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텐마 비행장 이전 논의 10분만에 퇴짜… 포퓰리즘 정책 논란도
[Global Issue] 오바마에 무시 당한 하토야마…日 국민들 등돌리나
하토야마 유키오 일본 총리가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핵안보정상회의에 참석해 오키나와현 후텐마 미군비행장 이전 문제와 관련해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과 비공식 회담을 가졌다가 10분 만에 퇴짜를 맞는 '망신'을 당했다.

일본의 외교적 위상이 추락하는 실례다.

이 때문에 그동안 하토야마 총리의 거취 문제에 대해 비교적 담담했던 일본 언론들이 드러내놓고 '총리 교체론'까지 거론하기 시작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과 아사히신문의 최근 보도에 따르면 하토야마 총리는 지난 12일 핵정상회의 만찬 자리에서 오바마 대통령과 대화를 나누며 근래 양국 간 현안이었던 후텐마 비행장 이전 문제를 거론하려 했다.

하지만 오바마 대통령은 후텐마 문제에 대해서는 별다른 언급도 않은 채 이란 핵문제와 미 · 일 동맹 강화와 같은 원론적 사안에 대해서만 이야기했다.

이에 앞서 일본 정부는 이번 정상회의 개최 한 달 전부터 미 · 일 간 별도 정상회담을 추진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이에 따라 후텐마 기지를 현 바깥으로 이전하는 문제를 다음 달 말까지 결정하려던 하토야마 총리의 계획은 물거품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두 신문은 전했다.

⊙ "하토야마는 니마이지타(二枚舌)"

후텐마 기지 이전은 현재 미 · 일 사이의 최대 갈등 현안이다.

1945년 건설된 후텐마 기지는 오키나와현 나하시 중심부에 위치해 극심한 소음과 미군과 관련된 각종 범죄로 주민들의 이전 요구가 끊이지 않았다.

특히 2004년 8월엔 후텐마 기지 소속 헬리콥터가 오키나와국제대에 추락하기도 했다.

당초 양국은 2006년 후텐마 기지를 2014년까지 오키나와 내 나고시에 있는 슈워브 미군 기지로 옮기기로 합의했다.

하지만 지난해 8월 말 중의원 총선 당시 주요 공약으로 후텐마 기지의 오키나와현 밖 이전을 내걸었던 민주당이 새로운 집권 여당이 되면서 양국이 고민에 빠지게 됐다.

미국으로선 후텐마 기지가 동북아 미군 배치상 전략적 요충지기 때문에 쉽사리 현 바깥으로 나가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또 하토야마 내각은 오키나와현 주민들의 목소리도 존중해야 함과 동시에 미국과의 동맹관계도 지켜야 하는 진퇴양난에 처했다.

하지만 이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하토야마 총리가 후텐마 관련 대처 과정에서 보인 우유부단한 태도였다.

지난해 11월 도쿄에서 열린 미 · 일 정상회담에서 하토야마 총리는 오바마 대통령에게 "나를 믿어달라"며 후텐마 기지 문제 해결을 약속했다.

하지만 하토야마 총리는 바로 다음 날 "합의 원안을 지키자는 뜻은 아니었다"며 하루 만에 자신의 말을 완전히 뒤집었다.

미국 정부는 이후 존 루스 주일대사가 오카다 가쓰야 일본 외상에게 고함을 지르며 항의하고,일체의 대화 채널을 중단시키는 등 강력하게 반발했었다.

이번 핵정상회의에서 하토야마 총리가 오바마 대통령에게 철저히 무시당한 이유도 이런 배경이 깔린 것으로 분석됐다고 일본 언론들은 전했다.

이 때문에 최근 하토야마 총리에겐 '니마이지타(二枚舌) 총리'라는 별명마저 생겼다.

'니마이지타'는 '혀가 두 개 있다'는 의미로 말을 자주 바꿀 때 쓰는 단어다.

일본 제1야당 자민당의 가와사키 지로 국회대책위원장이 지난 2월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하토야마 총리를 '니마이지타 총리'라고 처음 부른 뒤 일본 주요 언론들도 이 같은 용어를 공공연하게 사용하며 총리의 잦은 말 바꾸기에 대해 비난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 추락하는 지지율, 75%에서 33%로

이런 상황에서 하토야마 총리의 지지율은 날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요미우리신문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9월 출범 당시 75%에 달했던 지지율은 이달 초 33%로 급락했다.

니혼게이자이는 지난 14일 "최근 민주당 내에서 벌써 하토야마 총리 후임자에 대한 논의가 나오고 있다"며 "간 나오토 재무상과 하라구치 가즈히로 총무상,센고쿠 요시토 국가전략상 등이 '포스트 하토야마'로 언급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일본 전문가들은 "하토야마 내각에 대한 반감을 키운 건 무엇보다 경제정책 운용에서 일관된 리더십이 발휘되지 못한 탓"이라고 진단하고 있다.

일관성과 정확성, 통일성이 요구되는 경제 부문에서 핵심 관료들은 서로 딴소리를 내며 좌충우돌을 일삼았다.

환율 대응책이 대표적인 사례다.

민주당은 당초 내수 증진 차원에서 엔고(高)를 용인하자는 입장이었다.

후지이 히로히사 전 재무상도 지난해 9월 내각 출범 당시 "인위적인 환율 안정책은 비정상적"이라고 역설했다.

그러나 달러당 80엔 후반~90엔 초반이던 엔화 가치가 84엔까지로 올라가자 하토야마 정권은 환율 관련 입장을 180도 변경했다.

후지이의 후임으로 임명된 나오토 부총리는 지난 1월 취임 당시 "엔 · 달러 환율은 달러당 90엔대 중반 이상이 적당하다고 본다"고 언급했다.

하지만 그는 "책임 있는 경제 관료가 어떻게 적정 환율이라고 구체적인 수치를 운운할 수 있느냐"는 거센 비판에 시달려야 했다.

결국 하토야마 총리도 지난달 중순 "최근의 엔화 흐름엔 약해진 일본 경기 상황이 반영돼 있지 않다"며 엔화 약세 유도 방침을 공개적으로 천명했다.

그러나 당일 도쿄 외환시장에서 엔 · 달러 환율은 90엔대 초반에서 아무런 변동도 없었다.

시장에서는 "하토야마 내각이 시장의 신뢰성을 이미 잃었다는 방증"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 포퓰리즘 정책 논란도 가중

진통 끝에 지난달 어렵게 의회에서 통과된 자녀수당과 고교 수업료 무상화 등 각종 선심성 사회복지 공약들도 포퓰리즘 시비에 재차 휘말렸다.

재정 악화 문제가 날이 갈수록 심각해지는데 돈 쓸 궁리만 한다는 비판에 부딪친 것이다.

일본의 국가채무는 이미 GDP(국내총생산)의 180%를 웃돌았다. 2012년에는 1000조엔을 돌파할 것으로 전망된다.

일본 재무성은 올해 세수 전망이 정부 예산지출 92조엔의 40%인 37조엔에 그칠 것으로 예상했다.

아사히신문은 최근 "일본의 재정 악화가 현재와 같은 속도로 계속되면 정부가 파산할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했다.

하토야마 정권이 내세웠던 선심성 공약을 전면 재검토하라는 여론도 고조되고 있다.

복지도 좋지만 국가부채가 계속 늘어날 경우 더 큰 위기를 맞을 수 있다는 우려다.

지난 2월 니혼게이자이 여론조사에서 고속도로 이용 요금을 2012년부터 전면 무료화하겠다는 공약의 시행에 대해 반대가 62%에 이르렀던 반면 찬성은 18%에 그친 것이 그런 예다.

이미아 한국경제신문 기자 mi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