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들 굶어 죽는데 정권 유지에만 급급…역사에 남을 우화

[Cover Story] 권력유지위해 개혁거부… 결국 한탕주의 노선밖에
중국 베트남 등 대부분 사회주의 국가들이 시장경제 체제를 도입하면서 경제를 발전시키고 있는데 왜 북한은 개혁 · 개방을 하지 않고 있을까.

이는 한마디로 북한 정권이 사회주의 체제의 붕괴 위험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1980년대 사회주의 국가들이 시장경제로 전환하는 과정을 보면 모두 초창기 지도자가 물러난 후 추진하거나 체제 전환 과정에서 국가 지배 체제가 붕괴되는 홍역을 치렀다.

중국은 마오쩌둥에 이어 1970년대 후반 집권한 덩샤오핑이라는 개방주의자가 나서서 시장경제를 도입했고,베트남은 호찌민 사후 1980년대 집단지도체제가 들어서 개혁 · 개방 노선을 택해 고속 성장을 하고 있다.

구소련을 비롯한 동구권 국가들은 대부분 국가 체제가 무너졌다.

북한은 2002년 경제개혁을 단행하면서 한때 시장경제를 도입하는 듯하기도 했다. 그러나 시장에서 장사를 하거나 국경에서 무역을 하는 주민이 크게 늘어나며 협동농장 등 계획경제가 위협받자 북한 지도부는 최근 시장을 지속적으로 억누르는 정책을 펴고 있다.
지난해 11월 화폐개혁도 체제 유지를 위한 조치이고 이번 천안암 사태도 김정일 정권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도발이라고 동용승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은 지적한다.

⊙ 뒷걸음질 치는 경제,세계 꼴찌 수준의 인권

북한은 김일성 전 주석 출생 100주기,김정일 국방위원장 출생 70주기를 맞이하는 2012년에 강성대국의 대문에 진입할 것이라는 기치를 내걸었다.

정치 · 사상의 강국은 오래 전에 달성했고,2006년 핵실험을 통해 군사강국이 실현되었으니 2012년까지 경제강국만 달성하면 '사회주의 강성대국'이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희대의 코미디로 북한 주민들을 세뇌하는 정치구호에 불과하다.

강성대국은커녕 오늘날 북한만큼 가난하고 위태로운 나라는 지구상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국민의 인권은 세계 꼴찌이며 먹고 살게 없어서 해외로 탈출하는 주민들이 이어지고 있다.

세계적 인권감시단체인 휴먼라이츠 워치에 따르면 북한은 여러 곳에 강제수용소를 운영하고 있고 이곳에는 어린이들을 포함해 수십만명이 처참한 상황에서 노예 상태로 살고 있다.

또 정치적인 반대 의견이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자유로운 언론도 존재하지 않는 등 주민들에게 그 어떠한 자유나 권리도 보장되지 않고 있다.

경제 성적표는 당연히 낙제다.

북한의 국내총생산(GDP)은 지난해 400억달러로 한국(1조3560억달러)의 34분의 1에 불과하다.

1인당 GDP는 1900달러로 한국(2만8000달러)의 15분의 1 수준이다.

세계 227개국 중 GDP는 97위,1인당 GDP는 188위로 거의 꼴찌다. 대한민국은 각각 14위,49위다.

풍부한 지하자원과 일제가 남겨준 공장들 덕분에 197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남한을 앞질렀던 북한 경제가 뒷걸음질 친 것은 폐쇄적인 자급자족 경제라는 신기루를 추구했던 북한 지도부의 잘못된 정책 때문이었다.

북한은 작년 11월 전격적인 화폐개혁을 단행했다.

인민 생활의 안정을 위한다는 게 표면적인 명분이었지만 조금씩 싹트고 있는 시장의 역할을 약화시키고 사회주의적 통제경제 체제를 강화하려는 게 속셈이었다.

하지만 화폐개혁은 오히려 물가가 폭등하는 등 경제를 더 악화시켰다.

북한이 천안함을 기습해 침몰시킨 것은 경제적 곤궁으로 어려움을 겪는 주민들의 불만을 외부로 쏠리게 하는 목적도 있다는 분석이다.

⊙ 웃기는 '통 큰 정치'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통 큰 정치를 환영한다.

미국이 한국에서 점령군으로 있는 한 북한에서 보는 것은 평화를 위하여 주둔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점령군이라는 사실이며 미군은 한국에서 철수하는 것만이 한반도 평화의 길이며 한반도에 평화를 정착하는 길이다.

마치 북한 노동당 기관지인 노동신문의 사설인 듯한 이 글은 소위 진보를 내건 한국의 한 단체가 2005년 6월에 밝힌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통 큰 정치를 환영한다'라는 제목의 성명서다.

이 성명서는 "미국의 고립 압살 정책에도 굴하지 않고 꿋꿋하고 당당하게 통 큰 정치를 하고 있는 것이 북조선의 정책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통 큰 정치를 우리 6000만 민족의 이름으로 축하한다.

남한에서는 대미 종속적이고 굴욕적인 정치가 국민들에게 배신감을 안겨주고 정치를 흥밋거리로 전락시키고 민중은 정치의 소외자가 되었다"로 이어지고 있다.

일부 남한 내 정치인들도 "김정일 위원장은 통 큰 사람"이라며 치켜세우기도 했다.

과연 김정일은 통이 큰 사람이고 통 큰 정치는 북한 주민을 행복하게 만들었을까.

통 큰 정치의 핵심은 핵 공갈을 통해 대규모 경제적 지원을 받아내고 김정일 가문의 독재 체제를 국제적으로 인정받겠다는 속셈에 불과하다.

개방과 인권 보장,민주적 선거제 도입 등을 통해 나라를 살리는 것과는 거리가 너무 멀다.

북한이 가장 강력한 협상 수단으로 삼고 있는 것이 바로 핵무기다.

핵 공갈을 통해 이루어내고자 하는 것은 북한 인민의 행복이 아니라 김정일의 권력 유지다. 여기에 북한의 문제가 있다.

⊙ 통일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갖자

남북관계와 관련해 진보를 표방하는 남한의 일부 인사들이 내세우는 구호 중 하나가 바로 '민족'이다.

앞에서 언급한 성명서는 "분명히 말하자면 6 · 15 남북공동선언 5주년을 맞이하여 우리 민족은 하나의 민족임을 다시 한번 뜨겁게 확인하였다.

우리 민족은 하나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은 또 "사회주의와 자본주의를 평가하는 잣대는 달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과연 그럴까.

그렇지 않다.

이들은 민족과 김일성 일가를 동일시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북한 주민과 김일성 가문은 다르다.

대한민국의 국민들이 '한민족'이라고 얘기할 때 이는 북한의 우리 민족을 뜻하는 것이지 결코 북한의 독재자들이 아니다.

국민을 굶겨 죽이고 최소한의 기본적 인권조차 부정하는 한줌의 권력자들을 옹호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북한을 평가하는 잣대가 달라야 한다"는 주장도 허구다.

인간 삶을 평가하는 보편적 척도는 동일하다. 인권과 경제적 권리 향상이 그것이다.

자유와 평등이라는 기본권은 인류가 피를 흘려가며 쟁취한 소중한 것이다.

재판을 받을 권리,자유롭게 이사를 다니고 여행할 권리,자기 마음대로 직업을 선택하고 열심히 일해 재산을 불리고 잘 살 수 있는 권리,자유롭게 생각하고 생각을 표현할 수 있는 권리는 천부적인 것이다.

굶어 죽는 평등을 평등이라고 할 수 없다. 평등은 결과의 평등이 아니라 기회의 평등이다.

인간의 기본권조차 부정하고 사유재산과 자유 민주적 질서를 전복시키려는 종북 세력과,국민들이 보다 자유롭고 보다 나은 생활을 하도록 사회를 변화시키려는 진보 세력은 구분돼야 한다.

이성을 가진 지식인이라면 도그마(독단)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어떤 통일이든 통일이 되면 좋다는 것도 환상이다.

민족을 분단의 질곡에서 해방시키고 한국인을 세계에서 존중받는 민족이 되도록 하는 그런 통일이어야 한다.

우리가 북한의 사정에 깊은 관심을 기울이고 하루빨리 북한 주민을 해방시켜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민족의 절반을, 조폭이나 인질범과 다를 것이 없는 북한의 군사독재 치하에 방치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강현철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hc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