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을 해치지 않는 범위내에서 저소득층 지원해야
[Cover Story] “성장은 빈곤을 줄인다”
경제정책을 펼 때 성장과 사회후생(복지) 가운데 무엇이 우선인가 하는 문제는 학계에서 지금도 진행되고 있는 논쟁 중 하나다.

성장론자들은 경제발전을 통해 일단 파이를 키운 다음 분배를 해야 1인당 돌아오는 후생의 크기가 커진다고 주장한다.

반대로 분배론자들은 분배체계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으면 성장의 혜택이 불균등하게 나눠진다는 점을 강조한다.

대개 전자는 시장과 기업의 자유로운 활동에 목소리를 높이고, 후자는 정부에 의한 사회안전망 구축 등을 중시하는 특징을 갖는다.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가 최근 발표한 논문 '경제성장과 사회후생 간의 관계'는 성장과 복지의 관계가 실제 한국사회에서 어떻게 나타났는지를 검증하고 있다.

이번 논문은 한국은행의 의뢰로 작성됐으며 한은 금융경제연구원의 '금융경제연구 2010년 3월호'에 실렸다.

⊙ 외환위기 때 불평등 정도 최악

강 교수는 1997년부터 2006년까지 소득과 소비를 여러 각도에서 심층 분석했다.

그는 우선 최상위 20%, 상위 20%, 중간, 하위 20%, 최하위 20% 등 계층별로 소비가 어떻게 변했는지 살펴봤다.

그 결과 최상위 20%의 평균 소비액은 1997년 3365만원에서 2006년 4519만원으로 증가했다. 연평균 증가율은 3.27%다.

최하위 20%의 평균 소비액은 같은 기간 619만원에서 1010만원으로 늘었다. 연평균 증가율은 5.45%다.

절대금액으론 최상위 20%의 증가폭이 컸지만 증가율 측면에선 최하위 20%의 증가폭이 컸다.

강 교수는 불평등 정도를 나타내는 척도 중 하나인 5분위 배율(소비 기준)의 변화 양상도 점검했다.

소비 기준 5분위 배율이란 최상위 20%의 소비가 최하위 20%의 소비에 비해 어느 정도 더 많은가를 나타내는 것이다.

그 수치는 1997년 5.44에서 2000년 4.49, 2003년 4.62,2006년 4.47 등으로 파악됐다.

불평등 정도는 외환위기 당시인 1997년에 가장 심했으며 그 이후 점차 완화되고 있다는 의미다.

외환위기 당시 우리 경제가 크게 후퇴했지만 그 이후 빠른 속도로 회복되면서 불평등 정도가 개선된 것이다.

⊙ 성장으로 절대빈곤율 하락

논문은 또 절대빈곤율(Head Count Ratio)이 10년간 어떻게 달라졌는지도 분석했다.

절대빈곤율이란 최저생계비에도 미치지 못하는 소득계층의 비율을 나타내는 개념이다.

강 교수는 절대빈곤율의 추이를 소득과 소비 등 두 측면에서 살펴봤다.

소득 측면에선 1997년 33.0%이던 절대빈곤율이 1999년 29.6%로 낮아진 뒤 이후 지속적으로 떨어져 2006년엔 15.9%까지 하락했다.

소비 측면에서도 1997년 43.5%에서 2006년 18.7%로 낮아졌다.

그 이유를 강 교수에게 직접 물었다. 그는 "외환위기 이후 경제가 성장하면서 평균소득이 증가하고 이에 따라 절대빈곤율이 낮아졌다"고 설명했다.

우리 경제의 성장률은 1997년 -5.7%에서 1998년 10.7%, 2000년 8.8% 등으로 회복된 뒤 2006년까지 평균 4~5% 수준을 이어갔다.

경제 성장이 빈곤을 줄인다는 것은 이 논문의 지역별 절대빈곤율 파트에서도 확인됐다.

지역별 빈곤율은 농촌지역이 가장 높게 나타났고 지방의 대도시, 서울 등의 순으로 낮아졌다.

성장이 정체된 농촌에서 빈곤율이 높고 성장이 상대적으로 높은 대도시와 서울에서 빈곤율이 낮다는 얘기다.

⊙ 성장률 낮으면 지니계수 개선 안 돼

경제적 불평등도를 측정하는 또 다른 척도인 지니계수의 추이는 어떨까.

지니계수는 0~1 사이의 수치로 표현되는데 0에 가까울수록 불평등도가 낮고,1에 가까울수록 불평등도가 심하다는 의미다.

통상 0.4를 웃돌면 불평등이 심한 것으로 평가된다.

1997년부터 10년간 지니계수는 크게 2개의 구간으로 구분된다.

1997년부터 2000년까지 지니계수(가구당 소비기준)는 0.349에서 0.341로 낮아졌다.

하지만 2001년 이후부터 2006년까지는 0.340 근처에서 움직이다 2006년엔 0.345로 오히려 높아졌다.

강 교수는 "2001년 이후엔 성장률이 낮아지면서 지니계수가 개선되지 못했다"고 말했다.

우리 경제 성장률은 앞서 살펴봤듯이 2001년부터는 그 수준이 뚝 떨어졌다.

이는 2001년부터 IT(정보기술) 버블이 붕괴됐으며 2003년부터는 신용카드 대란 등으로 우리 경제가 활력을 잃었기 때문이다.

논문은 빈곤 가구의 특징도 진단했다.

빈곤 가구에는 가구주가 여성인 경우, 17세 이하 가구원 수가 많은 경우, 60세 이상 가구원 수가 많은 경우가 많았다.

여성, 17세 이하, 60세 이상 등은 경제활동을 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 아무래도 소득이 적을 수밖에 없다.

강 교수는 "외환위기 이후 우리 사회가 고비용 구조로 바뀌면서 가구 내에서 경제활동인구가 적을수록 빈곤 확률이 높았다"고 파악했다.

⊙ 바람직한 경제정책은

논문은 정부의 기초생활보장 지원제도가 효과를 나타내고 있다는 점을 실증적으로 밝혀냈다.

현재 우리 정부는 가구별 소득이 최저생계비에 미치지 못할 경우 생계 주거 교육 의료 등의 측면에서 지원을 해 주고 있다.

2010년 기준 최저생계비는 1인가구 월 50만원,2인가구 월 85만원, 3인가구 월 110만원,4인가구는 월 136만원 등이다.

강 교수는 정부의 지원으로 평균소득이 증가함으로써 빈곤의 심도가 낮아진다고 밝혔다.

강 교수는 정부와 통화당국이 재정 · 통화정책을 펼 때 정책의 영향이 소득 · 소비계층에 따라 미치는 영향이 달라지게 된다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과거에 비해 성장률 수준이 뚝 떨어져 있는 상황에서 통화당국이 이자율을 올리면 저소득층의 타격이 부유층에 비해 훨씬 더 클 것"이라고 지적했다.

더불어 같은 거시정책이라 하더라도 성장을 저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그 혜택이 저소득층에 더 많이 돌아가는 정책을 선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제시했다.

박준동 한국경제신문 기자 jdpower@hankyung.com