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유럽의 ‘복지 천국’은 빚으로 쌓은 모래성?
"실업은 괜찮은 직업"이라는 말이 있다.

유럽의 몇몇 복지 선진국에서 통용됐던 얘기다.

복지시스템의 우수성보다는 나랏돈으로 펑펑 쓰는 복지국가 국민의 도덕적 해이(모럴 해저드)를 비아냥거리는 말이다.

'요람에서 무덤까지'로 표방되던 유럽 복지모델이 종언을 고하고 있다.

이른바 '돼지 국가들(PIGS)'의 재정위기는 덜 일하고 더 받는 유럽식 복지모델의 한계를 드러낸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PIGS는 재정위기를 겪고 있는 남유럽의 포르투갈 이탈리아 그리스 스페인 등을 뜻한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최근 "유럽 각국의 재정위기로 복지에 대한 유럽적 가치 역시 급속히 몰락하면서 유럽식 복지모델이 유지될 수 있을지 의심받기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유럽인들은 그동안 긴 휴가와 조기 은퇴,넉넉한 연금,높은 실업수당,잘 갖춰진 의료보험시스템이라는 과실을 향유해왔다.

하지만 유럽식 복지모델은 무임승차자를 양산하면서 부작용도 속출했다.

여기에 글로벌 금융위기에 따른 경기 침체와 고령화,청년층 인구감소 등은 유럽 경제가 더이상 비정상적 복지를 유지할 수 없는 한계에 몰아넣었다.

유럽의 65세 이상 고령인구 비율은 2050년까지 두 배 가까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1950년대 경제활동인구 7명이 노인 1명을 부양했지만 2050년에는 1.3명이 1명을 부양할 수밖에 없게 돼 복지제도 유지가 근본적으로 불가능해진다.

게다가 출산율은 갈수록 떨어지고 노동생산성도 하락하고 있다. 재정위기 한복판에 있는 그리스 젊은이들은 공무원들이 커피나 마시고 잡담이나 나누다 50세에 은퇴, 희희낙락하는 비용을 부담하기 위해 70세까지 일해야 할 판이라고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FT)는 "미국과 중국에 각각 군사패권과 경제패권을 넘겨주더라도 유럽이 고급 문화와 여유로운 삶을 향유하는 '라이프 스타일'의 슈퍼파워로 남을 수 있으리라는 유럽인들의 환상이 재정위기로 인해 헛된 꿈이 될 처지"라고 꼬집었다.

이에 따라 유럽 각국 정부는 본격적으로 복지모델 수술에 나서고 있다.

프랑스는 현재 60세인 법적 퇴직연령(정년)을 지속적으로 늦추는 방안을 골자로 하는 연금개혁안을 추진 중이다.

독일을 비롯한 상당수 유럽 국가들은 이미 연금 지급 규모를 축소했다.

아일랜드는 최근 사회복지 예산 7억6000만유로를 삭감하는 조치를 취했다.

루스 리스터 러프버러대학 교수는 "유럽 전역에서 복지국가의 핵심 기둥이 무너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한때 이상향으로 칭송됐던 유럽식 복지모델은 재정위기 앞에서 모래성이었음이 분명해졌다.

적게 일하고 많이 받으면 당장은 좋겠지만 그로 인해 일자리가 사라지고 경제가 망가지면 결국 근로자들의 삶의 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유럽식 복지모델의 한계를 살펴보고 바람직한 복지모델은 무엇인지 알아보자.

김동욱 한국경제신문 기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