후보자 중에는 위장전입이 문제가 돼 자진 사퇴한 사람도 있지만 위장전입 사실이 밝혀졌음에도 불구하고 그저 "잘못했다,반성한다" 정도의 사과로 넘어가고 버젓이 공직에 취임한 사례도 많다.

현 정부에서는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현인택 통일부 장관,이만의 환경부 장관,김준규 검찰총장,곽승준 미래기획위원장,이귀남 법무부 장관이 위장전입에도 불구하고 공직에 취임했다.

또 신재민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이현동 국세청장 후보자,이인복 대법관 후보자 역시 위장전입 사실을 인정했다. 위장전입을 둘러싼 논란을 알아본다.

⊙ '맹모삼천지교'는 봐줘야 하는 것 아니냐

현 정부 들어 고위 공직자의 위장전입 문제가 끊임없이 발생하는 이유는 이에 대한 청와대 측의 태도와 관련이 있다.

청와대는 공식적으로 밝히지는 않았지만 공직자 후보 인사검증 과정에서 부동산 투기 등 재산증식을 위한 위장전입 경력이 있는 자는 배제하지만 자녀 교육을 위한 위장전입은 문제삼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이명박 대통령 자신이 아이들 학교 입학과 관련해 네 차례나 위장전입 경력이 있는 만큼 교육을 위한 21세기 '맹모삼천지교' 차원의 위장전입은 문제삼기 곤란한 것 아니냐는 게 청와대 내부의 기류인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의 입장이 이런 만큼 위장전입을 바라보는 여권의 시각도 안일하다.

한나라당 안상수 대표는 원내대표 시절 위장전입 문제와 관련,"성인군자나 결점이 없을지 모르겠지만 보통 사람은 어느 정도 결점이 있다. 조그마한 결점을 끄집어내서 흠집내는 청문회는 지양돼야 한다"고 밝혔다.

위장전입을 시인하고도 검찰총장에 임명된 김준규 검찰총장은 본인이 "백옥처럼 희지는 않지만 큰 잘못은 없다"고 말했다.

법학 교수 중에도 자녀 교육을 위한 위장 전입은 큰 문제 삼기 어렵다는 입장을 보이는 사람이 있다.

한 교수는 "사실 자녀 교육 목적으로 위장전입하는 것을 제한하는 위헌 소지도 있다"며 "투기 목적이 아닌 자녀 교육 목적의 위장전입은 달리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 도덕성의 문제가 아니라 위법 행위다

일부에서는 위장전입을 도덕성의 문제로 치부하지만 위장전입은 엄연한 위법행위다.

미국에서도 우수 학군을 찾아 위장전입을 하는 사례가 많다. 적발되면 중절도죄와 1급 문서위조죄가 적용돼 정식 재판에 회부되며 징역형까지도 선고된다.

설사 도덕성의 문제라 해도 고위 공직자의 경우 일반인보다도 더 높은 도덕성이 요구되는데 버젓이 현행법을 위반한 사람이 공직에 취임하는 것은 말이 안된다는 주장이다.

더욱이 고위 공직 후보자들의 경우 위장전입 위반의 공소시효가 5년으로 상대적으로 짧다 보니 공직에 취임하는 시점에서는 대부분 위장전입이 '과거지사'가 돼버려 거의 처벌도 받지 않는다.

이는 해마다 약 500여명이 위장전입에 적발돼 처벌을 받는 것과 비교하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상지대 홍성태 사회학과 교수는 "이명박 정부 들어 '위장전입이 고위직으로 가기 위한 필수조건'이라는 말이 나돌았는데,이번에 다시 한번 확인했다"며 "이런 일이 자꾸 쌓이면 국민에게 위화감과 불신감만 심어줘 소통과 통합은 요원한 일이 될 것"이라고 비난했다.

참여연대 이재근 행정감시팀장도 "엄격한 법적 · 도덕적 기준을 적용받아야 할 공직자가 법을 위반했다는 사실은 법치주의를 어지럽히고 훼손하는 것"이라며 "후보자 발표 전 인사 검증을 강화하고 검증 과정에서 불법 사실이 드러나면 스스로 책임지고 물러나는 전통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 엄연히 존재하는 법을 위반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

엄연히 주민등록법이 있고 그 법에 의한 위법행위는 어떤 이유로도 용인될 수 없다.

정말 교육을 위한 위장전입을 허용할 생각이라면 주민등록법을 바꾸든지 해야지 멀쩡한 법이 있는데 이를 위반하는 것을 두고 현 정부가 별일 아닌 것처럼 넘기는 것은 법치주의 국가에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도대체 고위 공직자들이 이렇게 현행법 위반을 사과 한마디로 끝내버린다면 누구에게 법 지킬 것을 요구할 수 있는지 반문하지 않을 수 없다.

더욱이 이전 정권에서는 위장전입으로 문제가 됐던 고위 공직 후보자들이 이를 사과하고 사퇴했다는 점을 감안해도 현 정부에서 위장전입 전력이 있는 사람들이 잇달아 고위 공직에 취임하는 것은 국민들의 법감정 자체를 혼란스럽게 만든다.

따라서 차제에 위장전입 논란을 공론에 부쳐 공직자의 결격 여부를 가리는 분명한 기준을 만드는 방안을 검포해야 한다.

그리고 만약 교육을 위한 위장전입을 용인할 수밖에 없다면 그에 맞게 아예 제도를 바꾸든지 해야 한다.

김선태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kst@hankyung.com

용어해설

◆위장전입= 거주지를 실제로 옮기지 않고 주민등록법상 주소만 바꾸는 것이다. 현재 살고 있는 곳과 다른 곳에 주민등록을 옮겨서 자녀들을 특정 지역 학교에 입학시키거나 부동산을 취득을 용이케 하거나 선거법상 요건을 충족시키기 위해 악용되는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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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경닷컴 8월 14일자 보도기사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있는 신재민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내정자와 이현동 국세청장 내정자,조현오 경찰청장 내정자가 모두 위장전입한 사실이 드러났다.

이인복 대법관 후보가 지난 12일 청문회에서 위장전입을 사과한 뒤라 여야 간 공방이 벌어질 전망이다.

신 장관 내정자는 모두 5번의 위장전입 사실을 시인했다.

신 내정자는 1995년 경기도 일산 밤가시마을 아파트로 이사한 지 3개월 만에 인근 마두동으로 주소를 옮긴 뒤 4개월 후엔 밤가시마을로 재전입했다.

1999년에는 마두동으로 전입신고한 데 이어 2000년과 2001년엔 부인과 주소지를 분리했다.

신 내정자 측은 "상급학교 진학 목적이 아니라 자녀가 다니던 초등학교에 잘 적응하지 못해 옆 학교로 전학시킬 목적이었다"며 "사과한다"고 말했다.

이 국세청장 내정자의 부인과 딸은 2000년 11월 살던 동네의 다른 아파트로 이 내정자와 주소지를 분리,전입신고했다.

6개월 뒤에 이 내정자 가족은 다시 한곳으로 주민등록을 옮겼다.

이 내정자 측은 "중학생이던 자녀가 특정 고등학교로 진학하기를 희망해 주소지를 옮겼다.

청문회에서 사과할 예정이었다"고 밝혔다.

조 경찰청장 내정자도 가족들이 1998년 11월 서울 사직동으로 주소지를 옮겼다가 3개월 뒤 홍제동으로 이전한 사실이 드러났다.

조 내정자 측은 "딸이 특정 고교를 희망해 주소지를 잠시 옮겼다"며 위장전입한 사실을 시인했다.

민지혜 한국경제신문 기자 spo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