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교역중단 따라 北GDP 10% 감소··· 北‘적화 통일’야욕 여전
[Focus] 천안함과 함께 침몰한 '햇볕정책'···인도적 지원대가가 무력도발!
"교류와 협력을 위한 뱃길이 더 이상 무력도발에 이용되도록 할 수 없다. "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24일 천안함 사건과 관련한 대국민 담화에서 북한 선박의 남한 해상 교통로 이용을 금지하고 남북 교역도 전면 중단하겠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지난 10여년간의 대북 포용정책(햇볕정책)이 결국 실패했음을 인정하고 향후 대북 정책을 근본적으로 바꾸겠다는 뜻을 밝힌 것이다.

대통령의 말대로 남북 경제협력과 대북 지원을 위해 열어놓은 뱃길이 북한의 도발에 이용되는 상황을 그냥 두고 볼 수는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수십명의 장병이 북한의 공격에 아까운 목숨을 잃어버린 상황에서 화해와 협력,인도적 지원 등의 명분에만 얽매어 있을 수는 없게 됐다.

⊙1998년 김대중 정부 때 시작

햇볕정책은 1998년 취임한 김대중 전 대통령이 추진한 대북 정책으로 교류와 협력을 통해 북한의 개혁과 개방을 이끌어내는 것을 목표로 했다.

이는 군비 경쟁과 체제 대결에 중점을 둔 그 전까지의 대북 정책이 남북한 간 긴장만 고조시켰을 뿐 한반도를 평화와 통일로 이끌지 못했다는 반성에서 출발했다.

강한 바람(강경정책)이 아닌 따뜻한 햇볕(포용정책)에 나그네가 외투를 벗었다는 이솝우화처럼 화해와 포용의 자세로 북한을 끌어안아야 한반도 평화와 남북 통일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이었다.

노무현 정부도 햇볕정책의 이념을 계승한 평화번영 정책을 추진하면서 햇볕정책은 지난 10여년간 대북 정책의 기초가 됐다.

천안함 사건을 계기로 결국 종말을 맞게 됐지만 햇볕정책은 남북한을 대결 구도가 아닌 화해 · 협력 구도로 전환하는 데 일정한 역할을 했다.

햇볕정책 아래에서 남북한을 잇는 경의선 철도가 연결됐고 금강산으로 가는 뱃길과 육상 교통로도 열렸다.

개성공단에는 남측 기업들이 들어가 공장을 짓고 북한 근로자를 고용해 물건을 만들었다.

비무장지대에서 철책과 지뢰가 일부 제거되고 남북한 군당국 간 핫라인이 개설되는 등 군사적인 면에서도 어느 정도 신뢰 구축이 이뤄졌다.

2000년 6월에는 분단 후 처음으로 남북 정상회담이 성사됐고 이를 계기로 이산가족 만남을 비롯한 민간 차원의 교류 · 협력이 더욱 활성화됐다.

그러나 햇볕정책은 성과만큼이나 많은 논란을 일으켰다.

북한 체제가 별다른 변화를 보이지 않으면서 대북 지원은 무의미한 퍼주기라는 비판을 받았고 남북 정상회담을 대가로 북한에 5억달러를 비밀리에 보낸 사실이 밝혀져 관련자들이 처벌을 받았다.

이 과정에서 보수와 진보 간의 이념 대립이 격화되면서 이른바 '남남 갈등'은 극에 달했다.

⊙ 북, 햇볕 쪼였지만 핵 개발 · 무력도발

가장 큰 문제는 남한이 유화적인 자세로 손을 내밀었음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핵무기를 개발하고 미사일을 발사하는가 하면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넘나드는 등 무력 도발을 그치지 않았다는 점이다.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 10년간 대북 지원과 경제 협력에 약 70억달러(약 8조7600억원)를 쏟아부었지만 결국 돌아온 것은 끝없는 무력 도발이었다.

김대중 정부가 햇볕정책을 시작한 것과 비슷한 시기에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은 선군정치(先軍政治)를 통치 이념으로 내세웠다.

선군정치란 글자 그대로 군대를 통치의 근간으로 삼고 국가 운영에 있어서 군사력을 모든 것보다 우선시하겠다는 것이다.

수많은 주민이 굶어죽고 배고픔을 못 견딘 주민들이 목숨을 걸고 제3국으로 탈출하는 상황에서도 북한은 선군정치의 이념 아래 핵무기 및 미사일 개발을 지속했다.

1999년 6월 연평해전과 2002년 6월 서해교전 등 남북한 군이 직접적으로 충돌,사상자가 발생하는 일도 여러 차례 있었다.

북한이 무력을 통한 적화통일의 야욕을 끝내 버리지 않았다는 점에서 천안함에 대한 기습 공격과 같은 사태는 이미 예견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북한이 계속해서 군사력을 강화하고 남한에 대한 무력 도발을 감행하는 한 화해와 협력을 추구하는 햇볕정책은 지속될 수 없다.

북한의 식량난을 해결하고 경제 개발을 돕기 위해 보낸 식량과 자원이 핵무기와 미사일,군사 도발로 돌아오는 상황에서는 대북 지원의 명분을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이 대북 정책 기조를 바꾸기로 한 것은 따뜻한 햇볕을 쪼여 얼음장 같은 북한 체제를 국제 사회로 이끌어 내겠다는 햇볕정책의 대전제가 애초에 남북관계의 현실과는 거리가 있었다는 냉철한 인식에 따른 것으로 볼 수 있다.

⊙ 교역 중단…북 GDP 10% 감소

우리 정부가 남북 교역을 중단하기로 함에 따라 북한은 적지 않은 경제적 손실을 입게 됐다.

남북 교역은 북한 대외거래의 30%,국내총생산(GDP)의 10% 안팎을 차지한다.

교역 중단 시 북한이 그만큼의 손실을 입는다는 얘기다.

조명철 대외경제정책연구원 국제개발협력센터 소장은 "남북 교역 중단으로 북한의 식량 및 에너지난과 생필품 공급 부족이 더욱 심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교역량과 경제 규모가 줄면서 고용 인원도 4만~12만명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남북 교역 중단은 북 · 중 무역까지 위축시킬 수 있다.

그동안 북한은 남북 교역에서 얻은 달러로 중국산 농산물과 공산품을 수입해 왔는데 남북 교역이 중단되면 중국과의 무역에서 쓸 달러가 부족해지기 때문이다.

이석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남북 교역 중단→외화 수입 감소→대중 결제수단 부족→대중 무역 감소→북한 경제 침체'의 악순환이 나타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북한은 남북 교역 중단에 따른 손실을 만회하기 위해 중국과의 교역을 확대할 가능성이 있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KDI의 분석에 따르면 2008년 북한이 남한으로 수출했던 318개 품목 중 절반이 넘는 162개 품목은 중국으로는 전혀 수출되지 않았다.

북한이 남한에 주로 수출하던 것은 농수산물이 대부분이었는데 이들 품목은 중국을 상대로 한 무역에서는 가격 경쟁력을 가질 수 없다.

남북 교역 중단의 효과를 결정할 최대 변수는 중국이다.

중국이 대북 경제제재에 대해 지지하거나 중립적인 입장을 취한다면 북한이 입는 타격은 더 커지게 된다.

그러나 북한과 '혈맹(血盟)',즉 피로써 맺어진 관계를 자처하는 중국이 제재에 동조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북한이 궁지에 몰릴 경우 중국에도 부담이 되기 때문이다.

중국은 대북 제재에 명시적으로는 반대하지 않더라도 실질적으로는 북한을 지원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북한 경제는 적지 않은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북한이 궁지에 몰리더라도 선군정치와 적화통일을 포기할지 여부는 미지수다.

북한은 미국의 제재로 식량난이 극에 달했던 1990년대 중후반에도 체제를 유지했다.

유승호 한국경제신문 기자 ush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