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과 질서의 상징 '올림픽 vs 월드컵' 감성과 열정의 축제
[Cover Story] “올림픽은 아폴론적이며 월드컵은 디오니소스적이다”
월드컵과 올림픽 가운데 대중들에게 더 인기있는 스포츠 축제는 무엇일까.

마치 “태권브이와 마징가가 싸우면 누가 이길까”와 같은 어리석은 질문이겠지만,굳이 답을 찾아보자면 올림픽을 제치고 월드컵을 세계에서 가장 인기있는 스포츠 행사로 꼽는 경우가 많은 듯 하다.

다른 어떤 스포츠 종목보다도 단순한 규칙을 가지고 있는 축구라는 종목의 원초적 매력에다가, 올림픽이 공식적으로는 아마추어 순수성의 이념을 보존하고 있는 반면 프로와 아마추어를 가릴 것 없이 오직 실력과 승부의 잣대로만 평가하는 월드컵이 보다 많은 재미와 볼거리를 주기 때문이다.

여기에 국제축구연맹(FIFA)의 빼어난 마케팅 능력도 월드컵의 인기에 날개를 달아주고 있다.이성과 질서를 의미하는 아폴론과 감성과 열정을 상징하는 디오니소스의 이름을 빌려와 “올림픽은 아폴론적이며 월드컵은 디오니소스적”이라는 분석을 내놓기도 한다.

⊙ 도취와 열광의 현장 월드컵

‘2002 한·일 월드컵’ 이후 4년마다 시청앞 광장을 비롯한 시내 곳곳에선 ‘붉은 악마’를 비롯해 붉은색 티셔츠를 입은 수만명의 한국 축구팀 응원단의 열정적인 응원이 하나의 월드컵 문화로 자리잡았다.

밤샘응원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고, 한국팀이 승리했을 경우 ‘빠밤빠 빰빠∼’라는 차량 경적소리와 젊은이들의 함성소리가 온 시내를 떠나갈 듯 만든다.

한국팀의 골장면이나 찬스에서 ‘와∼’하는 환호성이 전국을 동시다발적으로 들썩이게도 한다.

이같은 현상은 한국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전세계인들이 4년에 한번씩 공식적·공개적으로 공권력의 배려하에 ‘미쳐버릴’ 기회를 갖는 것이다.

이에 따라 월드컵에 대해 세계적 규모로 되살아난 현대판 ‘디오니소스(그리스 신화속 술의 신) 축제’라는 평이 등장하곤 하는 것이다.

⊙ 디오니소스적 축제 월드컵

예술은 이성에 기반을 둔 ‘아폴론적’인 것과 감성에 호소하는 ‘디오니소스적’인 것으로 구분되기도 한다.

황홀과 유희에 기반을 둔 디오니소스적 예술은 인간 마음의 심연 속에 있는 강렬한 충동을 설명하는 용어로 등장했다.

이 표현은 이성이 잠자고 의지가 준동하는 세계,술의 신이자 음주가무의 신인 디오니소스가 벌이는 축제처럼 강렬한 도취의 세계속에서 여러 사람들이 ‘근원적인 하나의 단일체(das Urein)’가 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오늘날 월드컵 열기를 설명하는 데도 전혀 손색이 없는 개념인 것이다.

우선 월드컵과 올림픽이 지닌 독자적인 특성의 영향으로 분석할 수 있을 듯 싶다.

월드컵이 가져오는 격렬함과 광란적 도취,비정상적인 열기는 축구 자체가 지닌 특성이나 매력과 불가분의 관계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수세기간 전쟁을 지속해온 유럽각국은 현대사회에선 축구라는 단일 문화를 통해 전투적 호전성을 합법적으로 배출하는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또 19세기 현대 축구의 탄생이 소위 자본가와 근로자간 사회갈등을 완화하는 과정에서 근로자들의 ‘거친’ 문화가 반영된 사회적 카타르시스를 위한 산물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축구가 열광적인 도취와 사회적 긴장해소의 공간이 되는 것을 이해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여기에 축구가 단순한 스포츠 한종목이 아니라 브라질과 아르헨티나로 대변되는 라틴아메리카의 축제정신의 정수가 그대로 반영된 하나의 문화가 됐다는 점도 영향을 미쳤다.

이들 사항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월드컵이 올림픽에 비해 상대적으로 비이성적이며,충동적,축제적 성격이 강하다고 해석될 수 있는 것이다.

한마디로 현대사회에서 합법적으로 비이성적인 광란,원초적 감정을 표출할 수 있는 통로가 축구라는 설명인 것이다.

여기에 국가대항전 성격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대중들의 ‘민족주의적 감정’을 노골적으로 건드리고 있다는 점도 사람들이 ‘이성을 잃게’ 만드는 요인이기도 하다.

손이 아닌 발과 머리 등으로 공을 컨트롤하는 가장 투박한 스포츠가 축구라는 점은 경기진행과 결과의 불확실성을 최대화시켜 ‘우연’과 ‘운명’의 역할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이성보다는 감성,합리보다는 본능을 강조하는 디오니소스적 속성에 더욱 부합하고 있다.

유종호 전 연세대 교수에 따르면 “포도주와 도취의 신 디오니소스를 기려 고대 그리스에서 매년 3월말 열리던 디오니소스 축제의 핵심은 비극의 경연(競演)이었다”며 “경연의 최우수작은 10개의 투표명찰을 항아리속에 집어넣은 뒤 다섯개만 뽑아 최다득표작을 정하는 우연이 강조되는 방식으로 운영됐다”고 말했다.

⊙ 아폴론적 축제 올림픽

반면 월드컵에 필적할 만한 대규모 스포츠 축제인 올림픽은 상대적으로 ‘차분한’축제라는 인상이 강하다.

올림픽의 경우도 금·은·동 메달의 색깔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나 각 종목 선수들의 분투에 많은 관심이 쏠리는게 사실이긴 하지만 전국민적 열광과 몰입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한정적이기 때문이다.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에서 한국의 김동성 선수가 오심성 판정에 의해 미국의 안톤 오노에게 금메달을 뺏긴 경우처럼,민족주의 감정에 불을 붙이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전국민적 단일관심사로 부각되는 경우는 상대적으로 드물다.

이는 월드컵이 축구라는 단 하나의 종목에 전세계인의 관심이 쏠리는 반면,올림픽은 여러 종목이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면서 관심이 분산된 영향이 적지 않다.

월드컵의 경우,각 국가 국민들이 자국 대표팀에 자신을 투사하며 대리전쟁을 치르지만 올림픽의 경우엔 개별 종목별 선수들간의 경쟁으로 해석되면서 일체감이 상대적으로 월드컵보다 덜하다는 것이다.

여기에 월드컵이 프로와 아마추어 구분없이 노골적으로 최고의 볼거리와 성적 지상주의 이념을 표방하는 반면 올림픽은 순수 아마추어 정신을 공식적으로 유지하며 ‘평화와 화합의 공간’을 표방하는 점도 올림픽의 이성적 성격에 한몫하고 있다.

이같은 월드컵과 올림픽의 대비되는 성격이 누적되면서 월드컵은 ‘디오니소스적 축제’로 올림픽은 상대적으로 점잖고 차분한 ‘아폴론적인 행사’로의 성격이 더욱 강화돼 가고 있다.

김동욱 한국경제신문 기자 kimd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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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폴론과 디오니소스는 예술을 둘로 나누는 잣대

예술을 아폴론과 디오니소스로 구분하여 유형화한 것은 독일의 철학자 니체가 1872년 ‘비극의 탄생’이라는 책에서 규정한 것에서 출발한 것이다.

아폴론은 태양의 신이며 디오니소스는 술의 신이다.

니체는 고대 그리스의 예술을 이렇게 두가지 유형으로 나누고 전자는 조각 등 조형예술과 서사시, 후자를 음악과 서정시에 각각 대입시켜 설명했다.

아폴론이 단정하고 질서있고 이성적이며 조화를 갖춘 상태를 의미한다면 디오니소스는 역동적이며 열정과 파괴, 무질서와 혼돈을 의미하는 미학적 충동으로 설명된다.

니체 이후 많은 학자들은 예술은 물론 개인이나 문화 유형을 설명하는데까지 이 두 개념을 확장해서 사용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