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다복지지출→국민세부담·외채 증가→투자·소비위축→경제장기침체
[Cover Story] 복지병 몸살앓는 유럽···성장없는 복지가 국가부도 위기로 몰아
'대다수 국민이 잘 갖춰진 복지제도를 누리는 국가….' 누구나 바라는 이상향이다.

하지만 전제조건이 있다.

바로 경제성장이다.

성장 없이 복지는 불가능하다.

수준 높은 복지를 위해선 막대한 재원이 필요하기 때문에 이를 뒷받침하려면 경제성장부터 이뤄야 한다.

이상향을 향한 성급한 마음에 성장을 제쳐두고 복지에 치중할 경우 경제는 발목을 잡힌다.

복지수준을 높이기 위한 사회복지 지출이 성장에 부담을 주는 것이다.

공공부문에서의 사회복지 지출 증가는 산업생산 부문에 투입할 수 있는 인력과 자본을 감소시킨다.

이 점은 특히 사회적 역량을 성장에 집중해 도약해야 하는 개발도상국엔 큰 약점으로 작용한다.

또 과도한 사회복지 지출을 충당하려고 법인세를 인상하면 기업의 해외 이전을 초래해 성장의 기반이 약화된다.

사회복지 지출로 복지프로그램이 확대돼 생기는 부작용도 있다.

국민의 저축동기가 약해지고,이는 투자재원 축소로 연결된다.

국민의 복지 의존성을 키워 근로의욕을 떨어뜨리는 문제점도 발생한다.

이런 요인들로 사회복지 지출은 경제성장에 나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는 한동안 부러움의 대상이었던 유럽식 복지국가 모델에서도 확인된다.

실제로 경제성장률과 복지수준이 역의 상관관계를 나타낸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1970~2001년 영국 스웨덴 독일 등 19개 선진국들이 사회복지 혜택을 확대한 시기엔 성장률이 하락했다.

반면 사회복지 제도를 축소한 시기엔 성장률이 상승했다.

복지국가 실현을 위한 성장의 중요성을 영국 스웨덴 독일 등 유럽 국가들의 경험을 통해 알아보자.

⊙ 유럽 ,복지 확대가 경제성장에 큰 부담

유럽 복지국가는 △앵글로색슨형(영국 아일랜드) △유럽대륙형(독일 오스트리아 벨기에 프랑스 룩셈부르크) △북유럽형(스웨덴 덴마크 핀란드 네덜란드) △지중해형(그리스 이탈리아 포르투갈 스페인) 등 4개 유형으로 나뉜다.

이 가운데 복지수준과 경제적 성과가 가장 저조한 지중해형을 제외하고,나머지 3개 유형의 대표 국가가 영국 독일 스웨덴이다.

이들을 비롯한 유럽 국가들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오일쇼크(석유위기) 전인 1970년대 초까지는 경제성장에 힘입어 복지수준을 끌어올렸다.

전후 '황금의 30년' 기간의 복지확대는 경제에 큰 짐이 되지 않았다.

이 시기엔 케인스 주의에 따른 '큰 정부'의 적극적인 역할이 강조됐다. 정부의 복지지출로 유효 수요를 창출하고 이를 통해 경제성장을 지속한 것이다.

유럽 국가들은 높은 성장세가 유지되는 상황에서 복지국가를 만들어갔다.

하지만 1975년 이후로는 경제가 침체되면서 복지 확대 정책이 큰 부담이 됐다.

영국은 과도한 복지지출 부담이 국가 경쟁력 약화와 겹쳐 1970년대 후반 경제가 파탄을 맞았다.

스웨덴은 1980년대에 복지모델을 미세 조정해 복지와 성장의 갈등을 어느 정도 봉합했지만 1990년대 초에 경제위기를 겪었다.

독일은 스웨덴보다 더 순항하다가 1990년대 후반에 복지와 성장의 상충이 심화돼 구조적 침체에 빠졌다.

⊙ 사회복지 정책이 '영국병' 촉발

전후 집권한 영국의 노동당 정권은 사회보장제도의 확대,완전고용 정책의 유지 및 주요 기간산업의 국유화를 통해 복지국가의 기초를 다졌다.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복지국가 모델을 제시한 베버리지 보고서에 근거해 국민보험법 가족수당법 국민의료서비스법 등을 제정하고 공적부조제도를 도입했으며,주택건설에 정부 보조금을 지급하는 주택법을 제정해 사회복지제도의 기틀을 마련했다.

전후 영국의 복지정책이 성공한 것은 1960년대까지 비교적 높은 경제성장률을 달성해 복지비용의 부담이 크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1970년대 들어 경제가 침체되면서 사회복지에 대한 비판이 일기 시작했다.

오일쇼크의 여파로 1973년부터 경상수지 적자가 이어지고 재정적자도 심화되면서 파운드화가 폭락했다.

1976년 영국중앙은행(BOE)이 파운드화 가치 방어에 나섰으나 외환보유액이 급감했고 그해 12월 영국 정부는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했다.

IMF 관리체제에 들어가자 과도한 사회복지정책이 촉발한 '영국병'이 경제위기의 주범이라는 지적이 빗발쳤다.

영국병이란 세계 최고의 복지제도를 유지하는 과정에서 근로자들은 나태해지고 기업들은 무거운 세금부담에 신음하며 국가경쟁력이 약화된 현상을 꼬집는 말이다.

1979년의 경우 영국의 예산에서 교육 의료 사회보장 주택 등 복지예산이 45.7%를 차지했다.

이는 정부의 재정부담을 키워 만성적인 재정적자를 가져온 요인이었다.

영국병 치료는 1979년 집권한 보수당의 마거릿 대처 총리가 주도했다.

'철의 여인'으로 불리는 대처 총리는 복지국가에 대한 전면적인 개혁에 착수해 '작은 정부'를 지향하면서 노동시장의 유연화와 감세 등 시장중시형 신자유주의적 정책을 추진했다.

대처 정부 이후 영국은 지속적인 개혁을 추진해 왔다. 하지만 아직도 영국병은 완치되지 않았다.

⊙ 스웨덴 · 독일,실업문제 해결이 선결 과제

스웨덴은 사민당의 장기집권이 시작된 1930년대부터 분배 중시 복지국가를 발전시켰다.

노동자 계층의 요구를 적극 반영해 무상교육 자녀수당 주택보조금 유급질병보험 등 시혜적 복지정책을 잇따라 시행했다.

해외 의존도가 높은 소규모 개방경제인 스웨덴에 유리한 세계경제의 호황이 전후 상당기간 지속되면서 이런 복지정책을 뒷받침했다.

그러나 과도한 복지지출과 이를 위한 높은 세금부담이 결국 스웨덴 복지모델의 발목을 잡았다.

1980년대 들어 스웨덴의 높은 복지와 세금이 경제성장을 저해한다는 지적이 잇달아 나왔다.

실제로 1970~1993년 스웨덴의 연평균 성장률은 1.49%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인 2.76%에 크게 못 미쳤다.

특히 1991~1993년엔 마이너스 성장으로 뒷걸음질쳤다.

부진한 경제성장은 실업문제를 낳았다.

복지 의존증에 따른 근로기피뿐 아니라 정부의 규제와 공공부문의 비대화로 기업가정신이 위축됐으며 신규 창업이 거의 없어 스웨덴은 복지국가에 어울리지 않는 높은 실업률을 보이고 있다.

과도한 사회보장제도로 인한 기업 및 가계의 조세부담 증가가 기업 투자와 가계 소비를 위축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면서 유럽의 경제대국 독일도 1990년대 후반부터 장기적인 경제침체에 빠졌다.

독일 역시 높은 실업률이 골칫거리다. 통일 직후인 1990년 6.4%였던 실업률은 2005년엔 9.5%로 뛰었다.

이는 과도한 사회보장제도,경직된 노동시장 등에 기인한다.

스웨덴과 독일도 경제위기에 몰린 뒤 복지모델에 대한 개혁에 착수했지만 아직까지는 확실한 성과를 올리지 못했다.

양질의 일자리 창출을 통한 경제성장 기반의 확충이 여전히 과제로 남아 있다.

장경영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longr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