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인플레이션은 돈 가치 떨어뜨려 富의 재편 초래
소비자와 기업에 비용 부담 늘리는 부작용

원자재 값 상승외에 통화량 급증해도 발생

'위대한 야구선수 베이브 루스는 1930년 8만달러의 연봉을 받았다.

루스의 손자뻘 되는 야구선수 배리 본즈는 그로부터 71년 후인 2001년 73개의 홈런을 쳐 메이저리그 홈런 기록을 깨뜨리며 1030만달러를 벌었다.

두 선수 중 누가 더 많은 돈을 벌었나?'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수장을 맡고 있는 벤 버냉키가 쓴 경제학 교과서의 인플레이션(inflation) 부분에 나오는 질문이다.

이 질문에 답하려면 1930년과 2001년 사이의 인플레이션을 감안해 두 선수의 연봉을 비교해야 한다.

인플레이션을 감안하는 데 필요한 것이 소비자물가지수(CPI)다.

CPI는 일정한 재화와 서비스의 묶음을 해당연도에 구입하기 위한 비용을 기준연도에 구입하는 비용으로 나눈 것이다.

예를 들어 2010년에 그 비용이 850만원이고,기준연도인 2000년의 비용은 680만원이라면,2010년의 CPI는 1.25이다. 2010년의 물가가 2000년에 비해 25% 올랐다는 얘기다.

위 문제로 돌아가보자.미국 소비자들에 대한 광범위한 설문조사가 이뤄진 1982~1984년의 평균값을 기준연도로 삼아 산출한 1930년과 2001년의 CPI는 각각 0.167과 1.78이다.

두 선수의 연봉을 각 CPI로 나누면,루스는 47만9000달러,본즈는 579만달러다.

물가상승분을 조정한 실질 소득에서 본즈가 루스에 비해 12배 이상 앞선다.

이처럼 인플레이션은 화폐의 가치를 변화시킨다. 인플레이션이 심할수록 화폐의 가치는 크게 떨어진다.

그래서 경제주체들은 인플레이션으로 화폐의 가치가 얼마나 바뀔지를 예의주시한다.

정부는 재정정책으로, 중앙은행인 한국은행은 통화정책으로 인플레이션에 대응한다.

인플레이션의 측정방법과 발생 원인,인플레이션에 따른 비용에 대해 알아보자.

◎ 인플레이션의 측정방법과 발생 원인
[Cover Story] 인플레이션은 돈 가치 떨어뜨려 富의 재편 초래
인플레이션은 물가수준이 지속적으로 상승하는 현상이다.

인플레이션을 측정하는 데는 물가지수가 이용된다.

우리나라에서 작성되는 물가지수로는 소비자물가지수,생산자물가지수,수출입물가지수 및 GDP디플레이터 등이 있다.

이 가운데 소비자물가지수가 가장 대표적이다.

소비자물가지수는 소비자들이 일상 생활에서 구입하는 재화와 서비스의 가격 변동을 보여준다.

예를 들어 소비자물가지수가 2008년 1.25이고 2009년 1.30이라고 가정하면,2008년과 2009년 사이의 물가상승률,즉 인플레이션율은 그 기간 소비자물가지수의 변화분(0.05)을 기준연도 물가지수(1.25)로 나눈 값인 4%다.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는 원인은 크게 두 가지다.

발생 원인이 수요 측에 있느냐,공급 측에 있느냐에 따라 수요견인(demand-pull)형과 비용상승(cost-push)형으로 구분한다.

수요견인 인플레이션이란 어떤 상품의 수요가 공급보다 더 많으면 가격이 오르듯이 한 나라 경제의 총수요가 총공급을 초과하는 경우 발생한다.

반면 비용상승 인플레이션은 임금이나 원자재가격이 올라 생산원가가 높아지는 경우에 나타난다.

원가 상승은 결국 최종상품가격 상승으로 이어져 인플레이션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수요견인 인플레이션은 수요곡선이 오른쪽으로 이동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때 정부는 재정정책을 통해 세금을 더 거둬들이고,중앙은행은 통화정책으로 통화공급을 줄여 수요곡선을 다시 왼쪽으로 이동시킨다.

문제는 비용상승 인플레이션이다. 비용상승 인플레이션은 공급곡선이 왼쪽으로 이동해 물가가 오르는 것이다.

이 경우 재정정책과 통화정책을 함부로 쓸 수 없다. 세금을 더 거두거나 통화량을 줄여 수요곡선을 왼쪽으로 이동시키면 물가는 안정되지만 국민소득이 줄어드는 고통이 따른다.

◎ 인플레이션에 따른 비용

사람들에게 인플레이션이 왜 나쁘냐고 물으면 애써 벌어들인 돈의 구매력을 빼앗기 때문이라고 답할 것이다.

물가가 오르면 소득으로 구입할 수 있는 재화와 서비스의 양이 줄어들어 인플레이션이 생활수준을 떨어뜨리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잘 생각해 보면 이것은 착각이다.

물가가 오르면 재화와 서비스를 구입하는 사람들은 더 많은 돈을 지불해야 하지만,동시에 재화와 서비스를 판매하는 사람들은 더 많은 돈을 받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노동과 같은 서비스를 판매해 소득을 올리므로 물가가 상승하면 소득도 함께 증가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결국 인플레이션이 사람들의 실질 구매력을 감소시킨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물론 인플레이션이 일어나는데 소득이 늘어나지 않으면 실질소득이 하락하는 것이다.

인플레이션이 문제가 되는 것은 개인이나 기업에 비용을 부담시키거나 부를 강제로 재분배시키는 등 부작용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인플레이션 시기에 소비자들은 구두창 비용을 부담하고 기업들은 메뉴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구두창 비용은 화폐 가치가 떨어지는 것을 피하기 위해 현금 보유를 줄이려고 은행에 자주 가느라 구두창이 더 빨리 닳는다는 데서 붙여진 이름이다.

구두창 비용의 사례는 볼리비아의 초인플레이션 현상을 보도한 1985년 8월13일자 월스트리트저널의 기사가 유명하다.

그해 볼리비아의 인플레이션율은 8000%로 물가가 80배나 뛰자 에드가 미란다라는 교사는 월급(2500만페소)을 받으면 곧장 은행으로 달려가 다른 나라 화폐(미국 달러)로 바꿔야 했다.

월급날 환율은 1달러에 50만페소였지만,이튿날은 90만페소로 뛰었다.

하루만 지체해도 월급이 50달러에서 27달러로 거의 반토막나는 상황이었다.

또 이 교사의 부인은 남편 월급을 들고 시장으로 달려가 한 달치 쌀과 국수를 미리 구입해 놓아야 했다.

이처럼 인플레이션이 심하면 화폐는 시장에서 거래 수단으로서의 기능을 하지 못하게 된다.

메뉴 비용은 음식점에서 새로운 메뉴를 인쇄하는 데 드는 비용에서 유래됐다.

인플레이션이 심하면 기업들은 평소보다 자주 가격을 조정해야 하므로 관련 비용을 많이 부담하게 된다.

2차 세계 대전 이후 독일과 1980년대 남미 국가들은 초인플레이션으로 화폐가치가 큰 폭으로 떨어져 제기능을 하지 못하게 되자 경제가 큰 혼란을 겪었다.

장경영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longr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