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의 자유’ 무시하고 민족주의와 결합땐 위험
"나는 왜 우연히 태어난 이 나라를 사랑해야 하는가?"
애국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를 이렇게 자문해볼 수 있다.
이에 대한 답으론 '과거 세대가 만들어 놓은 유·무형의 혜택을 받으며 자라고 생활했고, 미래세대도 나와 같은 혜택을 누리도록 만드는 책임이 있다'는 정도를 우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이 같은 상식 수준의 답을 넘어 철학적·정치 사상적 차원에서 애국심이 어떤 의미를 갖는 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애국심은 고대로부터 인간의 공동체 생활을 설명하는 핵심 개념 가운데 하나로 쓰여왔고, 인류 역사의 진행에 따라 애국심의 의미가 변화했기 때문이다.
⊙ 몽테스키외 · 루소의 공화주의적 애국심
애국심은 크게 자연적 애국심과 정치적 애국심으로 구분된다.
애국심(love of country or patriotism)에서 'country'는 다른 말로 '조상의 땅(land of fathers)'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태어나고, 자라고, 교육받고, 생계를 유지하고, 자손을 낳는 땅을 자연스럽게 사랑한다.
이런 땅에 대한 애착은 본능적이다. 이를 자연적 애국심이라고 부른다.
자연적 애국심은 국가가 생겨나기 전에 존재했던 고대 부족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오래된 애국심의 형태다.
정치적 애국심은 공화국, 공동의 자유, 공동선 등이 사랑의 대상이 될 때를 가리킨다.
전형적인 정치적 애국심은 로마 공화국의 애국심에서 찾아볼 수 있다. 바로 공화주의적 애국심이다.
이 개념은 근대 사상가인 몽테스키외와 루소에 의해 더욱 발전했다.
몽테스키외는 애국심은 조국의 자연적 의미나 민족적 요소들과는 무관한, 공화정과 민주주의에 대한 사랑이라고 역설했다.
그는 공화정과 민주주의를 사랑하려면 시민은 자신과 가족만의 이익을 희생하면서 공동의 이익을 우선시해야 한다며 이는 애국심을 위해 자기애(自己愛)를 포기하라는 의미라고 주장했다.
루소도 법률에 따라 지배되는 공화국을 사랑하는 게 애국심이라고 봤다.
하지만 몽테스키외와 달리 자기애를 희생할 필요가 없다며 자기애와 조국애(祖國愛)는 양립할 수 있다고 했다.
사람은 자신을 본능적으로 사랑하는 자기애를 갖지만 이를 넘어 사랑의 대상을 부모 형제자매 친척 이웃 동료시민으로까지 넓힐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루소는 자기애가 인류애(人類愛)로까지 확대되기는 힘들다고 설명했다.
⊙ 민족주의와 결합한 애국심 등장
공화주의적 애국심은 1789년 프랑스혁명을 거치면서 새로운 전환을 맞는다. 민족주의가 등장해 애국심과 결합한 것이다.
민족주의는 타국의 이익에 맞서 자국의 이익을 폭력적이든 비폭력적이든 배타적으로 옹호하고 관철하려는 경향을 띤다. 집단 이기심이라고 규정할 수도 있다.
프랑스혁명을 마무리지은 나폴레옹이 독일 베를린을 점령하자 독일 사상가 피히테는 '독일 국민에게 고함'이라는 유명한 연설을 통해 민족주의를 제시한다.
피히테는 우선 민족과 국가를 명확히 구분해 민족이란 자연적 및 정신적으로 공동의 삶을 지속적으로 영위하는 인간들의 전체라고 규정했다.
그는 독일 민족이 분열되고 외세의 지배 하에 놓이게 된 상황을 지적하며, 민족의 독립과 통일을 위한 근거로 독일 민족의 동질성과 우수성을 강조했다.
이처럼 피히테는 독일 국민에게 독일 민족의 배타적 우월성에 근거한 애국심을 주문했다.
이런 민족주의적 애국심은 훗날 나치 정권이 독일 국민의 맹목적인 애족(愛族)을 자극해 전쟁을 일으키고, 인종주의에 근거해 유대인 대학살인 홀로코스트(Holocaust)를 저지르는 데 악용됐다.
나치 사례와 같이 애국심이 민족주의와 결합해 자기 민족에 대한 맹목적인 열광으로 치달으면 그것은 집단적 병리현상으로 변질된다.
더 이상 공동의 자유, 공동선 등 공화주의적 가치는 작동하지 못한다. 우리가 자유민주주의를 국시로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 헌법 애국심과 공동체주의적 애국심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서독의 정치학자 스테른베르거가 헌법애국심을 들고 나왔다.
그는 헌법과 애국심이 결합된 제2의 애국심이 헌법애국심이라며 이는 민족에 근거한 애국심과는 다르다고 주장했다.
민족 대신에 서독이 전후 발전시킨 자유와 민주주의에 기초한 헌법을 애국심의 지향점으로 삼자는 것이다.
전쟁을 일으켜 패배함으로써 상처받고 분단된 독일 민족이 서독 시민의 사랑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판단이 헌법 애국심을 등장시킨 배경이다.
공동체주의 이론가로 꼽히는 매킨타이어와 테일러는 공동체주의적 애국심을 주장했다.
매킨타이어는 애국심은 특정 민족에 대한 충성이라고 했다.
그렇다고 자기 민족에 대한 무반성적인 충성은 아니라며 나치의 민족주의적 애국심과는 거리를 뒀다.
⊙ 애국심에 대한 비판도
애국심은 공동체가 지속적으로 번영하는 데 긍정적 역할을 한다. 이런 역할은 애국심을 비판하는 사람들도 인정한다.
애국심 비판론자들은 애국심이 배타적인 민족주의로 흐를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 비판을 집중한다.
매킨타이어의 공동체주의적 애국심의 경우 인종주의와 다를 바가 없다는 비판을 받는다.
비판론자들은 특히 국가 간 이익을 둘러싼 심각한 충돌이 벌어졌을 때 어떤 입장을 취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애국심은 보편주의적 도덕과 조화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애국심은 결국 특정 민족이나 국민의 이익에 치우쳐 인류 전체의 평화로운 공존에 한계를 보인다는 얘기다.
보편적 가치와 국가의 가치는 때로 긴장 관계에 있다.
이와 관련, 우리나라에선 근대 이후 애국심이 민족주의와 깊게 연관돼 왔다.
20세기 초 일본의 침략에 맞서 우리 민족의 국권을 회복하기 위해 일어났던 애국계몽운동이 대표적이다.
민족주의는 일제시대와 한국전쟁에 이어 개발연대와 민주화시기 등을 거치면서 지속적으로 영향력을 발휘했다.
민족주의의 배타성을 극복하려는 시도도 이어졌지만, 독도 문제와 같은 한 · 일 또는 한 · 중 간 역사 이슈가 불거지면 민족주의는 애국심을 자극해 오히려 강화되기도 했다.
천안함 전사자들이 우리에게 던지는 애국심의 본질도 다르지 않다.
자유 민주주의를 지키는 정신이 우리가 갖는 애국심의 기반이라는 점을….
장경영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longrun@hankyung.com
"나는 왜 우연히 태어난 이 나라를 사랑해야 하는가?"
애국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를 이렇게 자문해볼 수 있다.
이에 대한 답으론 '과거 세대가 만들어 놓은 유·무형의 혜택을 받으며 자라고 생활했고, 미래세대도 나와 같은 혜택을 누리도록 만드는 책임이 있다'는 정도를 우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이 같은 상식 수준의 답을 넘어 철학적·정치 사상적 차원에서 애국심이 어떤 의미를 갖는 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애국심은 고대로부터 인간의 공동체 생활을 설명하는 핵심 개념 가운데 하나로 쓰여왔고, 인류 역사의 진행에 따라 애국심의 의미가 변화했기 때문이다.
⊙ 몽테스키외 · 루소의 공화주의적 애국심
애국심은 크게 자연적 애국심과 정치적 애국심으로 구분된다.
애국심(love of country or patriotism)에서 'country'는 다른 말로 '조상의 땅(land of fathers)'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태어나고, 자라고, 교육받고, 생계를 유지하고, 자손을 낳는 땅을 자연스럽게 사랑한다.
이런 땅에 대한 애착은 본능적이다. 이를 자연적 애국심이라고 부른다.
자연적 애국심은 국가가 생겨나기 전에 존재했던 고대 부족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오래된 애국심의 형태다.
정치적 애국심은 공화국, 공동의 자유, 공동선 등이 사랑의 대상이 될 때를 가리킨다.
전형적인 정치적 애국심은 로마 공화국의 애국심에서 찾아볼 수 있다. 바로 공화주의적 애국심이다.
이 개념은 근대 사상가인 몽테스키외와 루소에 의해 더욱 발전했다.
몽테스키외는 애국심은 조국의 자연적 의미나 민족적 요소들과는 무관한, 공화정과 민주주의에 대한 사랑이라고 역설했다.
그는 공화정과 민주주의를 사랑하려면 시민은 자신과 가족만의 이익을 희생하면서 공동의 이익을 우선시해야 한다며 이는 애국심을 위해 자기애(自己愛)를 포기하라는 의미라고 주장했다.
루소도 법률에 따라 지배되는 공화국을 사랑하는 게 애국심이라고 봤다.
하지만 몽테스키외와 달리 자기애를 희생할 필요가 없다며 자기애와 조국애(祖國愛)는 양립할 수 있다고 했다.
사람은 자신을 본능적으로 사랑하는 자기애를 갖지만 이를 넘어 사랑의 대상을 부모 형제자매 친척 이웃 동료시민으로까지 넓힐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루소는 자기애가 인류애(人類愛)로까지 확대되기는 힘들다고 설명했다.
⊙ 민족주의와 결합한 애국심 등장
공화주의적 애국심은 1789년 프랑스혁명을 거치면서 새로운 전환을 맞는다. 민족주의가 등장해 애국심과 결합한 것이다.
민족주의는 타국의 이익에 맞서 자국의 이익을 폭력적이든 비폭력적이든 배타적으로 옹호하고 관철하려는 경향을 띤다. 집단 이기심이라고 규정할 수도 있다.
프랑스혁명을 마무리지은 나폴레옹이 독일 베를린을 점령하자 독일 사상가 피히테는 '독일 국민에게 고함'이라는 유명한 연설을 통해 민족주의를 제시한다.
피히테는 우선 민족과 국가를 명확히 구분해 민족이란 자연적 및 정신적으로 공동의 삶을 지속적으로 영위하는 인간들의 전체라고 규정했다.
그는 독일 민족이 분열되고 외세의 지배 하에 놓이게 된 상황을 지적하며, 민족의 독립과 통일을 위한 근거로 독일 민족의 동질성과 우수성을 강조했다.
이처럼 피히테는 독일 국민에게 독일 민족의 배타적 우월성에 근거한 애국심을 주문했다.
이런 민족주의적 애국심은 훗날 나치 정권이 독일 국민의 맹목적인 애족(愛族)을 자극해 전쟁을 일으키고, 인종주의에 근거해 유대인 대학살인 홀로코스트(Holocaust)를 저지르는 데 악용됐다.
나치 사례와 같이 애국심이 민족주의와 결합해 자기 민족에 대한 맹목적인 열광으로 치달으면 그것은 집단적 병리현상으로 변질된다.
더 이상 공동의 자유, 공동선 등 공화주의적 가치는 작동하지 못한다. 우리가 자유민주주의를 국시로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 헌법 애국심과 공동체주의적 애국심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서독의 정치학자 스테른베르거가 헌법애국심을 들고 나왔다.
그는 헌법과 애국심이 결합된 제2의 애국심이 헌법애국심이라며 이는 민족에 근거한 애국심과는 다르다고 주장했다.
민족 대신에 서독이 전후 발전시킨 자유와 민주주의에 기초한 헌법을 애국심의 지향점으로 삼자는 것이다.
전쟁을 일으켜 패배함으로써 상처받고 분단된 독일 민족이 서독 시민의 사랑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판단이 헌법 애국심을 등장시킨 배경이다.
공동체주의 이론가로 꼽히는 매킨타이어와 테일러는 공동체주의적 애국심을 주장했다.
매킨타이어는 애국심은 특정 민족에 대한 충성이라고 했다.
그렇다고 자기 민족에 대한 무반성적인 충성은 아니라며 나치의 민족주의적 애국심과는 거리를 뒀다.
⊙ 애국심에 대한 비판도
애국심은 공동체가 지속적으로 번영하는 데 긍정적 역할을 한다. 이런 역할은 애국심을 비판하는 사람들도 인정한다.
애국심 비판론자들은 애국심이 배타적인 민족주의로 흐를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 비판을 집중한다.
매킨타이어의 공동체주의적 애국심의 경우 인종주의와 다를 바가 없다는 비판을 받는다.
비판론자들은 특히 국가 간 이익을 둘러싼 심각한 충돌이 벌어졌을 때 어떤 입장을 취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애국심은 보편주의적 도덕과 조화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애국심은 결국 특정 민족이나 국민의 이익에 치우쳐 인류 전체의 평화로운 공존에 한계를 보인다는 얘기다.
보편적 가치와 국가의 가치는 때로 긴장 관계에 있다.
이와 관련, 우리나라에선 근대 이후 애국심이 민족주의와 깊게 연관돼 왔다.
20세기 초 일본의 침략에 맞서 우리 민족의 국권을 회복하기 위해 일어났던 애국계몽운동이 대표적이다.
민족주의는 일제시대와 한국전쟁에 이어 개발연대와 민주화시기 등을 거치면서 지속적으로 영향력을 발휘했다.
민족주의의 배타성을 극복하려는 시도도 이어졌지만, 독도 문제와 같은 한 · 일 또는 한 · 중 간 역사 이슈가 불거지면 민족주의는 애국심을 자극해 오히려 강화되기도 했다.
천안함 전사자들이 우리에게 던지는 애국심의 본질도 다르지 않다.
자유 민주주의를 지키는 정신이 우리가 갖는 애국심의 기반이라는 점을….
장경영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longr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