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 "국민들의 정치 참여 이끄는 사이버 공론場 역할"

반 "여과없는 의견·정보 난무…'저급한 다수통치' 위험"
[Cover Story] 인터넷 민주주의 놓고도 치열한 공방
선거철이 되면 인터넷 게시판 블로그 등에 후보자에 대한 평판이 올라 오는 경우가 가끔 있다.

투표권자로서 후보를 자유롭게 평가할 수 있는 권리가 당연히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인터넷에서 후보를 함부로 평가했다가 선거법 위반으로 고발당하는 수가 있다.

다음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홈페이지의 인터넷 선거참여 안내 코너에 나오는 글이다.

"000씨는 시장이 될 자격이 없습니다. 만약 그 사람이 되면 서민이나 중산층은 모두 힘들어집니다. 또 그 사람은 돈을 너무 좋아하는 사람이라 시장을 하게 되면 뇌물을 받을 사람입니다. 절대 000가 시장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선관위는 이런 글을 선거운동 기간 전에 인터넷에 올리면 선거법을 위반하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6월 2일 실시되는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의 선거운동 기간은 5월20일~6월1일이다.

선거운동 기간 전에는 입후보 예정자와 정당에 대한 지지나 반대 등의 선거운동이 인터넷에서 금지된다.

그리고 선거 운동기간 중에도 지지 반대 의견을 벗어나 후보자와 정당을 비방하거나 허위사실을 공표하는 행위는 모두 선거법 위반이다.

또 도토리 사이버머니 등 재산상의 이익이 될 수 있는 기부행위도 위법이다.

⊙ 인터넷, 민주주의에 강력한 영향력 행사

인터넷을 통한 선거 관련 행동이 엄격하게 규제되는 것은 인터넷이 짧은 시간에 많은 사람에게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미디어이기 때문이다.

인터넷은 쌍방향성, 시 · 공간 초월성, 다기능성, 익명성 등의 특징이 있다.

인터넷이 등장하기 전에는 하나의 정보제공자와 다수의 정보수용자로 정보 소통이 이뤄졌지만, 인터넷이 등장한 후에는 정보교환이 '일 대 일' 또는 '일 대 다수''다수 대 다수'로 자유롭게 이뤄진다.

인터넷의 참여자 모두가 정보제공자이면서 정보수용자인 것이다.

인터넷은 편리한 시간에 정보를 보내고 편리한 시간에 정보를 받을 수 있다.

시간은 물론 공간의 제약도 받지 않는다.

디지털 기술의 발달로 문자 그림 영상 음악 등 여러 기능을 활용할 수도 있다.

자신의 이름을 밝히지 않고 의견을 표현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인터넷의 특징은 장점인 동시에 단점이다.

빠른 시간에 여러 사람의 의견을 모을 수 있어 충분한 검토과정이 없이 즉흥적인 의견이 표출될 우려가 있다.

또 인터넷의 익명성은 근거없는 비방을 부추킬 수 있는 위험이 있다.

평등성 보장도 인터넷의 장점이자 단점이다.

어떤 사회적 이슈가 불거졌을 때 그 분야 전문가와 난생 처음 그 이슈를 접한 사람이 인터넷에서 토론을 벌일 경우 평등성이 보장된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할 수 는 없다.

이런 단점에도 불구하고 인터넷은 선거철마다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한 조사 연구 자료에 따르면 전 세계 192개국 중 63%에 해당하는 120개국이 민주적 선거제도를 채택하고 있으며, 그 중 67개국에서 인터넷(사이버)민주주의와 관련된 활동이 활발하다.

그만큼 인터넷 활용이 보편화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1995년 지방선거 당시 일부 후보가 PC통신을 통해 홍보 활동을 한 것이 인터넷 선거의 시초로 알려져 있다.

이후 1997년 대통령 선거에서 각 정당이 인터넷 홈페이지를 만들어 선거운동을 벌였고, 2000년 국회의원 선거(16대 총선)를 계기로 인터넷을 활용한 정당간 선거경쟁이 본격화됐다.

2004년 17대 총선에선 시민단체들이 인터넷을 통해 낙천 · 낙선 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 인터넷은 사이버 공론장

오늘날 대의제 민주주의가 위기를 맞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정치 무관심이 갈수록 심화돼 투표자들이 자신들의 대표를 뽑은 다음 대표의 활동을 견제 · 감시하는 데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에따라 이러한 대의제 민주주의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으로 인터넷이 주목받기도 한다.

일부에서는 "기존 정치에서 실현하기 어려웠던 정책 결정 · 실행 과정의 투명성을 확보하고 국민 참여의 폭을 넓힐 수 있는 새로운 정치 환경"이라며 인터넷 민주주의라는 새로운 용어까지 제시한다.

인터넷으로 대표되는 정보통신 기술을 선거에 이용한다는 단순한 의미가 아니라 인터넷을 통해 국민들의 적극적인 정치 참여가 가능해지고 그로 인해 국민들의 의사가 정책에 반영돼 국민주권이 실현될 수 있다는 의미이다.

인터넷 민주주의를 설명할 때 흔히 '사이버 공론장(public sphere)'이론이 사용된다.

대의제 민주주의가 기능장애를 일으키자 독일의 학자 위르겐 하버마스는 '숙의(熟議 · deliberation) 민주주의'를 제안했는데, 숙의 민주주의는 '참여'를 통해 시민을 정치의 주체로 회복시키고 정치과정을 공정하게 이끄는 게 목적이다.

하버마스는 공통의 관심사에 대한 시민들 사이의 숙의가 일어나는 사회적 공간인 공론장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인터넷이 이런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게 사이버 공론장 이론이다.

이 이론에 따르면 사이버 공간에서 시민들은 전통적인 미디어가 전파하는 정치 관련 내용을 수동적으로 소비하는 고립된 대중이 아니라, 서로 적극적으로 상호작용하고 대화하면서 정치활동을 벌인다는 것이다.

⊙ 저급한 정치로 전락할 위험도

하지만 인터넷 민주주의에 대한 비판도 만만치 않다.

참여의 확대가 진정한 민주주의로 이어진다고 단언할 수 없다는 것이다.

충분한 토의과정을 거치지 않은 즉각적인 감정이나 특수한 이해관계에 의해 주도되는 '인터넷 여론'은 정책결정에 오히려 악영향을 미쳐 저급한 민주주의로 연결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따라서 인터넷 참여 인구가 많으면 많을수록 대의제 민주주의의 한계를 극복하기 보다는 직접 민주주의의 위험요소를 증폭시킬 수 도 있다.

흔히 '과다 민주주의(hyperdemocracy)'라고 지적되는 것처럼 다수의 충동적이고 감정적인 의견이 사회적 의사결정 과정에서 여과없이 튀어나오는 현상이 벌어질 경우 정부 정책이 제대로 수립 집행되기 힘들어진다.

정부는 인터넷 유권자들의 즉흥적인 요구를 구분해 내기 힘들어 지게 되고, 이 과정에서 정제되지 않은 충동적인 다수의견이 산술적 합계에서 우위를 차지해 큰 목소리로 공공정책의 수립에 압력을 행사한다.

이는 민주주의를 저급한 다수의 통치로 전락시킬 수 있다.

따라서 인터넷이 민주주의에 순기능을 발휘하도록 하려면 사이버 공간에서 시민들 사이의 토론을 어떻게 활성화시키고, 이를 차분한 숙의 과정을 거쳐 정제된 의견으로 만들어 낼 것인가가 핵심 과제다.

장경영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longr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