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유럽 재정위기, 남의 일 아니다 '복지병' 키우는 포퓰리즘 경계해야
[Cover Story] 마구잡이 복지지출, 미래 세대 허리 휜다
세계 15위 경제 규모를 갖고 있는 한국은 복지에 얼마나 많은 예산을 쓰고 있을까.

올해 국내총생산(GDP)의 9.0%가량이 복지에 쓰일 것으로 보인다.

'복지 선진국'으로 불리는 유럽 국가들이 20~30%를 쓰고 있는 것과 비교하면 아직 많다고 하기는 힘들다.

그러나 유럽 국가들과 단순히 비교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을 수 있다.

국가재정(나라살림) 상태는 물론이고 경제발전 정도나 연금제도 등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한국은 최근 복지에 쓰이는 돈이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선거 때마다 무상급식이나 저소득층 지원 등 복지 수준을 높여달라는 요구도 계속 늘어나고 있다.

'복지는 국민의 당연한 권리'라는 의식이 확산되면서 유럽에서 앓았던 '복지병'의 수렁에 빠져들고 있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복지를 늘리는 것은 가난한 이웃에 대한 배려라는 측면에서 아름답게 들린다.

문제는 누가 돈을 낼 것이냐는 것이다. 나중에 돈은 누가 내나? 지금 국민들의 조세부담은 이미 20%를 넘었다.

지금 수준의 복지를 더 늘리지 않아도 조세부담율은 40%까지 늘어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 너무 빨리 늘어나는 복지지출

1997년 외환위기 전까지만 해도 한국의 복지제도는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다.

건강보험과 국민연금,아주 가난한 계층에 대한 생계비 보조 등이 있을 뿐이었다.

예산을 기준으로 봐도 1997년에는 GDP의 3.8%만이 복지에 쓰였다.

하지만 외환위기 당시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실업 등 어려움을 겪은 국민들을 국가가 보살펴야 된다는 사회적 분위기가 퍼지면서 복지 예산이 두 배로 늘어났다.

직장을 잃은 사람에 대한 실업보험 지출이 급격히 늘어나고 모든 국민들을 대상으로 최저생계비를 보장하는 기초생활보장제도가 새로 도입된 것이다.

2003년 노무현 정부가 들어선 뒤에는 복지 국가로 가기 위한 정책들이 본격적으로 논의됐다.

2006년 8월 발표한 '희망한국 비전 2030'이 대표적인 사례다.

2030년까지 GDP에서 차지하는 복지지출 비중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평균인 21.2%까지 확대하겠다는 계획을 담았다.

하지만 이에 필요한 자금을 어떻게 조달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논의하지 않은 채 과제로 남겨놓았다.

돈을 마련할 계획을 세우지 않은 채 돈을 쓸 계획만 발표한 것이다.

복지지출은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뒤에도 계속 늘어나고 있다. 2007년 제정된 기초노령연금법이 2008년부터 시행되고, 기존 제도에 따른 예산 지급액이 큰 폭으로 증가했기 때문이다.

기초노령연금은 노인들에게 매월 10만원 정도를 연금으로 지급하는 제도로 노인인구가 늘어나면서 연금 지급액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는 것이다.

거기다가 2008년 하반기 이후 전 세계 금융위기 여파로 국내 경제가 어려워지자 선거철마다 복지를 늘려달라는 요구가 빗발쳤다.

복지를 소홀히 하면 정치적인 지지를 받을 수 없기 때문에 이명박 정부 역시 이전 정부와 크게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분석도 있다.

결국 GDP에서 복지지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해 8.8%로 외환위기 이전과 비교하면 3배 가까이 늘어났다.

금액으로는 1997년 16조원에서 올해는 81조원이 됐다.

⊙ 위협받는 국가재정

복지지출은 늘리기는 쉽지만 줄이기 어려운 특성을 갖고 있다.

더구나 우리나라의 복지예산 중에는 일정 요건이 되면 반드시 지급해야 하는 의무지출 비중이 높다.

올해 복지예산 81조2000억원 가운데 요건만 갖추면 지급해야 하는 의무지출은 71.5%에 달한다.

예를 들어 기초노령연금의 경우 65세 이상이고 일정 재산과 소득 요건을 만족하는 모든 노인에게 지급해야 한다.

그러다 보니 복지제도를 바꾸지 않아도 노인인구 비중이 늘어나면 자연적으로 지출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민경국 강원대 경제학 교수는 "의무지출은 물론이고 재량지출도 줄이기 힘든 것은 마찬가지"라며 복지지출의 특성을 설명했다.

한국조세연구원은 새로운 복지제도를 도입하지 않고 지금 있는 제도만 그대로 가져가더라도 한국의 복지지출은 2050년에 GDP의 24.7%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치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했다.

2050년이 되면 GDP에서 복지지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미국 등 OECD 선진국들보다 커질 것이라는 말이다.

노인인구 비율이 지난해 전체 인구의 10.7%에서 2050년에는 38.2%로 커지기 때문이다.

박형수 조세연구원 재정분석센터장은 "만약 새로운 제도가 도입되거나 기존 제도가 확대되면 지출은 더 늘어난다"고 설명했다. 예산이 충분하지 않은 상황에서 복지 지출이 늘어나면 나라빚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지난해 GDP의 33.8%인 국가부채비율은 2050년에는 116%로 대폭 증가하게 된다. 정부가 채권을 발행해 자금을 조달하게 되므로 결국은 후손들이 채무 부담을 지게 된다.

⊙ 문제의 근원은 포퓰리즘

복지에 대한 수요는 선거를 거듭할수록 커지고 있다.

최근까지 찬반 논란이 계속되고 있는 학교 전면 무상급식 실시와 저소득층 교육비 지원 등이 대표적이다.

물론 생계를 유지하기 힘든 취약계층을 정부가 지원할 필요는 있다.

그러나 아무리 취약계층을 위한 정책이라고 해도 국민소득 수준을 벗어나지 않은 범위에서, 그리고 나라살림을 축내지 않은 범위에서 펴야 한다.

유권자의 표를 얻기 위한 선거공약으로 복지정책이 남발한다면 큰 후유증을 낳을 수 있다.

한번 시행한 복지정책은 다시 줄이기가 매우 힘든 특성이 있다. 한번 복지 혜택을 받은 사람들은 복지 제도에 의존하려는 경향이 강해질 수 있다.

힘들게 일하지 않아도 생활을 보장해 준다면 근로의욕이 떨어지고 예산도 낭비되어 결국 경제성장 둔화 등의 국가적인 위기가 올 수도 있다.

박준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남유럽 국가들의 '복지병'을 키운 주요 원인 중 하나가 바로 정부와 정치권의 뿌리깊은 포퓰리즘(대중인기 영합주의)"이라고 강조했다.

실제 국가부도 위기를 겪고 있는 그리스의 경우 매번 선거 때마다 집권당은 이익집단의 지지를 얻기 위해 각종 산업 및 농업 보조금을 제공하는 등 여러가지 경제적 이익을 줬다.

심지어 표를 얻기 위해 유권자들에게 공공부문 일자리를 나눠주기도 했다.

그 결과는 그리스는 지금 영화 '맘마미아'에서도 소개된 아름다운 섬들까지 팔아야하는 지경에 몰리게 됐다.

그리스와 비슷한 사례는 다른 유럽 국가들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좌 · 우파 간 정쟁이 가열되면서 경쟁적으로 복지예산을 늘려 대중들에게 인기가 없지만 반드시 추진해야 하는 연금개혁 등은 지연시키는 부작용이 나타났다.

문형표 한국개발연구원(KDI) 경제정보센터소장은 "남유럽 국가들은 재정위기가 터지기 직전까지도 유권자의 표와 복지혜택을 맞바꾸는 야합이 남아 있었다"며 "이 때문에 문제가 터졌을 때 지도자들이 해법을 알면서도 실행할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유럽에서 이미 나타난 포퓰리즘의 문제점들을 예방하려면 우리나라도 지금부터 인기영합적인 정책들을 가려내야 한다는 지적이다.

서욱진 한국경제신문 기자 ventur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