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이라는 단어가 일상적으로 쓰이고 있는 오늘날, 구시대의 유물인 '족보'를 거론한다는 것은 어쩌면 시대착오적인 일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엔 분명히 과거의 인습인 족보체제가 자리잡고 있고, 그에 따른 폐해 또한 우리 사회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소위 '학벌'이라 불리는 것이 바로 그것이며, '학벌'이야말로 우리 사회에 새롭게 등장한 새로운 형태의 족보 유형이라고 할 수 있다.

'학벌'이란 출신 고등학교나 출신 대학교의 동문들로 이루어진 집단체제를 말한다.

그렇기에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지연과는 달리 학연이라고 할 수 있다.

같은 학교를 졸업한 동문들의 유대감과 결속을 비난할 수는 없지만, 우리 사회에 나타나는 '학벌'이 몇몇 특정 대학을 위주로 형성되어 있고, 그 특정 대학이 형성한 '학벌'이 우리 사회에 기득권을 행사하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가 된다고 할 수 있다.

'사회는 불연속적이고 상이한 사회들, 또는 비슷한 말이지만 사회적 존재들로 이루어진다.

사회적인 차별과 불평등은 이 과정에서 발생한다.

상이한 사회적 존재들이 한 사회 속에서 수평적으로 배치되지 못하고 수직적으로 배치되고 조직될 때, 그것이 차별과 불평등의 시작인 것이다. '

-김상봉 교수 저 '학벌사회'중에서


소위 명문대라고 불리는 소수의 대학 출신들이 형성한 '학벌'은 우리 사회를 서열화, 계층화시키고 있으며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새로운 파벌을 조성한다.

우리 한국 사회에서는 어떤 대학을 나왔는지가 한 사람의 능력이나 실력보다 중요하고, 그 사람을 판단하는 중요한 기준이 되고 있다.

역대 정권에서 고위 공무원을 차지한 인물들의 출신 학교를 분석한 사실적 자료를 보면, '학벌'이 결코 허구가 아니라는 것을 잘 말해준다.

역대 정부 각료 중 50%, 대학교수 중 27%, 국회의원 중 38%, 100대 기업의 CEO 중 44%, 검찰 고위 간부 중 70% 이상이 서울대 출신이다.

나머지는 연세대나 고려대 출신의 비중이 높고, 서울의 명문대를 제외하고 지방대 출신을 찾기란 쉽지 않다.

이는 중요 요직의 임용이나 선발이 실력보다 학벌에 의해 좌우되는 경향이 강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좋은 학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능력도 우수할 것이라는 선입견에 의한 폐단은 높은 학력과 학벌에 대한 사람들의 욕망이 지나친 데에 따른 학력 위조의 사태로 드러난다.

학력을 위조한 사람들에 대한 비난의 여론이 커지자, 스스로 학력 위조 사실을 밝히는 사람도 생겨난다.

우리 사회에서 교육은 권력 획득의 수단이 되었고, 그런 수단으로서의 교육이 바로 '학벌'을 조장한다는 주장은 지금의 공교육이 입시학원으로 전락해 있다는 사실에서 잘 드러난다고 할 수 있다.

'학벌'. 시험이란 경쟁을 통해 성적순으로 서열화가 이루어진 오늘날의 족보. 이제 어느 특정 '학벌'이 지배하는 사회가 아니라, 개인의 능력이 존중받고 대우받는 사회로 거듭나야 한다.

그렇기에 무엇보다 학벌보다 실력을 중시하는 사회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자아성취나 전문화된 능력을 키우는 교육, 제대로 된 인성교육이 강조되어 최고의 학벌을 얻지 못한 사람이라도 실력에 따른 정당한 기회를 얻을 수 있는 합리적인 사회가 되길 바란다.

양숙희 생글기자(한광여고 3년) uiui06@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